"정치 모르겠고" 탈당 부른 현수막 파문…민주당 "업체가 한 일"
더불어민주당이 청년층을 겨냥한 새 현수막이 당 안팎 비판에 직면했다. 청년을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는’ 세대로 격하한 듯한 표현으로 당원 게시판엔 “탈당하겠다” 글이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7일 ‘2023 새로운 민주당 캠페인의 티저(맛보기)’라면서 총 4개 현수막의 시안을 공개했다. 민주당 고유 이미지 대신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이미지가 삽입된 이들 현수막엔 각각 ‘나에게온당’,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혼자 살고 싶댔지 혼자 있고 싶댔니?’ 등 문구가 삽입됐다.
민주당은 “이번 캠페인은 개인성과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2030 세대 위주로 진행한다”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민주당이 들어가 ‘나에게 쓸모 있는 민주당’으로 변화하겠다는 캠페인”이라고 밝혔다.
시안이 공개되자마자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시안의 문구가 청년 세대를 격하하는 뉘앙스로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원욱·김종민·조응천·윤영찬 등 의원이 모인 당내 의견 그룹 ‘원칙과 상식’은 18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2030 청년세대를 정치와 경제에 무지하고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인식한다는 뜻인가”라며 “이번 현수막 사태는 도덕성·민주주의·비전이 상실된 민주당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고, 이재명 민주당의 청년세대에 대한 인식 능력의 결여 증거”라고 했다.
원외 친(親)이재명 그룹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18일 논평에서 “현수막 문구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 보다 악화하고 있는 청년의 경제·사회적 조건에 대한 이해도 없고, 청년이 느끼는 좌절감과 불안감에 대한 공감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수막 사태를 빌미로 당내 반혁신 세력이 이재명 대표 체제를 흔들 빌미를 제공한 점도 심각한 문제”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련 책임자를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직접 운영하는 ‘블루웨이브’ 당원 게시판도 시끄러웠다. 한 당원은 “현수막 보고 글 쓰고 탈당하러 가입했다”며 “이런 결정을 내리는 정당이 총선이든 다음 대선이든 민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썼다. 다른 당원은 “이번 현수막엔 간첩이 있는 게 분명하다”며 “MZ세대를 조롱하는 것인가. 그래서 2030 다 놓치고 총선 폭망하자는 것인가”라고 썼다. “새로운 현수막 갖다 버리십시오!”, “현수막 자폭단인가요”, “현수막 다 내려. 총선 망할래요” 같은 비판글도 잇따라 올라왔다.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주류인 ‘86 운동권 세대’를 향한 비판이 나왔다. 장예찬 최고위원은 18일 페이스북에서 “30년 기득권을 누린 586 운동권 꼰대들이 ‘이게 요즘 유행이라며? 어때, 나 아직 살아있지?’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며 “586 운동권의 선민사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청년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은아 의원도 페이스북에 “민주당 86세대는 끝까지 청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한준호 민주당 홍보위원장은 19일 국회에서 “(새 현수막은) 당에서 한 게 아니고 업체에서 캠페인 준비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위원장은 “민주연구원에서 준비해온 캠페인에 대해 진행하는 업체에서 (현수막을) 달던 것이고, 당은 행사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 검토를 받아야 해서 기술적으로 공문만 조치하는 과정이었다”며 “업무상 실수는 맞지만, 당직자나 당이 개입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당직자는 “오랜 기간 걸쳐 준비한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현수막이고, 최고위원회의에 보고도 됐다”며 “상식적으로 사무총장·홍보위원장 직함이 담긴 공문이 내려갔는데 당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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