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아래 갇힌 언니... 남은 시간 20분, 사투 벌이는 동생

김성호 2023. 11. 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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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89] <다이브: 100피트 추락>

[김성호 기자]

▲ 다이브: 100피트 추락 포스터
ⓒ 와이드릴리즈㈜
 
언제나 최선의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생각할 법한 때조차 그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흔한 선택보다 더 나은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 믿음에 의지하여 더 나은 길을 탐색하는 이들의 노력이 언제나 응답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은 아주 이따금은 값진 결과를 끌어내기도 한다. 믿음은 그렇게 믿는 이를 다른 이와 구별되는 무엇으로 만들어간다.

독일 출신 막시밀리언 엘렌바인의 <다이브: 100피트 추락>은 포기를 강요하는 상황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의 승리를 그린 작품이다. OTT 서비스에서 애호되는 1시간 30분가량의 긴장감 넘치는 상업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평이한 스릴러에도 나름의 미덕이 있음을 생각게 한다.

영화는 외딴 섬으로 다이빙 여행을 떠난 자매의 이야기다. 잔뜩 신이 난 동생 메이(소피 로우 분)와 달리 언니 드류(루이자 크로즈 분)는 어딘지 심통이 난 표정이다. 차를 운전하는 동생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플래터스의 명곡 'Only You'를 따라부르자 언니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이 노래가 싫다"고 산통을 깬다. 메이가 "어떻게 이런 클래식이 싫을 수 있느냐"고 묻자 "지긋지긋하다"고 답한다.
 
▲ 다이브: 100피트 추락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해저절벽 붕괴... 다이버들에게 닥친 위협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메이는 잔뜩 신이 나 설렘을 감추지 못하지만, 드류는 묵묵히 장비를 챙겨 마치 일을 하듯 잠수를 할 뿐이다. 좀처럼 어우러지지 않는 감정선이 미묘한 긴장을 자아내던 가운데 둘은 마침내 바닷 속 깊은 곳에서 예고된 재난과 맞닥뜨린다.

사고는 한 순간 빚어진다. 해저 절벽의 붕괴일까, 바다 한복판을 유영하던 자매 위로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절벽에 붙어있던 메이는 운 좋게 낙하물을 피했지만, 드류는 돌뭉치에 휩쓸려 저기 바다 밑바닥으로 사라졌다. 놀란 메이는 곧장 바다 아래로 잠수해 들어가서 제 언니가 쏘아내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한다.

영화는 이로부터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어간다. 드류는 100피트(약 30m) 아래 밑바닥에 있다. 몸을 빼보려 애쓰지만 무거운 바위에 깔려 빠져나갈 수가 없다. 산소통엔 채 반 시간도 버티지 못할 만큼의 산소만이 남아 있다. 오는 동안 오가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외딴 섬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침착해야만 한다.
 
▲ 다이브: 100피트 추락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살아남으려는 언니, 구하려는 동생

드류는 흥분한 메이를 진정시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지시한다. 우선 바다 표면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구조를 청할 것, 해변에 놔둔 남은 산소통을 가져올 것, 차 트렁크에 차량을 들어 올리는 간이 리프트가 있으니 그것을 챙겨올 것, 무엇보다 표면 위로 올라가면 20분짜리 타이머를 맞춰놓고 움직일 것 등이다. 침착하게 한 가지씩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하고는 남은 산소를 아끼려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는 드류다. 메이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녀는 곧장 표면위로 솟구친다.

문제는 계획이 틀어진다는 거다. 지표에도 문제가 있었던 모양, 휴대폰과 산소통을 넣어둔 작은 동굴 입구가 떨어진 바위들로 막혀 있다. 메이는 바위를 붙들고 잠시 씨름을 해보지만 제 힘으로 역부족이란 걸 느낄 뿐이다. 다행히 차 안에 예비 산소통 두 개를 더 가져왔단 게 떠오른다. 리프트도 챙길 겸 우선 차를 세워둔 곳으로 질주한다.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차키 또한 입구가 막힌 동굴에 넣어둔 것이다. 돌을 들어 차 유리창을 깨고 산소통을 꺼내긴 했는데 트렁크를 열 방도가 막막하다. 돌로 내리쳐도 보고 칼로 후벼도 보지만 단단히 잠긴 문짝은 열릴 줄을 모른다. 한없이 시간만 보낼 수도 없는 일, 메이는 급한 대로 산소통 두 개만 챙겨서는 바다로 내달린다.

영화는 메이가 바다 밑에 깔린 언니 드류를 살려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런 류의 영화가 흔히 그러하듯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 애쓰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고 도움의 손길은 엇갈린다. 보는 이까지 숨을 막히게 하는 쫄깃한 전개가 일품으로, 관객은 드류의 산소가 줄어드는 만큼,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메이가 실망하는 만큼 함께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한다.
 
▲ 다이브: 100피트 추락 스틸컷
ⓒ 와이드릴리즈㈜
 
예고된 해피엔딩일지라도 지루하지 않다

<다이브: 100피트 추락>이란 제목이 보여주는 그대로, 영화는 추락한 이를 꺼내는 다이버의 노력을 극적 재미를 최대한 살리는 가운데 내보인다. 오로지 목적은 그것 하나뿐인 양, 잔뜩 긴장케 했다가 절망케 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릴 만큼 실망할 순간도 적지 않지만 메이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제가 겪는 모든 어려움도 바다 밑 언니 드류의 위기에 비할 수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영화는 예고된 해피엔딩으로 치닫는다. 위기가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해소 또한 필연적 귀착치인 것이다. 그러나 엘렌바인의 세련된 감각으로 영화는 예고된 결말을 제법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거듭 관객을 긴장케 하고, 포기하게 하다가는, 마침내 극적 구원처럼 일으켜내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극작법 대로, 관객은 두려워하고 실망하다 극적으로 해소된 위기에 환호한다.

영화는 그 속에서 적잖이 전형적이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교훈 또한 안긴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의 힘이다. 가장 어려울 때는 해 뜨기 직전이란 말처럼, 십중팔구는 포기할 법한 순간에도 노력을 거듭하는 메이의 승리를 그려낸다. 때로는 누구의 승리가 흔한 절망을 구원한다. 가장 어려울 때조차 이겨낼 방법이 있다고 믿는 메이의 분투가 제 언니를 구해내듯, 이 영화의 포기하지 않음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 수도 있을 테다.

1시간 30분을 흥미롭게 보내면 그만일 OTT 서비스의 그렇고 그런 영화에도 이런 미덕이 있다. 킬링타임이란 말로 흔히 격하되곤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도 옥석은 있다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중 옥의 자리를 쟁취하려는 영화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이브: 100피트 추락>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제법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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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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