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쓰나미처럼 덩어리 이동" 17년만에 세운 아주 특별한 댐

정은혜 2023. 11.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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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과연 다 찰까 싶겠지만, 폭우가 오면 이틀 만에 물로 가득 찰 겁니다.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의 원주천 상류. 지난 16일 현장에서 만난 김규문 한국수자원공사 원주천댐사업단장이 산등성이 사이의 계곡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곡에는 제법 모습을 갖춰가는 댐이 보였다. 그는 “홍수 때는 저기 보이는 흰색 물탱크 아래까지, 즉 댐 전체가 물로 가득 찰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악산 국립공원 깊은 계곡인 이곳엔 높이 49m, 좌우 길이 210m 크기의 콘크리트 댐, 원주천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원주천댐은 지역 사회가 중앙 정부에 건설을 요청한 첫 사례다. 2005년 지자체 건의가 있었던 뒤 17년만인 올해 말, 콘크리트 타설 공사(콘크리트 댐 쌓기)를 마치고 내년에 완공된다.
16일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에 위치한 원주천댐 공사 현장. 김규문 한국수자원공사 원주천댐사업단장이 건너편 흰색 물탱크를 가리키며 홍수기엔 물이 물탱크 아래까지 찬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고질적 수해 문제에 지역서 댐 건설 건의


인구 36만이 거주하는 원주시의 도심은 원주천 하류에 형성돼 있다. 태백산맥 자락인 원주천 상류에 폭우가 쏟아지면 가파른 계곡을 따라 물이 하류로 쏟아지는 게 지역의 오랜 문제였다.

원주천댐 건설은 지역 숙원사업이었다. 원주천 유역은 1998년부터 2011년까지 14년 동안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5명이 사망하고 586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올해 7월에도 하류에서 1명이 휩쓸려 사망했다. 박병언 환경부 수자원정책과장은 “상류 계곡에서 불어난 물은 쓰나미처럼 서서 덩어리 채로 이동한다”며 “하류에서 물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는 게 아니다, 물 덩어리에 휩쓸리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콘크리트로 댐을 짓는 이유도 물이 흘러넘칠 경우에도 댐 구조물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원강수 원주시장이 지난 사흘간 300㎜ 넘는 폭우가 쏟아진 원주천 하류 도심지를 찾아 수해 예방 활동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원주시

원주천댐의 저장 규모는 180만t이다. 원주 기준 200년에 한 번 나타나는 수준의 홍수(일 강수량 420.3㎜)를 기준으로 만들었다. 상류에서 180만t을 가두고 있으면 댐 하류에서는 원주천교 기준 흐르는 물을 초당 100t(수위 30㎝)까지 저감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하류 아파트촌 인근에 저류지를 만들어 2단계로 유량을 가두는 그릇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지뜰 호수 공원’ 사업으로 불리는 저수 용량 85만t 규모의 저류지 사업이다. 현재 부지 매입을 완료하고 내년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댐 계획 초기 반발했던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는 차츰 수그러들고 있다고 한다. 댐 건설 장기 계획이 수립된 2012년 전후로 원주환경운동연합은 “수해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저수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고 상류 댐 타당성이 부족하다. 즉흥적 결정으로 환경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진행된 지역 의견수렴 결과와 2014년 타당성 조사 당시 반대 의견 없이 댐 건설 계획이 통과됐고, 환경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평가에 환경단체도 참여한 게 반대 목소리가 잦아든 계기라고 한다.
16일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 원주천댐 공사현장에서 하류 도심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정은혜 기자
16일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 원주천댐 공사현장에서 물이 덩어리가 되어 내려온다는 상류 산지를 바라본 모습. 정은혜 기자


“이상 기후, 치수 목적 소규모 댐 중요해질 것”


박병언 수자원정책과장은 “원주천댐 같은 180만t 규모의 댐은 수억t 규모의 기존 다목적댐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수몰지도 작아 생태계와 주변 교통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이상 기후가 잦아지며 필요성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원주천댐 수몰지에 거주하던 열 가구는 댐 상류지보다 도심지 이주를 원해 당국은 원주역 인근에 이주민을 위한 택지를 조성하고 있다. 물에 잠기는 도로는 기존의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건설된다. 법정 보호종 맹꽁이 서식지가 사업 과정에서 영향을 받아, 맹꽁이 서식지 이주 계획도 세우고 있다.

환경 당국이 이런 소형댐 사업과 하천 준설 등에 힘을 싣는 이유는 강수 규모와 강도가 이례적으로 강화하는 이상 기후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내년 홍수기를 대비하는 하천 준설 등 치수 정책을 시급히 진행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의 건의로 건설된 1호 소규모 댐의 효과가 내년에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도 지자체에서 소규모댐 건설 건의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시의 경우 1980년대부터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선정돼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땅을 덮은 아스팔트가 늘어 홍수 문제가 점차 심각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환경부는 “원주천댐의 성과가 확인되면 각 지역에 맞게 인명피해를 줄이고 환경에 영향을 작게 주는 소규모 댐이 치수 사업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6일 강원도 원주시 학성지구에 위치한 원주천 하류부에 건설할 저류지 부지 모습. 정은혜 기자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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