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죽자 탈출한 '국민 얼룩말'…방황 끝내줄 새 여친 온다
“세로야, 외로워하지 말고 힘내!”
지난 18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그랜트얼룩말 방사장. 세종시에 사는 김은수·김은영(11) 쌍둥이 어린이가 얼룩말 세로를 보러 왔다. 이들은 “얼룩말 코코가 떠났다기에 세로가 걱정돼서 서울까지 왔다”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당근을 우적우적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세로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 중 하나다. 지난 3월 나무 데크를 부수고 동물원을 탈출해 유유히 아차산역 인근 도로와 구의동 주택가를 활보하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다. 당시 동물원을 탈출한 세로 사연은 인기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리즈 ‘헬로카봇 시즌13’이 지난달 다루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로가 부모의 죽음 이후 방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9년 6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난 세로는 2021년 엄마(루루)를 잃고 지난해 아빠(가로)도 떠나보냈다. 하지만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세로가 안정을 되찾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데려온 얼룩말 코코가 폐사한 것이다. 사인은 산통(배앓이)에 의한 소결장 폐색·괴사다.
세로, ‘쇼생크 탈출’ 이후 관심 한 몸에
이에 서울어린이대공원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세로가 먹이를 잘 먹는 등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세로를 위한 긴급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하며 방법을 찾았다. “국내 동물복지 여건상 완벽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게 조경욱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장(수의사)의 설명이다.
자문단은 일단 세로를 다른 동물원으로 입양 보내는 방안을 찾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하는 동물원이 없었다고 한다. 6월 기준 국내엔 8개 동물원에 얼룩말 36마리가 살고 있다. 문제는 수컷끼리는 합사가 어렵다는 점이다. 세로가 간다면 동물원 측에서 별도 공간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데, 적절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야생으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다. 마승애 청주대 동물보건학과 교수는 “세로는 야생에 살다가 동물원에 온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며 “이런 동물을 방생하면 야생 생존 경험이 부족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수컷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다. 수컷을 같은 공간에 두면 서열을 정하기 위해 자주 싸우기 때문이다. 조경욱 팀장은 “얼룩말은 혼자 두는 것보다 무리를 지어줘야 하는 게 당연한데, 공간이 제한적인 동물원 특성상 수컷끼리 서열 투쟁을 하도록 두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세로를 위해 서울어린이대공원은 또 다른 암컷을 합사하기로 결정했다. 2024년 상반기 중 충북 청주동물원에서 암컷 얼룩말 '하니'를 데려올 예정이다.
방사장 2배로…‘생태형 동물원’ 리모델링 추진
서울어린이대공원측은 합사를 위해 얼룩말 방사장을 2배 이상 넓혔다(210㎡→420㎡). 또 초식동물 방사장 관람 데크·울타리를 교체했다. 세로가 부순 나무 울타리 안쪽엔 높이 2m가 넘는 초록색 철제 울타리를 설치했다.
세로·하니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구조로 관람 시설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서울어린이대공원 시설은 2009년 완성했다. 당시엔 보다 가까이에서 동물을 자세히 관람할 수 있는 ‘접촉형 동물원’이 주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관람 시설을 전면 유리창으로 만들고 호(방사장과 관람장 사이에 파놓은 공간)를 최대한 없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람 구조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가중했다고 한다. 이경숙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도봉1)이 서울시설공단에서 받은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폐사 현황’에 따르면 2018년 이후 폐사한 동물은 총 177마리다. 이 중 자연사한 81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이 질병(69마리)·사고(27마리) 때문에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요즘은 ‘생태형 동물원’으로 바뀌는 추세다. 생태형 동물원은 서식지를 고스란히 재현한 동물원이다. 조경욱 팀장은 “원래 계획상 2030년 이후에나 대규모 동물원 리모델링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리모델링 시점을 당초 예정된 2030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서울시와 긴밀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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