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에서 백조로…'영패션'이 뜬다
[한국경제TV 조시형 기자]
온라인 쇼핑 성장으로 백화점 매장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던 영패션 브랜드가 경기 불황과 소비 양극화 속에 '간판'으로 탈바꿈했다.
가성비와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MZ세대의 소비 취향을 제대로 잡아낸 영패션 브랜드는 소비 둔화로 백화점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영패션 브랜드 매출은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소비 침체 영향으로 백화점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영패션에서 만큼은 개선된 실적을 내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영패션 매출이 한 자릿수 신장, 혹은 마이너스에 그쳤던 점과 비교해도 긍정적인 신호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19년 5% 내외에 불과하던 영패션 매출 신장률이 올해 들어 10%로 두 자릿수대로 올라섰다.
패션 카테고리에서 영패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5%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9년 5.9% 감소세를 보인 영패션 매출은 올해 10.4%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신진 브랜드를 강화한 센텀시티점과 강남점의 3분기 매출 신장률은 각각 27.3%와 63.2%로 더 고무적이다.
현대백화점의 영패션 매출 신장률은 2019년 -1.3%에서 올해 25.1%까지 높아졌다.
오프라인 백화점 매장에서 영패션 브랜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외면받던 분야였다.
영패션 브랜드의 주력 소비층인 MZ세대가 온라인과 SNS마켓 등으로 이탈하면서 백화점 매장을 더 이상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화점 영패션 코너에서 만날 수 있는 브랜드도 실제 구매 연령대는 더 높아 사실상 '영' 패션은 아니라는 평도 많았다.
백화점들도 영패션 브랜드보다 명품 유치에 공을 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가 지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가 주력 소비층으로 성장한 데다 불황으로 명품 소비가 꺾이면서 저렴한 값에 멋을 낼 수 있는 영패션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백화점 업계도 때맞춰 SNS 등을 기반으로 한 신생 브랜드를 팝업 매장 등의 형식으로 오프라인에서 선보이면서 영패션 바람에 힘을 실었다.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더현대서울로 기존 백화점의 문법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현대서울은 2021년 2월 개점 이후 지금까지 200개가 넘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영패션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쿠어', '디스이즈네버댓' 등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탄 브랜드들이 백화점에서는 처음으로 매장을 냈고, '시에'는 연말 기준 영패션 브랜드 최초로 단일 매장 매출이 100억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된다.
더현대서울은 온라인 인기 브랜드를 팝업으로 우선 선보이고, 이후 정식 매장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신진 브랜드를 빠르게 도입했다. 그 덕에 전체 고객 중 30대 이하 비중이 65%를 차지할 만큼 젊은 백화점으로 거듭났다.
현대는 이후 판교점과 더현대대구, 목동점 등에서도 더현대서울의 전략을 차용해 MZ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는 강남점과 센텀시티점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강남점은 지난 9월 본관 8층을 리뉴얼 해 '스트리트 패션 전문관'으로 꾸미고 '벌스데이수트', '우알롱' 등 그동안 백화점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젊은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이들 브랜드는 강남점 단독 상품을 선보이며 MZ세대를 끌어모았다.
지난 2월 리뉴얼한 센텀시티점의 영패션전문관 '하이퍼그라운드'는 2천700여평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47개 입점 브랜드 중 23개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이 중 14개가 백화점에서 처음 만나는 제품들이다.
하이퍼그라운드 리뉴얼 이후 6개월간 20대(101%)와 30대(87%)이 크게 늘었고 부산 이외의 지역에서도 찾는 '명소'가 됐다.
롯데백화점은 잠실월드몰을 기반으로 영패션 브랜드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롯데월드몰에 매장을 낸 '마르디 메크르디'는 입점한 국내 패션 브랜드 중 매출 1위를 기록하며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사로잡고 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에서 나오고, 비수도권 지역 고객 비중도 월드몰의 다른 브랜드보다 높았다.
잠실의 '아더에러' 플래그십 매장과 본점의 '마뗑킴' 매장은 개점 당시 '오픈런'이 벌어질 만큼 인기를 끌었다.
특히 본점의 마뗑킴 매장은 신규 유입 고객의 65%가 20·30세대로 젊은 층 유입 효과도 상당했다.
잠실월드몰은 넓은 매장을 활용해 MZ를 겨냥한 다양한 팝업도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영패션 브랜드들은 온라인에 익숙한 MZ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기존의 영패션 브랜드는 웬만한 백화점에 다 매장이 있어 차별점이 없었지만, 최근의 신진 브랜드들은 매장이 있는 백화점을 찾아가야 하므로 집객에도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영패션 브랜드는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의 구매 트렌드에 부합하는 데다 매출이 오랫동안 부진했던 분야인 만큼 당분간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프라인에 한번 둥지를 튼 브랜드들이 좋은 성과를 내면서 매장 확장을 생각하지 않았던 브랜드들도 오프라인의 문을 두드리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시형기자 jsh1990@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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