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시모네타 [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사실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그녀가 2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을 때다. 폐결핵으로 소멸해가던 그녀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에 붉은 볼을 가진 그녀의 죽어가는 모습에서조차 기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만인에게 공개된 장례식의 관 속에 누워 있는 미녀를 목도하는 순간, 사람들은 저마다 영원히 그녀의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각인시켰다. 그래서인지 시모네타를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모두 그녀가 사망하고 난 다음에 그려졌다. 그림을 통해 계속해서 죽은 여자를 살려내다니, 예술의 세계에서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어떤 존재였길래 그다지도 흠모의 대상이 됐을까?
그녀는 제노바 유력가 카타네오 가문의 딸로 15세에 피렌체 은행가인 마르코 베스푸치에게 시집왔다. 베스푸치가는 메디치가가 인정하고 교류하는 드문 집안이었다. 그런 까닭에 유부녀였음에도 메디치의 두 형제인 로렌초 메디치, 줄리아노 메디치와 각별히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공개적으로 이 형제 중 동생 줄리아노의 연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1475년 산타 크로체 광장에서 마상 창시합 토너먼트 대회가 열렸다. 스포츠와 드라마가 혼합된 과도한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이 경기의 핵심은 바로 ‘사랑의 게임’이었다. 그해도 당연히 메디치가의 촉망받던 줄리아노가 승리를 거뒀고 승리의 영광을 미의 여왕 시모네타에게 헌사했다. 그 후로 두 사람이 연인이 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시모네타는 고백을 들은 이듬해, 23세 나이로 사망한다. 안타깝게도 2년 뒤인 1478년, 줄리아노 또한 25살의 나이로 파치 가문의 음모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화가는 물론 문인들까지 그녀의 이미지와 아우라를 앞다퉈 작품으로 남겼다. 로렌초 메디치는 흠모하는 마음을 총 4편의 시에 담아 바쳤고,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베르나르도 풀치는 그녀를 페트라르카의 라우라와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비유했다. 당대 최고 지성인 폴리치아노는 그녀를 님프에 비유하는 시를 썼다. 특히 시댁인 베스푸치 가문과 친정인 카타네오 가문, 그리고 메디치 가문에서 초상화를 대대적으로 주문했다. 피렌체 미술관과 명문가에 시모네타의 얼굴이 넘쳐나는 이유다. 사실 누가 봐도 시모네타의 실물은 진정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실물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렇게 줄창 그려질 이유는 없다. 세상에 초미녀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내가 죽으면 시모네타 발끝에 묻어줘”
어쩌면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년)라는 한 남자의 시선과 응시 덕분은 아닐까. 그녀는 기를란다요와 피에로 데 코지모 등 당대 뛰어난 화가들에 의해서도 그려졌다. 하지만 보티첼리가 그린 시모네타의 모습이야말로 백미 중 백미다. 긴 목, 우수에 찬 눈동자,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 무심한 자태, 출렁이는 황금빛 곱슬머리 등 보티첼리 그림 속에서 재탄생한 시모네타의 모습이야말로 가장 우아하고, 가장 성스러우며, 가장 신비롭다.
당대 많은 화가들의 초급미술학교에 해당되는 금은 세공소 출신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 두 형제인 로렌초와 줄리아노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주 친밀한 사이였다. 특히 줄리아노의 애정의 대상이었던 시모네타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던 것 같다. 보티첼리는 화가 중 시모네타의 곁을 그나마 가장 오래, 아주 가까이 갈 수 있었던 특권을 가진 화가였다. 그래서 남몰래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어쨌거나 보티첼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평생 시모네타만을 짝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죽은 후 그녀를 그린 그림과 스케치는 물론 기억과 향수를 동원해 끊임없는 습작과 연습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를 떠나보낸 지 2년 만에 ‘봄(1478년)’이 그려졌고, 5년 후에는 ‘비너스와 마르스(1483년)’ 그리고 10년 후에는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1486년)’을 완성했다. 보티첼리는 시모네타를 비너스, 마돈나, 세포라, 아테네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시켰다. 이 모든 그림은 보티첼리의 애도며 헌화가였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한낱 여자 혹은 사랑이 아니라 종교와 구원 그 자체였던 셈이다. 임종 시에도 보티첼리는 시모네타의 발끝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했을 정도다.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한 화가에 의해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위상을 확보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이 있다. 보티첼리는 코지모 메디치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은 화가로, 메디치 가문 지식인 모임의 주요 멤버기도 했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럽게 코지모가 만든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인본주의적 철학 사상의 자양분을 맘껏 흡수했을 것이다. 이른바 철학 입양이다! 당대 피렌체 르네상스를 지배했던 철학은 피치노와 폴리치아노로 대변되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이었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이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계승해 한층 더 세분화한 이론으로 예술이 만물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봤다.
아마도 메디치 가문의 녹을 먹는 인문주의자들은 중세를 지나면서 앓아온 ‘성상증후군(Holy Image Syndrome)’을 극복하고 치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런 인본주의 사상의 세례를 듬뿍 받은 보티첼리는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얼굴을 통해 초월적인 무표정을 가진 비너스, 마돈나, 아테네를 부활시켰다. 그로써 시모네타는 메디치의 후원 아래 피렌체가 신봉한 신플라톤주의의 천상적인 미와 우아미의 근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상적인 존재로 현현(Epiphany)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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