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인 줄 알았는데…‘3세대 치료제’ DTx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11. 1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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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새로운 ‘의료·바이오 키워드’

# 주의력행동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A는 진료 후 처방전을 받아들고 바로 ‘NUROW’ 게임을 시작했다. 마치 ‘쌀보리 게임’ 같은 게임이다. 보리일 때는 주먹을 잡지 않고 쌀일 때는 버튼을 눌러 잡는다. 디지털 치료제(DTx·Digital Therapeutics) 개발 기업 ‘에임메드’가 개발했다.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기대 이상이다. 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ADHD 진단을 받은 6~12세 어린이 27명을 대상으로 기존 약물 치료를 유지하면서 4주 동안 매일 15분씩 NUROW를 하게 했다.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다. 참가 어린이들의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이 10%가량 감소했다. DTx 치료 중단 1개월 뒤까지도 효과는 유지됐다.

DTx가 새로운 ‘의료·바이오’ 키워드로 떠올랐다. 의료 현장에서는 DTx가 1세대 화학 치료제, 2세대 바이오 치료제에 이어 ‘3세대 치료제’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발표한 ‘디지털 치료제 산업 동향·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DTx 시장은 2021년 약 32억3000만달러(약 4조6117억원)에서 2030년 173억4000만달러(약 2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웰트의 불면증 치료 DTx ‘웰트아이’. (웰트 제공)
DTx 뭐길래…‘전자약’과 달라

신약 개발 대비 연구비 90% 절감

DTx는 소프트웨어(SW)가 핵심이다. 하드웨어(HW)는 그저 거들 뿐이다. 식약처는 DTx를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 기기(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로 규정한다. 식약처는 SaMD를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의료 기기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가지며, 독립적 형태의 SW만으로 이뤄진 의료 기기’라고 재차 설명한다. 쉽게 말해 DTx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웹에 접속해 치료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혹은 치료 기기 등 HW가 필요하지만 본질적 요소는 아니다.

종종 DTx는 ‘전자약’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부분은 있지만, 따져보면 확실하게 구분된다. 일단 전자약은 HW가 핵심이다. HW를 통해 신체 특정 부위에 직접 자극을 주는 형태다. 또 DTx는 가상현실, 게임 등 다양한 IT 기술로 구현되지만 전자약은 자기장, 초음파 등을 활용한다.

DTx 시장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과 ‘가성비’다. 환자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면 심리 상담이 주당 10만원으로 100의 효과를 내고, DTx가 주당 1만원으로 30의 효과를 본다고 가정하자. 대면 치료법이 효과 면에서 앞서지만, ‘가성비’ ‘편의성’ 측면에서는 DTx의 압승이다. 윤찬 에버엑스 대표는 “현재 의료 시스템은 한정된 재원으로 제한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DTx가 접근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 측면에서도 가성비가 좋다. 신약 개발 대비 비용은 저렴하고, 연구 기간은 짧기 때문. 정준호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연구원은 “기존 신약 개발과 비교했을 때 DTx 개발 기간은 40%, 개발비용은 90% 이상 절감된다”며 “바이오 스타트업과 제약사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의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美 DTx 상용화 활발

사노피·BI 등 글로벌 빅파마도 눈독

지금의 DTx 시장 규모가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미국’이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상용화를 추진한 덕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0년 4월 ‘코로나19 응급 상황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한 디지털 건강 장비 시행방침 지침’을 발표했다. DTx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후 연달아 관련 DTx가 출시됐다. 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신경·정신장애(CNS) 부문에만 40개 이상의 DTx 제품이 시판 혹은 개발 중이다.

상용화 바람이 불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빅파마’들도 DTx에 뛰어들었다.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형태가 대다수다. 스타트업도 반기는 분위기다. DTx 개발은 기술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 임상 증거 수집이나 마케팅 등이 필요한데, 빅파마의 경험은 큰 힘이 된다. 또 빅파마들이 내놓은 기존 의약품과 복합 사용하는 방식도 꾀할 수 있다. 프랑스 빅파마 사노피와 DTx 스타트업 해피파이 협력이 대표 사례다. 이들은 사노피의 다발성경화증 약물과 불안·우울증을 줄일 수 있는 DTx를 함께 치료에 사용 중이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례도 있다. 독일 빅파마 베링거인겔하임과 클릭테라퓨틱스의 협업이다. 두 기업은 정신분열증(조현병) DTx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20년 조현병 디지털 치료제 ‘CT-155’ 개발을 위해 5억달러(약 6438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는 5900억원 규모 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국내는 ‘걸음마’ 단계…상용화 아직

웰트·에임메드·에버엑스 등 벤처 주목

국내 DTx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2월과 4월에는 식약처의 DTx 허가 사례도 나왔다. 불면증 인지행동 치료법을 겨냥한 에임메드의 ‘솜즈’와 웰트의 ‘웰트아이’다. 관련 업계는 일단 ‘솜즈’가 상용화에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솜즈는 앱을 통해 수면 습관 피드백을 제공하고 행동 중재 등을 조언한다. 수면 효율을 높여 환자의 불면증을 개선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정해놓은 수면 스케줄이 있다면, 이를 지킬 수 있도록 ‘낮잠을 줄여라’ 등을 조언해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방식이다. 솜즈는 상용화 단계를 준비 중이다. 지난달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혁신의료기술실시’ 승인을 받고, 임상적 근거 창출을 위한 ‘연구수행’ 단계에 돌입했다. 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가 끝나고 보험 심사 등 제반 절차를 마무리하면 11월 말 혹은 12월 초부터 6개 병원에서 처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근골격계’ 질환 부문을 겨냥한 DTx 스타트업 에버엑스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뷰 | 삼성·LG가 찍은 윤찬 에버엑스 대표
“2024년 미국서도 유의미한 매출 확대 기대”
(에버엑스 제공)
‘에버엑스’는 근골격계 질환에 주목한 디지털 치료제(DTx) 기업이다. 10년간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느낀 ‘재활과 운동 치료 영역 내 미충족 수요’에 주목한 정형외과 전문의 출신 윤찬 대표가 창업자다. 에버엑스는 현재 재활 운동 플랫폼 ‘모라(MORA)’와 국내 최초 근골격계 질환 디지털 치료제 ‘MORA-DTx’를 임상 실험 중이다.

Q. 에버엑스가 집중하는 분야는 어떤 분야인가.

A. 현재 근골격계 질환 부문 DTx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재활과 운동이다. 이를 DTx로 구현하려면 2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환자가 따라 할 수 있는 ‘근거 기반의 충분한 자료’가 필요하다. 또 환자의 운동 데이터를 의료진이 확인하고 쌍방향 피드백을 가능하게 하는 툴도 있어야 한다.

Q. 본격적인 매출 발생은 언제부터 가능할까.

A. 한국에서는 ‘MORA’ 플랫폼 활성화와 디지털 치료 기기 식약처 인허가를 위한 임상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바로 수익화가 가능한 원격 치료 모니터링(RTM)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고, 이미 시범 사용 중인 의료기관들이 나오고 있어 2024년 유의미한 매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Q. 올해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삼성넥스트와 LG전자 등 대기업도 참여했는데, 협업 가능성은.

A.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삼성·LG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업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Q. 국내 DTx 시장 미래를 어떻게 보나.

A. DTx 선두 주자 중 한 곳인 독일의 디지털헬스 앱 프로그램(DiGA)에는 50여개 DTx가 등록돼 있다. 하지만 실제 독일 내 DTx 사용은 아직 미비하다. 디지털 처방 시스템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DX)이 진행 중이다. 의료업계도 마찬가지다. 비록 DTx 후발 주자지만 상용화와 활용도만 보면 한국이 ‘선두권’으로 치고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4호 (2023.11.15~2023.1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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