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그리는 큰 그림 속 한국 개발 금융은 어디쯤 [경제칼럼]
근시안 벗어나 개발 금융 규모 확대, 구조 개혁 절실
글로벌 인프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 금융’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의 인프라 수요만 해도 2030년까지 연간 최소 1조7000억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1년 반 넘게 전쟁이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재건비용도 1조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이처럼 막대한 개발 재원을 당사국 정부나 세계은행 같은 다자개발은행(MDB)이 모두 충당할 여력은 없다. 최대 80%에 달하는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민간 재원을 동원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 트렌드의 핵심이 바로 개발 금융이다.
우리 정부는 2016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다지고 신흥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 지원 수단으로 ‘경협증진자금(EDPF)’을 도입했다. EDPF는 수출입은행이 금융 시장에서 차입한 자금을 재원으로 하되, 이자 일부를 재정에서 보전함으로써 저금리로 개도국 인프라 개발 사업에 대출하는 방식이다. EDPF 적용 금리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보다는 높지만 수출 금융보다는 낮다. 공적 인프라에 한해 지원되는 EDCF에 비해 지원 대상 범위도 상대적으로 넓다.
EDCF가 우리 기업 수주를 전제로 한 구속성 원조 원칙으로 운용되는 반면, EDPF는 구속성 조건이 붙지 않는다. 이처럼 EDPF는 금리와 구속성 측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어 사업 선정 기준이 까다롭다. 그러나 유리한 금융 조건을 활용해 EDCF 자금만으로 추진이 어려웠던 대규모 개발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신흥국 인프라 개발 수요 증가와 정부 재정 제약 등으로 인해 민관합작투자사업(PPP) 방식의 사업 발주가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총 사업비의 최대 85%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EDPF를 활용해 해외 PPP 시장 참여를 원하는 국내 기업이 늘고 있다.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세계 10위(2021년 15위)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운용 규모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11조7000억원을 승인하고 5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유상과 무상 원조의 분절화가 고착화된 기존 원조 집행 구조로는 효과적인 개발 금융 집행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무상 원조, 차관을 포함해 개발 사업에 필요한 보증, 지분 참여 등 다양한 개발 금융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현재 구조로는 쉽지 않다. 사업 발굴 단계부터 민관 합동 프로그램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통합적이고 혁신적인 개발금융기관(DFI) 설립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개발 금융은 MDB나 유럽·미주의 DFI에 비해 전문성과 규모가 떨어져 개발 금융을 통한 인프라 구축의 큰 그림을 그리는 상위 단계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그룹의 다자간투자보증기구(MIGA)가 일본이 기부한 2300만달러를 초기 자금으로 해서 만든 ‘우크라이나 경제·재건 신탁펀드(SURE TF)’로 우크라이나 재건에 나서는데, 우리는 개별 인프라 수주 등 하위 단계에 집중하는 실정이다. 근시안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개발 금융의 규모 확대와 구조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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