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한 달 전, 아파트 사전점검 뒤 잠을 못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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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기자]
청약에 당첨되었다. 2년의 기다림 끝에 다음 달, 입주를 앞두고 있다(관련 기사: 결혼 준비보다 더 빡센 새 아파트 입주, 이럴 일인가 https://omn.kr/26bz1). 이런저런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아파트 사전점검 날이 다가왔다. 총 3일의 기간 중 우리는 둘째 날로 방문을 잡았다.
입주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단톡방은 벌써부터 난리가 났다. 거실 벽면 아트월이 휘었다느니, 문이 없다느니, 물이 샜다느니... 첫날 사전점검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집마다 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는 하자를 전문적으로 체크해 주는 업체를 썼는데도 30개 정도밖에 수리할 게 나오지 않은 반면, 누군가는 셀프로 했는데 80개가 넘게 나왔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은 아파트가 '뽑기'라는 것이다. 집마다 시공한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 운이 좋아서 숙련공이 시공한 집을 당첨 받은 사람은 고칠 게 별로 없는 반면 초보자가 시공한 집을 받은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한숨을 쉬게 되는 거였다. 평가를 받는 기준이 되는 아파트만 정성 들여 짓는다고도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나? 몇 억이나 되는 집을 그런 식으로 짓는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 부랴부랴 아이를 지인에게 맡기고 의심 반 두려움 반으로 집을 나섰다.
사전점검 업체 쓸 걸, 후회가 밀려왔다
예약한 시간에 늦어서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가는 길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아직 도로 공사가 덜 된 길, 비포장 도로 곳곳엔 스산한 흙바람이 날렸다. 아파트 입구에서 입주민임을 확인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자료를 받아 들고 매니저라는 분을 대동하여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지하주차장을 걸어가는데 좀 전의 의심과 두려움을 사라지고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의 첫 집을 보는구나.
매니저는 누가 볼까 손으로 가리며 아파트 현관 비밀 번호를 비밀스럽게 눌렀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매니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사이 성격 급한 나는 먼저 집을 한 바퀴 휘 둘러보려 걸음을 옮겼다.
▲ 연결고리가 없는 아일랜드 식탁 문 |
ⓒ 최지혜 |
사전 점검을 하는 내내 한숨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점검시간이 끝나가니 마무리를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아니, 아직 반도 못 봤는데 나가라니! 이리저리 종종거리며 하자 체크 스티커를 붙이느라 몇 시간 동안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했는데, 멘붕이었다.
▲ 페인트인지 곰팡이인지 문틀마다 지워지지 않는 오염들이 가득하다 |
ⓒ 최지혜 |
▲ 박스와 함께 바닥에 붙어버린 문틀 |
ⓒ 최지혜 |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평생 뽑기 운이라고는 1도 없었던 내가 그러면 그렇지. 사전점검 업체를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30만 원 아끼려다가 300만 원 들어갑니다'라는 업체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 와중에 줄줄이 올라오는 운 좋은 사람들이 남긴 후기가 가슴을 후벼 팠다.
"저희는 같이 간 지인이 집 잘 지었다고 놀라더라고요. 10개도 못 찾았어요."
"내 집을 처음 볼 생각에 설레서 잠을 못 잤는데 실제로 와보니 너무 좋아요."
반면 나는 그날 이후 과연 하자를 제대로 고쳐줄까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분양 후시공' 계속 이래야 할까?
생각해 보니, 집을 제대로 짓지 않는 건 건설사인데 왜 내가 이렇게 속앓이를 해야 하나 억울했다. 사전점검이라는 건 말 그대로 가서 둘러보는 개념이 아니었나? 집을 짓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한두 곳 정도 빼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00개씩 하자체크를 해야 할 상황을 사전점검이라 부를 수는 없다.
사실, 사전점검을 대행하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니, 얼마나 전국적으로 엉터리로 아파트를 지으면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성행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 뽑기를 잘하기를 바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하고 보는 이 기묘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하물며 배추 한 포기를 살 때도 마트에서 직접 보고 싱싱한 것을 고르는데, 몇 억짜리 아파트를 보지도 않고 산다고? 과거에는 집이 부족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건설사들이 집을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거라 쳐도, 지금까지 그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얼마 전 이슈가 된 일명 '순살 아파트', 철근이 빠진 아파트의 탄생 배경에는 '선분양 후시공'이라는 일종의 특혜가 있다. 시공사와 감리사에서 아파트 전 동을 다 살펴볼 수 없다면, 그래서 일부 특정 구간에 대한 샘플을 확인하고 합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 '선시공 후분양'을 해야 한다. 구매자가 다 지어진 집을 보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지금과 같이 업체를 써야만 하는 사전점검은 없어지지 않을까.
'순살 아파트'처럼 꼭 어디가 무너져야만 부실 아파트가 아니다. 새시가 들떠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아파트, 볕이 들어오지 않아 베란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는 아파트도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아파트를 짓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건설사들에겐 여러 아파트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당첨자들에게 내 집은 딱 하나, 여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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