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으로 가는 길에 닭 요릿집이 많은 이유

이돈삼 2023. 11. 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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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서정 선사하는 대흥사 오가는 길목의 해남 계동마을

[이돈삼 기자]

 계동마을을 배경으로 흔들리고 있는 억새 물결. 마을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준다.
ⓒ 이돈삼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대흥사를 만나고 나오는 길이다. 두륜산 대흥사는 한반도에서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절집으로 오가는 '십리숲길'이 아직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도 만추의 서정을 선사한다.
여행의 절반은 먹을 거리에 있다고 했던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다. 대흥사로 오가는 길에 닭 코스 요릿집이 줄지어 있다. 대흥사와 해남읍 사이, 이른바 '돌고개' 주변이다. 오래 전 돌고개엔 주막과 대장간이 있었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북적댔다.
 
 닭 코스요리의 상차림. 닭고기 주물럭과 백숙이 올라와 있다. 닭 한 마리를 시키면 구이와 주물럭, 백숙, 닭죽까지 다 맛볼 수 있다.
ⓒ 이돈삼
   
해남의 닭 요리는 다른 지역의 요리와 견줘 비교우위를 차지한다. 해남의 특화음식이다. 코스요리를 주문하면 닭고기 회에서부터 구이, 주물럭, 백숙, 죽이 연달아 나온다. 닭 한마리 주문으로 다 맛볼 수 있다. 닭도 산과 들에 놓아 기른 '촌닭'이다. 그만큼 맛이 있고 양도 푸짐하다.
요리는 한 가지씩 올라온다. 정갈한 밑반찬과 함께 삶은 달걀이 나온다. 참기름장과 된장, 소금, 마늘이 곁들여진다. 닭고기를 먹을 때, 저마다 다를 수 있는 취향을 고려한 소스다. 아삭한 맛이 일품인 백김치, 숙성된 배추김치도 맛있다. 산마늘 잎과 양파를 절인 장아찌도 한쪽을 차지한다. 해초무침과 부침개도 맛깔스럽다. 쌈채도 정갈하다.
 
 닭 코스요리의 상차림. 닭 한 마리를 시키면 구이와 주물럭, 백숙, 닭죽까지 다 맛볼 수 있다.
ⓒ 이돈삼
 
삶은 달걀을 하나 먹고 있으면, 신선한 육회가 올라온다. 육회는 닭고기 가슴살을 저며서 내놓는다. 싱싱한 고기가 아니고선 내놓을 수 없는 부위다. 모래집(똥집)을 앙증맞게 썰고, 닭발도 잘게 다졌다. 고기가 야들야들하다. 식감이 씹을수록 더 좋다. 참기름을 곁들인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이번엔 구이를 가져다준다. 오븐에 구워 바삭한 닭의 날개와 다리에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소금만으로 적절한 맛을 냈다. 기름기도 쫘악 빠져 담백하다. 노르스름하게 구운 닭발은 덤이다.
 
 닭 코스요리에 올라온 닭고기 구이. 닭 한 마리를 시키면 구이와 주물럭, 백숙, 닭죽까지 다 맛볼 수 있다.
ⓒ 이돈삼
    
'닭날개를 먹으면 바람을 피운다'는 둥 옛 속설을 이야기하다 보면, 주물럭을 가져다준다. 닭의 가슴살과 다리 살을 양념장에 재운 것이다. 가래떡과 팽이버섯, 대파가 고명으로 얹어졌다. 불판에서 고기를 뒤집으며 골고루 익힌다. 고기는 된장과 마늘, 고추를 더해 야채와 함께 싸 먹는다. 된장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닭고기와 된장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젓가락질이 더뎌지는데, 음식이 또 나온다. 닭백숙이다. 남은 닭고기를 통째 넣은 백숙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곰삭은 파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국물도 진하면서 개운하다. 깊은 맛이 배어난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엔 닭죽이다. 녹두 등 여러 가지를 넣은 육수에다 고슬고슬한 찰밥을 넣고 끓였다. 부드러운 닭죽이 또 숟가락을 부른다. '잘 먹었다' '배부르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옥 주거단지에서 내려다 본 계동마을 풍경. 추위를 몰고 온 찬바람이 하늘을 더욱 파랗게 만들었다.
ⓒ 이돈삼
 
해남의 닭 코스요리는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코스요리의 원조로 통하는 '장수통닭'이 출발점이다. 닭백숙과 함께 구이, 회 등 부위별로 조금씩 떼어 내놓은 것이 입소문을 탔다. 80년대 후반엔 다양한 요리가 더해지며 코스요리로 발전했다.
닭고기 요리의 종류와 맛은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숙성된 묵은지와 함께 닭 요리를 내놓는 집도 있다. 과일이나 양념을 활용한 다양한 소스, 한방약재와 전복을 더한 해신탕도 맛과 풍미를 높여준다. 저마다의 맛을 찾아서 먹는 재미까지도 쏠쏠하다.
 
 황계동을 지키는 버드나무 고목. 오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 이돈삼
 
 계동마을의 담장 벽화. 마을 유래와 얽힌 닭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이돈삼
 
닭 요리는 전국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해남의 닭 코스요리는 다르다. 아직까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 맛을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 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해남 닭 코스요리의 출발점이 계동마을이다. 계동은 해남읍과 삼산면의 접경을 이루고 있다. 상가, 중리마을과 함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에 속한다. 연동저수지 뒤편에서 고만고만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민은 40여 가구 80여 명이 살고 있다. 50대 미만이 30여 명에 이른다. 비교적 젊은 동네다.
 
 계동마을 회관. 여느 마을과 달리 안팎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 이돈삼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유영후 계동마을 이장. 그는 올해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 이돈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에 우리 마을이 자리하고 있어요. 누런 암탉이 알을 품은 형상, 황계포란형입니다. 지명도 황계동(黃鷄洞)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계동(桂洞)'으로 바뀌었어요. 주민들은 원래의 이름, 계수나무桂가 아닌 닭鷄를 써서 계동(鷄洞)으로 바뀌길 바라고 있습니다."
유영후 계동마을 이장의 말이다.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정년 퇴직한 유 이장은 지난 2006년 계동으로 들어왔다. 계동은 처가 동네였다. 텃밭을 가꾸고 살면서 올해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억새 물결과 어우러지는 계동마을 풍경. 수확을 끝낸 들녘이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 이돈삼
  
 한옥 주거단지 '별빛한옥' 풍경. 일부는 입주하고, 일부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이돈삼
 
계동마을 뒷산에 삵바위도 있었다. 마을에서 삵바위가 보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 바위를 깨고 나무를 심어서 가렸다. 닭의 볏(여시)을 닮은 여시바위, 장군 형상의 장군바위, 사슴을 안은 듯한 포록동도 있다. 수령 500여 년 된 버드나무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일제강점 때 금을 파낸 금골의 흔적도 산중에 남아 있다.

계동마을은 '치매안심마을'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우수마을로 지정됐다. 마을 입구에 화단을 만들고, 집집마다 우체통과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한 것도 그때였다. 마을 안팎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

마을에 한옥 주거단지 '별빛한옥'도 들어서고 있다. 벌써 12가구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모두 2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지닌 찻집도 마을에 있다. 마을을 배경 무대로 삼아 논두렁과 어우러지는 억새 풍경도 장관이다. 마을 밖에서 가졌던 선입견과 달리, 참 아름다운 마을이다. 또 찾고 싶은 계동마을이다.
 
 계동마을을 배경으로 흔들리고 있는 늦가을 한낮의 억새 물결. 마을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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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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