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이가 들려주는 삶 이야기
[강지영 기자]
어느 날 저녁, '가짜 부엉이'를 보았다. 혜화동 대학로 소극장 '공간 아울' 간판에 붙어 있는 설치물이다. 밤이 되면 이 가짜 부엉이가 행인을 노려본다. 왜 아울(owl)일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짙어지면서 날기 시작한다더니, 저녁이 되자 혜화동 소극장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소극장으로 모여든다.
▲ 소극장 '공간 아울' 서울 혜화동에 있습니다 |
ⓒ 강지영 |
그날은 혜화동에 자리한 대학병원에 갔다. 정기검진 결과,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문을 나왔다. 병원문 앞에는 여러 사람이 오갔다. 처방전이나 안내문을 들고 오가는 사람,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달고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 교통정리를 하는 안내원, 모두가 나름대로 바쁘다. 응급차에서 환자가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보호자의 얼굴이 매우 경직되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오래전에 응급차에 실려왔던 일이 떠올랐다. 편도선에 농이 생겨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지역병원에서 응급차를 타고 이곳 대학병원에 실려 왔었지. 저 환자는 또 얼마나 절박할까. 삶과 죽음의 현장이 바로 병원이 아니던가. 산부인과 분만실과 장례식장이 공존하는 곳. 출생과 사망의 그 사이 어딘가에는 이처럼 많은 사람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병원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왔다. 배가 고팠다. 가까운 분식집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마로니에 공원의 늦가을 정취가 매혹적이다. 바람은 낙엽을 떨어뜨리고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바로 지하철을 타기가 뭣해서 혼자 걸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가짜 부엉이다.
▲ 연극 <염쟁이 유씨> 포스터 |
ⓒ 창작공간 스튜디오블루 |
7시 15분이 되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대는 음산했다. 무대 중앙에 비어 있는 관이 놓여 있다. 그 뒤로 병풍이 처져 있다. 그 옆으로 염을 하는 곳인 듯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맞은편에는 삼베로 만든 인형이 걸쳐져 있다. 눈코입도 보이지 않는 하얀 인형. 섬찟했다.
▲ 연극 <염쟁이 유씨> 무대장치 |
ⓒ 강지영 |
공연이 시작되자, 염쟁이 유씨가 등장했다. 현대식 염장이 답게 하얀 가운을 입었다. 잠시 후, 어색하다면서 가운을 벗었다. 이 연극은 배우 유순웅 또는 임형택이 출연하는 일인극이다. 그날은 유순웅 배우가 출연했다. 70대 노인 염장이 역이다. 배우 유순웅은 충청도 출생이라고 하는데, 말은 전혀 느리지 않다. 충청도 말이 느리다는 것은 편견이다. 그가 하는 일이 죽은 이를 염하는 일이다.
염이 무언가. 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히고 베로 감싸주는 일이다. 염쟁이 유씨는 시신을 정성껏 닦아주고 한 겹 한 겹 베로 싸맨다. 그의 손길은 바쁘지 않다. 거칠지 않다. 죽은 이를 천천히 경건하게 위무한다. 그걸 바라보는 산 자는 고달픈 삶을 위로받는다. 언뜻, 내가 죽더라도 저렇게 마음이 따뜻한 염장이에게 염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깐 웃음이 나왔다. 염쟁이 유씨는 염하는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갖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벱이여.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이 연극의 대본이 책으로도 나왔다길래 구매하였다. 김인경의 <염쟁이 유씨>(평민사, 2022). 내가 읽어본 책 중에서 가장 얇은 책이다. 전체가 40쪽이다. 책값은 7천 원인데, 인터넷으로 더 싸게 샀다. 포장지를 뜯자마자 소파에 누워 금세 다 읽었다. 책을 읽으니 유순웅 배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늙은이가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젊은이가 못돼서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이 급변하기 때문에 늙은이의 농익은 인생철학이 필요치 않아서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어. 그런디 죽어서 땅에만 묻혀 버리고,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에 묻히지 못하면 그건 잘못 죽은 게여. 또 남아 있는 사람한테도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중요한 게여. 가슴에 안느냐, 그냥 구경거리로 삼느냐. 억울한 죽음 앞에서 구경꾼처럼 구는 사람들은 종국에는 자기 죽음도 구경거리로 만들고 마는 벱이지."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산 자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볼 대목이다. 타인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도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니, 이 같은 말을 일컬어 촌철살인이라 하는가. 아울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김인경 작가가 말한 대로,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게다. 무엇에 내 마음을 기울일 것인가. 염쟁이 유씨는, 죽는다는 건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이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인연을 맺고 살아갈 것인가. 깊어가는 가을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연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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