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말 한마디 때문에... 파장이 일었다

구교형 2023. 11. 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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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이] '욕하다가 닮는다'는 적대적 공생관계 남과 북

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 <편집자말>

[구교형 기자]

 영화 <공작> 포스터
ⓒ 사나이픽처스
'욕하다가 닮는다'라는 말이 있다. 남한과 북한은 체제와 이념, 사상과 문화까지 무엇 하나 겹치는 게 없을 정도로 다를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이 비슷하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통치 및 정치 운영 방식이 정말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남과 북은 서로를 매우 적대하고 증오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서로를 매우 필요로 하고 상대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까지 쓰인다.

2018년 상영된 영화 <공작>은 남북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선거에서 이기려는 한국의 보수 정부가 휴전선 근처의 군사적 소동을 북한에 부탁하고 북한도 그 대가로 금전거래를 요구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영화상 허구가 아니라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북풍'이니 '총풍'이니 하는 이름으로 확인되었던 사실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또 하나의 볼거리는 김정일을 연기한 배우가 얼굴, 이미지, 목소리, 행동거지까지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우보다 더 닮아있는 것이 남북의 정치와 신화다. 

나라 세운 '국조' 신화로 뒤덮인 이승만과 김일성

처음은 항상 특별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나라의 창건자나 지도자는 늘 특별하게 그려졌다. 한민족 첫 시조인 단군의 신화, 고구려 주몽과 신라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 조선 태조 이성계를 기리는 용비어천가 등이 대표적이다.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적대적으로 시작했으니 개국 지도자는 특별한 신화로 채색되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첫 대통령으로 12년이라는 긴 기간을 통치한 이승만의 신화는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로 시작한다.

같은 독립운동가라 해도 김구, 김규식, 안창호 등 누구와도 다르다. 영어가 능통한 미국 정치학과 철학박사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인물과 친해 대한민국을 미국 닮은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독립운동가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를 세운 것은 국부(國父) 이승만이고 그에 대한 예우로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김일성 신화는 한술 더 떴다. 축지법을 쓰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솔방울로 폭탄을 만들었으며 굶주린 백성을 위해 모래로 쌀을 만들어 먹였다거나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해 김일성만 나타나면 꽁지 빠지게 도망가고 칭송은 높았다는 식이다. 북한에서 독립운동사나 사회주의 운동사는 모두 김일성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그의 항일투쟁은 사실이지만 과대포장 됐다. 

이러한 '국조'의 화려한 권위를 바탕으로 이승만이 남한에서,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들어 놓은 권위주의 정권과 대결적 분단체제는 이후 70여 년의 현대 한반도를 결정지으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한반도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기초 지은 원조다.

유신독재와 세습 독재 뿌리내린 박정희와 김일성

이승만과 김일성이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체제를 만들어 냈던 지도자라면 박정희와 김일성은 외세의 보호막을 벗고 그보다 오랜 세월을 유일무이한 독재자로 군림하며 분단체제를 굳힌 지도자다. 또, 이승만과 김일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 대해 적대로 일관했다면 박정희와 김일성은 국내 정치를 위해 상대 체제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때가 격변기였던 1972년이다. 그 무렵 발목 잡힌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미국은 소련과 분쟁 중이던 중국(당시 사회주의 중공)과 돌연 수교를 하며 미군 철수 분위기까지 보였다. 지금껏 체제의 맏형들만 철석같이 믿었던 남북은 갑자기 자력 방어에 내몰리게 된다. 동병상련을 끌어안은 박정희와 김일성은 비밀 특사를 오고 가게 하더니 적십자 대표단이 공개적으로 오가고 마침내 7.4 남북성명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함께 발표한다.

한순간에 평화와 공존이 일어나고 통일도 머지않은 것처럼 온 겨레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남북 수뇌부에게는 물밑에서 이미 다른 생각이 작동하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통일과 안보를 위해 헌정질서를 정지한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다는 발표와 함께 국회를 해산하고 주요 인사를 체포하면서 7년의 유신독재로 들어갔다.

북한도 사회주의 헌법을 새로 채택하면서 수상이던 김일성을 넘볼 수 없는 최고 존엄인 주석에 앉히며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세습 독재를 굳혔다. 남과 북이 마치 전체 시나리오와 시점까지 미리 각색한 것처럼 놀라운 적대적 공생이었다.

지도자 앞에서 수첩에 받아적는 전문가
 
 지난 6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1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개그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는 군대 이야기다. 사단장이 헬기 타고 내려와 부대장을 비롯한 모든 장교가 부동자세로 도열해 있다. 사단장이 한 번 둘러보더니 연병장에 핀 개나리보다는 철쭉꽃이 더 어울리지 않겠냐며 무심코 한마디 한다. 사단장이 가고 난 후 부대장은 모든 부대원을 집합시켜 개나리를 뽑고 철쭉꽃을 심느라 부산을 떤다.

이런 장면은 어떤가? 대통령이 교육청을 방문하면 장학사를 비롯하여 관할지역 교장과 교육 공무원들이 모여 한 마디라도 놓칠까 봐 귀를 쫑긋 세우고 대통령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수첩과 볼펜 한 자루씩 들고서 말이다. 

지난여름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며 킬러 문항을 비판하자 교육 당국이 총출동했다. 갑자기 대학 입시를 점검하고 학원계에 비상이 걸렸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겨우 150일 남겨둔 상황에서 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 말 한마디에 나라의 입시 방향이 바뀐다.

이후 교육부에서 대학 입시를 담당하는 국장인 인재정책기획관이 문책성 인사조치인 대기발령을 받았고, 수능 출제의 총책임자인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이유로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져 파장이 일었다.

그런데 이런 코미디가 늘 벌어지는 곳이 북한이다.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협동농장으로, 철공소로, 조선소로 현지 지도 나가면 현장 간부들은 물론 인근 군 부대장, 중앙당 간부들까지 총출동해 수첩을 들고 따라다니며 뭔가를 열심히 받아 적는다. 현지 지도를 마치면 지도자 동지의 교시를 이행하기 위해 틀림없이 현장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경작지가 부족한 나라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긴 김일성이 산자락에도 남김없이 밭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다락밭이 만들어진 일화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밭은 생겼지만 산에 나무가 사라지고 산사태가 빈번하게 되어 북한 농업에 더 큰 타격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러한 현장 방문이나 현지 지도는 자칫 관료주의로 인해 전달되지 못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최고 지도자가 직접 듣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좋은 취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적인 식견도 없는 지도자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당장 내놓는 말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정책과 운영을 한순간에 뒤바꾸는 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남한과 북한 모두 오랜 군부 독재정권의 습성이 남은 병영적 공직사회인 것을 알 수 있다.

남북한처럼 적대세력을 두고 싸우다 보면 상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도 하지만 어느새 상대방이 있어 자신의 자리가 더욱 강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세계 냉전 체제가 끝났어도 한국은 여전히 사회 모든 부분에서 북한의 흔적을 검열하여 제거하려는 노력에 민감하다.

한국 거대 양당정치도 서로 욕하면서 닮은 또 하나의 모델이다. 이제는 자기 체제와 기관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존재를 악용하거나 지나치게 닮아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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