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인물]바이든·트럼프 모두 긴장시킨 '제3후보', 케네디 주니어
내년 美 대선 때 선거판 흔들지 주목
민주당원 출신, 10월 무소속 출마 선언
"나는 오늘(지난 10월 10일)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것임을 선언합니다."
내년 1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모두 긴장하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정치 명문' 케네디가(家)의 일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민주당 출신의 그는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한 지 한 달 만에 주요 여론조사에 등장하며 전·현직 대통령을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15일 공개된 주요 외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성인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누구를 찍겠냐는 질문에 응답자 20%가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를 선택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전·현직 대통령의 지지율 변화다. 두 사람은 양자 대결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각각 51% 대 49%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런데 3자 대결 구도로 가면서 지지율이 각각 32%, 30%로 떨어졌다. '투표하지 않겠다'는 응답률은 8%, '모르겠다 또는 답변 거부'가 10%였던 점을 고려하면,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동시에 끌어내리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위협을 가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는 뻔한 두 후보가 '리턴 매치'를 치르는 것이 식상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제3지대 후보'의 대표 주자가 됐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은 내가 바이든의 선거를 망칠까 봐 두려워하고, 공화당은 내가 트럼프의 선거를 망칠까 봐 두려워한다. 맞다. 내 의도는 두 사람을 모두 망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원이 공화당 유권자 마음 잡았다?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두 유력 후보를 모두 흔들 수 있는 건 그가 민주당원이면서도 동시에 공화당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이자 환경운동가인 그는 백신 접종 반대 운동으로 큰 논란을 빚어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5년 백신과 자폐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문제가 됐다. 당시 그는 롤링스톤지 등에 직접 기고문까지 작성했으나 이 주장이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어 기고문이 온라인상에서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19 당시에도 백신과 관련해 부정확한 정보를 자주 공유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이 사용 중단되기도 했다. 마치 극우 정치인처럼 활동한 것이다. 그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 앤서니 파우치 전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백신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는 음모론에도 힘을 실었다.
이러한 그의 행보로 인해 민주당원의 표심은 잃는 대신 공화당원들의 호감을 샀다. 지난 4월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해 바이든 대통령과 현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하곤 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9월까지 "그를 많이 좋아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공화당에서 그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도 그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자 '그를 반대하는 23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놓고 화석연료 추출 반대 등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해왔던 그동안의 행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의 행보를 좋아하는 일부 공화당원이 있을 뿐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라이벌이 되는 건 공화당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출마 선언 직후 형제들이 비판 성명 내놓은 이유는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미국 정치 명문인 케네디가의 인물이다. 케네디가에서 네 번째로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기도 하다. 1976년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지 않은 그의 삼촌인 로버트 사전트 슈라이버 주니어를 포함하면 다섯번째다.
하지만 독특한 이력 때문에 케네디가의 가족들은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 1954년생으로 올해 69세인 케네디 주니어는 1963년 총격 피살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1968년 역시 총격에 목숨을 잃은 로버트 F.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아들이다. 11남매 중 셋째다.
그의 남매 중 로리 케네디, 케리 케네디, 조셉 P. 케네디 2세, 캐슬린 케네디 타운센드 등 4명은 지난달 10일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자 공식 성명서까지 내놓으며 그의 출마를 막으려 했다. 이들은 "'바비(케네디 주니어의 별칭)는 우리 아버지와 이름은 같지만 같은 가치나 비전, 판단을 공유하고 있진 않다"면서 "우리는 그의 출마를 강력히 비판하며 우리나라에 매우 위험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또 케네디 주니어의 사촌인 캐럴라인 케네디는 현재 호주 주재 미국 대사로, 그의 숙모인 빅토리아 레기 케네디는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로, 조카인 조 케네디는 북아일랜드 특사로 재직 중이다. 케네디 주니어가 강하게 비판했던 현 정부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젊은 시절에도 말썽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학창 시절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돼 기숙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버드대에서 1976년 미국 역사와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런던정경대에서도 공부했으며 1982년 버지니아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에는 맨해튼에서 지방 검사보로 일하기 시작, 이듬해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후 약물 과다 복용과 헤로인 소지 등으로 체포돼 사회봉사와 2년간의 보호관찰 조치를 받게 됐다. 1985년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이후 변호사이자 환경 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지금까지 세 번 결혼했으며 여섯 자녀를 두고 있다.
"리턴매치 식상해"…제3지대 후보 급부상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가 여론조사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미국 대선판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차기 대통령으로 당장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유력 후보의 지지율을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행보를 양당이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1992년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약 19%를 기록한, 기업가 출신 로스 페로 후보 이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대선 후보로 잠재력이 있는지 자체를 현시점에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 외에도 진보 녹색당 후보로 거론됐던 흑인 사회운동가이자 진보적 신학자 코넬 웨스트(70)와 녹색당 후보로 두 차례 출마했던 질 스타인(73), 민주당 거물급 정치인으로 '여당 내 야당'이라고 불리는 조 맨친(76)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제3지대 후보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위협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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