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발전엔 '테크'가 필요하다 [테크토크]
VPP·ESS 등, 친환경 테크 필요해
아직 시장 초입…인프라도 미완
비용도, 기회도 간과하기 힘들어
친환경 전력에 '올 인(all in)'했던 유럽 대륙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 가스 가격 급등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해상 풍력 설비 제조기업 '오스테드'의 주가는 최근 25% 급락했지요. 재생 에너지 전환이 시기상조였다는 회의론도 나옵니다.
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등에 업었던 풍력, 태양광 설비는 지난 십수년간 크게 발전했습니다. 실제 발전단가도 크게 내려갔습니다. 그런데도 에너지 위기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체 재생 에너지는 왜 비쌀까?
재생 에너지의 딜레마를 이해하려면 우선 재생 에너지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풍력 발전이 국가 전체 발전량의 50%를 차지하는 국가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얼핏 보면 이 나라의 풍력 터빈이 사시사철 50%의 전력을 공급해 주는 것처럼 비치지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풍력, 태양광 에너지의 가장 큰 문제는 발전량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매년 바람의 세기, 일조량의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좌우됩니다.
즉, 이 나라의 풍력 발전은 매일 50%의 전력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바람이 잦은 날은 100%, 바람이 없는 날은 0%의 발전을 하면서 평균 50%를 맞췄다는 뜻이 되겠지요.
바람이 아예 없으면 국가 발전량의 50%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에 따라 다른 발전 설비에 수요가 몰려 전력 가격이 급등할 겁니다. 한편, 바람이 잦은 날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갑자기 풍력 설비들이 너무 많은 전력을 공급하는 바람에 송전망에 과부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송전망 운영자는 풍력 설비와 송전망의 연결을 강제로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결이 끊긴 풍력 설비 소유주에 보상금을 줘야 하지요. 그럼 또 전력 가격은 급등할 겁니다.
'변동성'을 줄여라…친환경 테크의 대두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변동성(Volatility)은 친환경 에너지의 실질 발전 단가가 내려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선진국보다 비교적 친환경 에너지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조차 '과잉 친환경 전력'으로 인한 소식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전력이 에너지 믹스의 주류를 차지할수록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질지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친환경 전력을 100% 이용하려면 유연하고 탄력적인 송전망 관리 기술, 그리고 장기적으로 잉여 전력을 보관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각각 가상 발전소(VPP)와 에너지 저장 시설(ESS)이라고 합니다.
ESS의 경우, 2차 전지 팩 수십 개를 합쳐 한 번에 수백 메가와트(MW)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 세계 여러 곳에서 건설 중입니다. 하지만 ESS만으로는 한계가 극명합니다. 현시점에선 아무리 고성능의 배터리팩이라 해도 장시간 전력을 저장해두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과잉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지만, 아직 대량 양산까진 먼 길이 남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은 VP가 더 중요합니다. VPP는 분산된 여러 채의 발전 시설, 전력 저장 시설을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묶어 마치 한 개의 거대한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기술입니다. 과잉 생산된 전력을 분산시켜 빈 배터리에 채워 넣거나, 블랙아웃 위기를 겪는 전력 결핍 지역에 에너지 생산 시설 노드를 배치하는 방식이지요.
VPP 기술에서 앞서 나간 곳은 전력 소매 시장이 민영화된 미국, 영국입니다. 미국에선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VPP 기술을 도입 중이며, 영국 2위의 에너지 소매 기업 '옥토퍼스'는 자체 클라우드 기반 지능형 전력 관리 체계 '크라켄'으로 이미 수백만명 넘는 고객을 관리 중이지요.
VPP 기술이 지금보다 더욱 심화하면 인간의 전력 소비 패턴도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옥토퍼스의 경우 친환경 설비 가동률이 일정량을 넘기면 실시간으로 고객의 전기 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를 운용 중입니다. 이를 통해 전력이 풍부할 땐 수요를 높이고, 전력이 줄어들 땐 수요를 깎는 '넛지(nudge·특정 선택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런가 하면 VPP는 단순히 발전 시설이나 배터리를 넘어 전기차로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일명 G2V/V2G(그리드투비히클·비히클투그리드)라 불리는 기술로, 국가 내 전기차 충전소에 꽂힌 전기차 배터리 전체를 VPP로 삼아 친환경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제어하는 기술입니다.
기회도, 비용도 기만할 수 없다
친환경 설비로 만들어진 전력은 변동성을 제어할 수 있는 테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VPP·ESS 모두 시장 초기 진입 단계에 불과하며, 이런 상황에 재생 에너지 발전 시설만 많이 만들어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재생 에너지는 분명 미래입니다. 탄소 감축은 전 인류적인 과업이며, 앞서 설명한 변동성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일부 자원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값싼 전기를 마음껏 누리는 시대를 열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모든 '전환'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과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VPP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송전망도 대대적으로 개량해야 합니다. 발전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수요처, 혹은 ESS로 전력을 보낼 수 있도록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이뤄진 일명 '전류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런 공공 인프라를 완비하려면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 겁니다.
VPP 자체에 대해서도 숙고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껏 디지털 기술과는 인연이 거의 없던 발전 설비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작업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 인력을 요구합니다. 이를 국영 기업이 부담하든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든,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적어도 초기엔 상당한 고정자본 투입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전기는 현대 문명의 혈액과 같으며, 전기 요금은 어떤 나라에서든 민감한 문제입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의론이 그 잠재력을 차단할 우려가 있는 것만큼이나, 무턱대고 낙관론을 펼치는 것도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기만하는 행위가 될 겁니다.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은 우리가 얼마나 큰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의 에너지 믹스를 이룰 것인지 합의가 된 후에 비로소 걸음을 뗄 수 있을 겁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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