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디즈니 100년, 라따뚜이에서 온코마우스까지
올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 디즈니 애니를 세계적으로 알린 캐릭터는 단연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다. 1928년에 태어났으니 아흔여섯 살이다. 미키 마우스가 크게 히트하면서 여자친구 미니 마우스(Minie Mouse)까지 유명해졌다.
애니 사상 최대의 히트작은 MGM이 제작한 ‘톰과 제리’가 아닐까. 우둔한 고양이(톰)와 영리한 생쥐(제리)가 주인공이다. 현실에서 생쥐는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지만 MGM 애니에서만큼은 정반대다. 제리는 언제나 귀엽고 꾀 많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동물이다. 톰을 실컷 약 올려놓고는 쥐구멍으로 ‘쏙’ 들어간다. 약자가 강자를 골탕 먹이고 괴롭힌다는 설정에 시청자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Ratatouille)’. 숨죽이면서 단숨에 본 애니메이션이다. 배경은 파리의 최고급 구스토 레스토랑. 주인공은 후각과 미각이 천부적으로 발달한 떠돌이 쥐 ‘레니’와 요리에 재능이 없어 해고 위기에 처한 주방 견습생 링귀니.
레니와 링귀니는 의기투합, 협업을 약속한다. 레니가 링귀니의 모자 속에 들어가 링귀니에게 요리를 지시한다. 이렇게 만들어낸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구스토 레스토랑에 손님이 줄을 잇는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즐기는 전통 야채스튜를 말한다. Rat는 영어와 불어가 똑같이 ‘쥐’를 뜻한다. 프랑스어 사전에 따르면 랫은 숫쥐를 가리킨다. ‘라따뚜이’는 요리 이름이면서 쥐(Rat)를 접두사로 사용함으로써 제목에서부터 ‘쥐와 요리’를 암시한다.
쥐는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산다(남극을 제외하고). 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랫과 마우스. 마우스는 보통 생쥐라고 불리며 한 곳에서만 서식하는 집쥐를 말한다. 랫은 시궁쥐로 몸집은 마우스보다 크고 꼬리가 길다.
찰리 채플린(1889~1977)의 고향은 영국 런던 남부의 램버스다.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의 옛 식민지에서 런던으로 오는 사람들이 초기에 주로 정착하는 곳이다. 채플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램버스 캐닝턴에 가면 여러 곳에 삶의 흔적을 알리는 플라크가 붙어 있다.
그가 아홉 살 무렵 살았던 집 외벽에도 플라크가 붙어 있다. 이 명판에는 채플린을 가리켜 ‘영화제작자(filmmaker), 워터 랫(water rat)’이라고 표기해놓았다.
워터 랫? 처음엔 워터 랫이 의아했다. 왜 워터 랫이라고 했을까. 영어사전의 맨 아래에 ‘워터 랫’이 떠돌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채플린이 1923년 할리우드 맥 세넷 스튜디오 의상 창고에서 창조해낸 캐릭터가 트램프(tramp) 아닌가. 채플린은 곧 떠돌이다.
내가 뉴욕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90년대 초. 첫인상은 뉴욕 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전망대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마천루 아래 보도에서는 불쾌한 인상을 받곤 했다. 보도블럭 아래 구멍을 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뉴욕의 지하철 철로와 거리 음식점 주변을 배회하는 쥐가 랫(Rat)이다.
뉴욕의 오랜 고민 중 하나가 ‘쥐 박멸’이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뉴욕시는 2023년 4월, 쥐 박멸 전담 고위공무원직(설치류 경감국장)을 설치하고 공모를 통해 뽑았다. 9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뉴욕 역사상 최초의 ‘랫 차르(Rat Czar)’로 발령받은 이는 캐슬리 코라디. ‘랫 차르’는 쥐가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 식당 음식물 내놓는 시간을 오후 4시에서 8시로 연장했다. ‘랫 차르’ 코라디가 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건 ‘먹이 뺏기’예요. 그동안 맨해튼의 음식점들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아무 고민없이 길거리에 내놨습니다. 쥐에게 밥상을 차려준 거죠.”
쥐들은 대부분 인간이 남긴 음식물을 먹고 생존한다. 잔반이 생기는 한 쥐들은 존재한다. 쥐들이 굶주리는 시간을 길게 해 개체수를 줄여나간다는 게 ‘랫 차르’ 코라디의 원칙이다.
동물 중에서 쥐만큼 인간에게 갖은 박해와 멸시를 당하는 동물이 있을까 싶다. 이것은 언어생활에 그대로 반영된다. ‘쥐’는 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욕설부터 속담에 이르기까지. 쥐새끼 같은 놈, 쥐꼬리만한 월급,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쥐가 박멸의 대상이 된 것은 병균을 옮기고 곡식을 축내기 때문이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0~50%를 죽게 한 흑사병은 생쥐에 기생하던 쥐벼룩이 숙주였다. 화물선에 서식하던 생쥐가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에 들어가면서 유럽 대륙은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5060세대와 MZ세대는 ‘쥐’에 대한 인식에서도 다르다.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에 태어난 5060세대는(아파트에 산 경우를 제외하고) 쥐가 서식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단독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집집마다 쥐덫을 몇개 씩 갖고 있었다. 1970년대 정기적으로 쥐잡기운동이 펼쳐졌고, 쥐꼬리를 가지고 학교에 가면 상을 받았다.
벽촌 출신인 나 역시 쥐에 대한 기억이 선연하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쥐들이 천장에서 달리기를 하곤 했다. 야행성인 쥐들은 주로 지붕과 천장 사이 공간이 활동 무대였다. 어떤 때는 쥐들이 천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처럼 소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인류는 역사 이래 쥐와 싸워왔다. 그러나 승자는 언제나 쥐였다. 세계의 수도 뉴욕에 ‘랫 차르’가 등장했다는 것이 모든 걸 함축한다. 그림(Grimm) 형제의 그림동화 ‘피리부는 사나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의 산물이다. 독일 하멜른에 쥐떼가 창궐하자 시장이 현상금을 건다. 쥐떼를 박멸하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 어떤 남자가 피리를 불어 쥐 떼를 강물에 빠트려 죽게 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시장은 마음이 바뀐다. 상금이 아까워진 시장은 상금을 주지 않기로 음모를 꾸민다. 측근들과 짜고 피리 부는 남자를 쫓아낸 것이다. 이에 분노한 피리 부는 사나이가 복수를 한다. 한밤중에 피리를 불어 도시의 어린이들을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3만 달러 시대에 태어난 MZ세대는 쥐덫에 대한 기억 자체가 희미하다. 쥐에 대한 혐오도 5060세대와 온도차가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MZ세대는 햄스터를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사실이다.
햄스터는 원래 의학실험용 쥐에서 태어났다. 의학실험용 쥐 중에서 암 연구를 위해 유전적 변형을 가한 쥐가 ‘온코마우스(OncoMouse)’다. 온코마우스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실험용 쥐로 1988년 특허를 취득했다. 온코마우스는 하버드마우스라고도 불린다. 온코마우스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실험용 쥐가 있었지만 특허를 받은 의학실험용 쥐는 온코마우스가 처음이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학자인 도나 해러웨이(1944~)는 온코마우스를 자매(sister)라고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온코마우스는 인간을 대신해 종양을 달고 유리상자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다 생애를 마친다.
2021년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4050 여성 사망률 1위는 유방암이다. 육식을 많이 할수록 유방암 발병률이 높다. 유방암은 초기에만 발견되면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은 90% 이상이다. 그만큼 초기 진단이 중요하다.
온코마우스는 주로 유방암 치료제 개발을 위해 태어나고 사육된다. 온코마우스의 눈망울을 한번 보면 쉬이 잊히지 않는다. 이 세상 여성들은 쥐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온코마우스의 운명에서 예수의 수난을 떠올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온코마우스의 생애를 알고 나면 함부로 쥐를 혐오하는 게 어려워진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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