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농부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신상목 2023. 11. 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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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탐사부장


내일은 대부분 한국교회가 절기로 지키는 추수감사절이다.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수확하게 해준 하나님의 은택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경제 불황과 불확실성의 시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맹렬한 기후위기, 헤아릴 수 없는 흉악 범죄와 사건 사고 등에서 각자도생도 모자랄 판인데 무슨 감사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의외로 감사의 조건은 넘친다.

당장 지인이 올린 감사 가득한 카톡방을 보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하나님이 아버지 되어 주셔서 감사’ ‘질병 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 ‘아름다운 만남에 감사’ 등등 감사 시편으로 불리는 구약성경 시편 136편의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일부러라도 감사할 때 우리 내면은 긍정의 에너지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국민 건강 전도사 황성주 이롬 회장도 “감사는 만병을 치료하는 묘약”이라고 설파한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에서 기원한 절기는 아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한국교회가 채택했다. 하지만 그 배경은 성경적이다. 구약 시대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초막절)는 모두 출애굽 사건과 광야생활, 첫 수확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 여기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 섭리의 역사가 자리한다.

영국 국교도들에 의해 종교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가(출애굽) 척박한 땅에서 온갖 역경을 헤치며 농사를 지어(광야생활)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이다. 그때가 1621년 가을이었다. 65일간 3400마일(5440㎞)이라는 험난한 항해 끝에 닻을 내렸고 혹독한 추위와 질병, 식량 부족과 짐승들의 위협, 그리고 절반 가까운 동료들의 죽음 이후 얻은 수확이었다.

고통스러운 1년이었지만 원주민 인디언들은 청교도들에게 곡물을 가져다주었고 농사법도 가르쳤다. 첫 추수감사절에는 인디언들이 초대돼 곡식과 칠면조 고기 등을 함께 먹으며 기뻐했다. 정착지 플리머스 책임 행정관이었던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1623년 ‘추수감사절’을 공식 선언했고,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선포했다. 추수감사절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해 11월 넷째주 목요일로 통일됐다.

한국교회 추수감사절은 장로교가 11월 10일을 감사절로 정해 기념하다가 1914년 미국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변경했다. 이후 추수감사절은 11월 셋째주 일요일로 지키게 됐다. 최근엔 우리 민족의 역사 경험과 축제 전통을 살려 추석을 감사절로 시행하는 교회도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 추수감사절은 일제의 속박에서 출애굽하려는 희망, 그리고 일제강점기 35년과 6·25전쟁, 전후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라는 광야생활을 거치며 일궈낸 수확에 대한 감사가 근간을 형성한다.

추수감사절은 현대 도시인들에겐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년간 수고한 모든 노동의 과정이 농사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추수감사절은 여전히 유효하다. 논농사의 경우 밭갈기와 물대기, 모내기, 거름주기, 김매기, 물빼기, 추수와 건조, 탈곡과 저장까지 200여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더욱이 농사는 농부 혼자 열심히 일한다고 풍년을 맞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고 날씨도 적당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한다고 해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다. 어쩌면 농부들이 그런 것처럼 하늘을 쳐다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어떨까. 예수는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하나님을 포도원 농부라 말했다(요 15:1). 농부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하다. 다형 김현승 선생의 시처럼 ‘가을에는 농부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싶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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