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마음의 양식과 육신의 양식

2023. 11. 1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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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처럼 미스터리한 물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순히 보면 책이란 글자가 인쇄된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바늘이 돋는다는 말이 있듯 책 없이 못 산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다.

도대체 책이 뭐기에 이렇게 읽고, 쓰고, 모으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책과 연결된 독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나는 여럿 만났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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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책처럼 미스터리한 물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순히 보면 책이란 글자가 인쇄된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바늘이 돋는다는 말이 있듯 책 없이 못 산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다.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가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매일 글을 쓰지 못하면 몸이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뒤이어 그는 누가 자신의 손을 잘라버린다면 발로 타자기를 칠 거라며 책 쓰기에 거의 집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평생 알코올의존증으로 고생한 그였는데 어째서인지 책을 향한 열정 역시 대단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나폴레옹은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라도 책 읽기를 즐겼던 독서가이자 애서가다. 정말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는 한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언제나 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책만 읽는 바보’ ‘간서치(看書癡)’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를 비롯해 유배 중에 수백 권의 저서를 남긴 정약용 등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도대체 책이 뭐기에 이렇게 읽고, 쓰고, 모으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책과 연결된 독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나는 여럿 만났다. 가장 흔한 것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가면 배가 살살 아파서 화장실을 찾는 현상이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꽤 있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책을 만들 때 종이에 화학약품 처리를 한다. 이런 책들이 가득 있는 곳에 가면 그 약품 냄새 때문에 배가 아픈 걸까? 혹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공간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들떠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예를 들자면 책을 읽고 나서 자주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 평소엔 먹을 것에 관심이 많지 않다. 식도락 여행에도 딱히 흥미가 없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뭔가 먹고 싶어진다. 읽은 책에 관련된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언젠가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지하철 합정역 근처 그리스 음식점에 가기도 했다.

이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헌책방에 온 손님과 얘기를 나눠보니 책 읽다가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어떤 분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고 평소에는 관심 없던 스파게티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한다. 결국 밤늦은 시간에 편의점에 달려가 전자레인지용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고 나서야 잘 수 있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초반부에는 주인공이 집에서 식구들과 식사하는 장면이 긴 설명과 함께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고 갑자기 아스파라거스가 먹고 싶어졌다는 손님도 있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경우에는 마음뿐만 아니라 육신의 양식과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진지한 호기심이 인다. 게다가 가을은 식욕이 오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혹시 그 원인이 책을 읽고 느끼는 허기 때문은 아닐까? 역시 책만큼 미스터리한 물건은 없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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