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재활의 길 열어 인류 건강에 선한 영향력 주고 싶어”
다리나 어깨, 허리를 다친 사람들에게 물리 재활치료는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뇌를 다친 사람들이 두뇌 재활치료를 받는다는 건 좀 어색하다. 피부 테라피, 두피 테라피는 익숙하지만 두뇌 테라피는 생소하다. 누군가에게 어색하고 생소하기만 한 영역을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영역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기업이 있다. 나아가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치매와 알츠하이머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켜가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가 발생한 두뇌를 톱니바퀴가 맞물려 작동하듯 회복시키고 케어한다는 의미를 담은 기업, ‘브레인기어’(대표 김일구)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일구(47) 대표는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이어온 걸음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모태신앙인 그가 걸어온 어떤 길목이 이 같은 고백을 풀어놓게 했을까.
“탕자여서 그렇습니다. 직장인이 되면서 신앙의 길에서 완전히 이탈하다시피 살았죠. 내가 계획한 대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시 만난 하나님이 이탈했던 궤도를 바로 잡아주셨어요. 그래서 더 기적 같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며 부전공으로 유기화학을 공부했던 물리학도였다. 나이 스물일곱에 대기업에 입사해 광소자 LED를 활용한 텔레비전을 설계하고 개발했다. 물리학 석사를 거쳐 퇴사 후 박사 과정에 도전하며 대학교수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할 참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제동이 걸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일리노이주립대 등 입학을 자신했던 학교들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 경제를 뒤흔들며 그의 계획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김 대표는 “다행히 호주 퀸즈랜드대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는데 되돌아보면 그게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다시 출발선에 선 그에게 한국에서의 커리어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지 못했다.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를 이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세일즈를 해볼 요량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한번은 연봉이 1억2000만원쯤 되는 프랜차이즈 식당 지배인 자리를 추천받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영주권이 없다는 얘길 듣더니 그 자리에서 시간당 20달러짜리 아르바이트를 제안하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그때 울타리가 돼줬던 사람이 다가왔다. 친어머니처럼 김 대표를 챙겨준 한인교회의 한 권사였다. 그의 생활 형편을 살피며 신앙적으로 방황하던 과거를 위로하는 진정한 영적 멘토였다. 세상사에 파묻혔던 신앙은 서서히 회복됐다. 5년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카이스트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어느 날 김 대표는 삶의 방향키를 돌릴 만한 통찰과 맞닥뜨렸다.
‘그동안의 배움과 경험을 사회에 긍정적으로 환원해보자.’ 치매, 알츠하이머로 고통받는 환자, 가족들의 이야기와 뇌 질환 치료에 대해 고민하던 중 최고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사이언스에서 적외선이 두뇌까지 투과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광 테라피’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됐습니다. 물리 화학 전자공학 등 제가 공부해 온 분야들을 융합해 연구하면 부상 입은 신체 부위를 재활 운동하듯 뇌도 재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전면 마스크 형태의 피부 테라피 상품이 출시된 모습을 본 김 대표는 일주일 만에 헬멧 형태의 두뇌 테라피 창업 아이템을 구상해 교내 워크숍에서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고 사업화를 돕겠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2018년 8월 창립한 브레인기어는 인공지능으로 두뇌에서 알츠하이머를 발현하는 부위에 대한 의료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근적외선 광원을 이용해 두뇌 재활을 돕는다.
김 대표는 “100세 시대가 됐으니 건강하게 늙어야 한다며 운동하는 분들은 많지만 건강한 뇌로 100세를 살기 위해 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빛을 이용해 뇌에 필요한 자극을 주고 이를 통해 건강한 뇌를 유지한다면 수면장애나 우울증 치료는 물론 치매 예방과 완화 치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브레인기어는 그동안 싱가포르 국립대학병원, 호주 퀸즈랜드 두뇌 전문기관과 진행해 온 임상실험 결과를 토대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미국에만 수면장애 환자가 1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억 단위를 넘어선다”며 “우리가 발전시키는 기술이 인류 건강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천 CEO로서 그의 소망은 하나님의 손길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을 끊임없이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김일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는 게 느껴지는 병원이나 학교를 지구촌 여러 지역에 세우고 싶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이라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겠죠.(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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