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땅 식민 지배했던 영국, 이팔 분쟁 한몫

2023. 11. 1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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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셉 목사 기고 <2>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이스라엘 주민들의 친척과 지지자들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텔아비브 국방부 앞에서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왼쪽). 같은 날 모로코 시민들이 수도 라바트의 의회 광장에 모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EPA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뜨겁고 불편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되기 이전부터 이 땅에 살던 이들과 유대인들은 서로 불편해 했다. 과거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통치하에 자치령으로서 존재했었다. 국가라기보다는 다양한 민족들이 영국의 지배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중동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고 다스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1920년대를 전후로 현재의 중동 국가들과 북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은 여전히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이 땅에 살던 이들은 이런 영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았고 영국과 대립하는 아랍 무슬림형제단이 탄생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무슬림형제단과 뜻을 같이하는 반영국파 유대인들도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같았다. 영국을 타도하고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나의 공통된 적을 둔 두 단체는 서로 협력을 하기도 했고 유대인 무장 세력들은 영국을 향한 테러도 감행하기도 했다.

이때만큼은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하나로 뭉쳐졌던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모든 아랍인이 영국을 싫어했던 것도 아니고 모든 유대인이 자유 독립을 외쳤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에 대한 반발이 컸고 특히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유입을 제한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거세게 항의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영국과 유대인들의 관계는 오히려 팔레스타인 원주민들보다 더 심각했다. 이런 모습에서 두 민족은 화합이 가능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관계와 정치적인 관계 그리고 본질적으로 민족적 지향성이 서로 다르기에 결국 불편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경제적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아랍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값싸고 획기적인 유럽식 농법을 적용한 유대인 농장에 경쟁이 되지 못하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더욱 확실하게 상권을 점유하면서 농수산물 수출에서도 아랍 상인들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런 유대인들의 성공은 더욱 많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이 늘어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아랍인들은 아랍 형제단을 통해 영국에 압력을 넣었고 유대인과 아랍인 간 긴장은 더 팽팽해져 갔다. 그러다 1936년 제1차 아랍항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이 죽었다.

유대인들은 당연히 보복을 원했고 이 분쟁은 점차 커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영국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임 수상인 필 공작을 중심으로 한 위원회(Peel Commission)를 파견해 사태를 파악하게 된다. 그때 나온 결론으로 1937년 6월 ‘2 국가 해법’을 담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 분할안은 유대인들에게는 전적으로 불리한 구조의 땅의 분배를 담고 있었다. 아랍인들에게 땅 대부분을 주고(팔레스타인의 70%) 나머지 20% 자투리를 유대인에게 주자는 제안이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분노하게 되고 다시금 분쟁이 발발하게 된다.

영국은 유대인들의 분쟁을 일시에 제압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의 재산을 제한하고 압류하거나 아랍 상인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것이 이후 아랍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복수 계기가 된다. 하지만 1937년 이후 영국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중동에 대한 통치력을 상실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더이상 중동에 대한 통치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유엔에 모든 권한을 일임하게 된다. 영국은 1948년 5월 14일을 기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치권을 반환한다는 결의에 서명하게 되고 팔레스타인은 유엔의 손에 의해서 그 운명이 결정됐다. 당시 유엔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었다.

브릿지투이스라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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