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처럼 사랑의 씨앗 뿌려 낮은 곳에 복음을 전하다
컴퓨터나 인터넷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국내 최초이자 최대 폰트 회사인 ‘산돌’을 알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 전용 폰트 개발 등 지금까지 산돌이 직접 개발한 서체는 800종이 넘는다. 그런데 산돌 창립자인 석금호(68) 의장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구호단체를 만들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석 의장은 성공한 기업인에서 머물지 않고 ‘타이니씨드’라는 씨앗을 세상에 뿌렸다. 타이니씨드 이사장인 석 의장과 타이니씨드를 운영하는 신진호(44) 국장을 최근 서울 성수동 산돌 본사에서 함께 만났다. 신 국장은 24살 차이나는 띠동갑인 석 의장을 ‘선배님’으로 호칭했다. ‘후배’ 신 국장은 석 의장을 “제가 아는 어른 중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석 의장이 구호단체의 꿈을 처음 품은 건 1995년쯤이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한 선교대회에 현지 기독교 공동체 대표 초청으로 참석했다. 그는 빈민국 사역에 속한 20여명과 밤낮없이 기도 모임을 가졌다. 그러던 중 아주 구체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얻게 됐다.
‘내가 너희 대한민국의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듣고 고통 속에서 건져내고 엄청난 축복을 부어줬는데 배부르고 나니 이제 나를 외면하는구나. 고통당하는 이들이 부르짖고 있는데 너희는 배가 불러 그들을 돌보지 않는구나.’
그렇게 해서 석 의장은 1999년 구호단체를 시작하며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종교 색깔을 드러내지 않을 것, 그리고 생존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 석 의장은 “다른 선교 단체의 손길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을 품고 싶었다”고 했다.
신 국장은 타이니씨드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2015년부터 석 의장과 함께했다. 같은 목표로 세워진 이전 단체는 운영진 문제로 후원자 전원이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신 국장은 “개인 후원자가 0명인 상태에서 사단법인으로 다시 시작했다”며 “2년여 만에 후원자가 50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는 후원비 운영 방식에 있다고 신 국장은 설명했다. 타이니씨드는 후원비 전액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 단체 운영비는 석 의장과 김봉진 배달의민족 이사 등 타이니씨드 이사 5명과 타이니씨드 회원들 지원으로 충당한다. 신 국장은 운영비를 아끼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한국엔 다른 직원 없이 아내와 일하고, 주 사역지인 미얀마와 인도에서 동역하는 20여명은 모두 현지인이다.
신 국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뇌과학을 공부한 뒤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타이니씨드를 맡아달라는 석 의장의 부탁에 응했다. 두 사람은 한 기독교 공동체에서 처음 만났다. 신 국장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에 순종한 것뿐”이라고 했다.
타이니씨드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확보해 자립하고 나아가 스스로 이웃을 돕는 것에 주력한다. 석 의장이 직접 작명한 이름대로 아주 작은(tiny) 씨앗(seed)이 뿌려져 열매를 맺고, 그 열매에서 다시 씨앗이 생겨 다시 열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미얀마와 인도에서 진행한 동물 사육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가정에 돼지나 소 암수 두 마리와 사료를 지원했다. 1년간 평균 10마리의 새끼를 낳아 이 중 두 마리를 타이니씨드에 갚으면 단체는 다시 그 두 마리를 다른 가족에게 나눴다. 타이니씨드는 이렇게 한국의 한 후원 가정과 현지 가정을 연결해 1년 동안 돕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타이니씨드는 현지 사전조사에 큰 공을 들인다. 도움이 절실한 현지인을 찾기 위해 2시간여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고 그 집에서 먹고 자기도 한다. 신 국장은 1년에 3분의 1을 해외 사역지에서 지낸다. 신 국장은 “다른 사역단체가 포기한 우리를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듣곤 한다”고 했다.
타이니씨드의 1년 운용 금액은 2~3억원 내외로 작다. 그러나 두 사람은 타이니씨드의 후원자를 두고 “강력하다”고 했다. 매달 29일 열리는 후원자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신 국장이 해외 사역지에 나갈 때마다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해와 기도로 응원한다고 한다.
두 사람은 타이니씨드를 통해 미얀마의 한 마을이 자립한 것을 봤다. 배를 타야만 접근이 가능한 작은 어촌마을에서 군부만 소유할 수 있는 어업 허가권을 따내 100여 가구가 어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 의장은 “500만원을 주고 산 어업 허가권으로 1년간 1800만원의 수익을 냈다”며 “나중에 군부가 어업권을 민간에 팔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후 쌀가게를 운영토록 했고 인근에 이미 자립한 마을에서 농사 지은 쌀을 사와 시중보다 싸게 팔아 수익을 내게 했다”고 소개했다.
이들이 돕는 대상은 크리스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석 의장은 “타이니씨드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빵의 역할이지, 직접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복음의 열매는 속속 맺히고 있다. 미얀마와 인도 등 현지 18곳에 교회 겸 교육센터가 세워졌다. 하나같이 현지인이 원해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석 의장은 “하나님한테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이야기에 감동해서인지, 많은 분이 ‘우리도 그 신을 믿고 싶다’고 말한다”고 했다.
산돌은 석 의장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창립한 기업이다. 이름부터가 예수님의 별명인 산 돌(Living stone·벧전 2:4)이다. 석 의장은 “살아있는 돌이신 예수님이란 것에 영감을 받아 사명(社名)을 정했는데 지금 다시 회사 이름을 붙이라고 하면 절대 이렇게 못 지을 것 같다”며 “그땐 신앙적으로 너무 뜨겁고 젊었기에 감히 그럴 수 있었다”며 웃었다.
석 의장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적 자산인 한글의 신문 조판과 도서 인쇄를 하려면 일본 회사의 식자기와 식자판을 사다 써야 한다는 당시 상황에 충격을 받아 산돌을 창업했다. 동시에 산돌을 통해 복음을 전하겠다는 큰 꿈도 품었다. 창업 초기부터 18년 가까이 기독교 공동체인 ‘쉴터 공동체’를 운영하며 마음이 가난한 영혼과 함께 생활하며 돌본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쉴터 공동체에는 100여명이 모였고 많을 땐 30명이 함께 먹고 잤다고 했다. 석 의장은 “3년 동안 매일 라면만 먹은 적도 있었다”며 “지금 돌아보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했다”고 했다.
산돌은 세계 각국의 여러 문자의 폰트를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한글이 세계화되는 현시점에서 한글 폰트를 가장 많이 개발한 회사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석 의장은 “IBM은 한글뿐 아니라 일본 중국 문자까지도 산돌에 의뢰했다”며 “이는 충격적이고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석 의장은 크리스천 경영인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은 거부한다’는 기본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또 ‘우리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고 신뢰를 보인다’는 덕목도 지켰다. 이 말은 고객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준다는 의미인데, 이는 섬김과 헌신이라는 기독교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석 의장은 “한글이라는 가치를 알기에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목표로 일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적 소명이기도 하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폰트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석 의장은 경영인으로는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산돌이 잘 성장하기를’, 신앙인으로는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기를’이 기도 제목이라고 했다. 산돌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 하자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님의 정신을 담고 싶습니다. 경영하면서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저한테는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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