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새로운 사명 많아" 끝내 울먹인 이재용…1심 향방은(종합)

조인영 2023. 11. 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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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이재용에 징역 5년·벌금 5억 구형
이재용 "국민 사랑 받는 기업되도록 제가 가진 모든 것 쏟아부을 것"
삼성 무겁고도 차분한 분위기…재계 "과한 구형…1심 선고 달라지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최후 진술에서 "(삼성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염두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한 가운데 재판부가 1심 판결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 참석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는 점, 의사 결정권자인 점, 실질적 이익이 귀속된 점을 고려한다며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 벌금 1억원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오후 6시40분께 가진 최후 진술에서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두거나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던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합병 이유가 미래 대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재편되는 등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며 "저는 오래전부터 사업 선택과 집중, 신사업, 신기술 투자, M&A를 통한 보완, 지배구조 투명화를 통해 이처럼 예측 못 한 미래에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회사 존속과 성장을 지켜내고 회사가 잘돼 임직원과 주주, 고객, 협력회사 임직원,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사랑을 받는게 제 목표였다"며 "두 회사 합병도 그런 흐름 속에서 추진됐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회장은 자신 앞에 놓인 과제가 상당한 만큼 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도 호소했다. 이 회장은 "저에게는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익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에게 일자리 제공할 책무가 있다"며 "초일류 기업과 경쟁·협업하며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를 더욱 선진화하는 경영, 소액 주주에 대한 존중, 성숙한 노사 관계 정착시켜야 하는 새로운 사명도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면서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삼성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발언을 마무리하며 "오랜 기간 재판받으면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늘 미안하고 송구스러웠다"며 "만약 법의 엄격한 잣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해온 다른 피고인들은 선처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다른 관계자들의 선처를 요청하는 대목에서 그는 목이 메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2일(현지시간) 리야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 포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檢 "삼성, 공짜 경영권 승계 시도…'삼성식 반칙의 초격차' 사건"

이 회장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부정·부정거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기소했다.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은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다.

이 회장 등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고 의심한다. 두 사건은 병합됐다.

검찰은 구형 과정에서 "삼성은 이 사건에서 공짜 경영권 승계를 시도했고, 성공했다"며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했다. 그 과정에서 각종 위법행위가 동원된, 말 그대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한 "피고인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목적이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 신성장 동력 확보라고 설명하지만 사후적으로 만든 명분에 불과하다"며 "합병은 양사 자체 결정이고 6조원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피고인들은 홍보했지만 이미 미전실은 합병 준비를 계획 중에 있었고 시너지 효과도 진지한 검토 없이 발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전경.ⓒ데일리안DB

삼성, 검찰 구형에 차분하고도 무거운 분위기…재계 "5년 구형 지나쳐"

삼성은 이날 검찰 구형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전반적으로 차분한 가운데 결심공판을 지켜봤다.

삼성은 그간 검찰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고 반박해온터라 내부적으로 타격이 없지는 않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졌으며, 삼성물산이 당시 3조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합병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삼성은 주장한다. 승계와 연관된 내용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 안팎에서도 검찰의 형량에 대해 다소 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5년 구형은 과하다. 이 회장의 죄질이나 국민 정서와도 전혀 맞는 않는 구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검찰에서는 나름의 근거로 구형을 했다고 본다. 때문에 완전히 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감안하더라도 5년은 너무 과한 것 아닌가는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사적 자치이지 외부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양사간 합병 비율도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졌고, 일부 합병을 반대한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검찰이) 잘못됐다며 5년을 구형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19일 삼성전자 기흥‧화성 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1심 선고, 내년 초 무게…재계 "유죄 나오면 삼성 경영 시계 멈춰" 우려

양측 변론이 마무리되면서 재판부는 조만간 선고기일을 정해 통지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결심 이후 1~2달 뒤 선고가 이뤄지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판결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수사 기록만 19만쪽에 달하는 등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만큼 연초로 넘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재계는 검찰이 생각 보다 중형을 구형했지만, 재판 1심 선고는 달라질 것이라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삼성이 합병 비율, 승계와 관련해 일관되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다, 이재용 회장이 오랜 기간 '사법 족쇄'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경제사절단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적 기여 활동도 상당 부분 수행한 만큼 이를 고려해 줄 것이라는 기대다.

재계는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아 삼성이 내부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는 한편 '뉴삼성'을 위한 경영 전략 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길을 터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죄 판결이 나오게 되면 이 회장의 경영 활동은 또 다시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1심 선고 이후 항소심, 상고심까지 고려하면 4~5년 사법리스크를 안고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반도체 투자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추모 음악회'에 참석해 있다. ⓒ삼성전자

"JY 약속처럼 완전히 탈바꿈한 삼성으로 사회 기대 부응해야"

아울러 재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이 완전히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최근 선임(先任)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준법 경영,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만일의 '부정 행위' 마저 차단시킬 각오와 행동이 마련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삼성 계열사 전반으로도 범위를 확대해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사회 전반에 신뢰를 얻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미전실을 해체하고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각 계열사 권한을 강화하는 등 준법경영, 책임경영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삼성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경영진들의 법률 위반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행동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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