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감독의 맛'을 본 김두현 "만족을 주는 감독을 목표로 준비 중"

서호정 기자 2023. 11. 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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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16년 성남FC의 전지훈련지였던 순천에서 당시 선수 생활 막바지에 있던 김두현과 1시간이 넘는 긴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가 선수 입장의 관심사가 아닌, 감독이나 행정가의 관점이라 인상적이었다. 당시 김학범 감독은 "우리 팀은 그라운드에 감독이 하나 더 있어"라고 얘기했는데 김두현이 지닌 축구에 대한 아이디어, 접근 방식을 존중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선수 김두현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를 밝혔다. 


2023년은 감독 김두현이 어떤 축구를 할 지 일종의 예고편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전북현대가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가운데 김상식 감독이 자진 사임하자, 그는 감독대행으로 40여 일간 팀을 이끌며 단 페트레스쿠 감독 체제를 잇는 고리 역할을 했다. 5월 5일 서울과의 원정 경기부터 감독대행을 맡은 그는 6월 11일 강원 원정까지 8경기에서 5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마지막 3경기에서는 울산현대, 대구FC, 강원FC 잇달아 꺾었다. 올 시즌 전북이 8경기 기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시간이었다.


페트레스쿠 감독 부임과 함께 전북을 떠난 그는 지난 5개월 동안 지도자 P급 강습회를 이수하는 동시에 말레이시아에서 운영 중인 자신의 축구 교실을 관리하기 위해 국내외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K리그1, 2 경기를 꾸준히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리그의 상황,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성공적인 감독대행 수행으로 지도자 김두현에 대한 평가가 올라간 만큼 이번 겨울 그를 찾는 구단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최원권 대구 감독이 올 시즌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며 80년대생 감독들의 문이 열리는 분위기인데, 새로운 세대의 맨 앞에 김두현이 서 있다. 


이미 그와 접촉한 구단이 있다는 루머도 돌았는데, 그에 대해 그는 "사실이 아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라고 웃음 지었다. 하지만 감독대행으로 맛본 사령탑의 매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축구를 부담 없이 펼쳐 본 시간을 돌아보며 그가 구상하고 있는 축구와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전북 감독대행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정식 감독 김두현에 대한 일종의 티져였다고 봐도 될까?
큰 경험이었고, 감독이라는 직업의 맛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나온 성과를 스스로 과대평가하진 않으려고 한다. 그런 스쿼드, 환경 속에서 감독을 하는 날이 내 미래에 또 있을지 알 수 없다. 감독대행이었고, 선배인 박지성 디렉터도 부담 없이 하고 싶은 걸 해 보라고 했기에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시기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답을 제시할 수 있게 내적인 능력을 단단히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본인은 겸손하게 말하지만, 감독대행으로서 팀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어떤 부분을 가장 먼저 건드렸나?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 선수들에게 진솔하게 얘기했다. 나는 리더도 아니고, 권한도 없고, 결국 떠나게 될 거라고. 나도 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감독대행을 맡는 동안 내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내적 동기에 충실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게 선수로서의 자존심이 될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평가, 혹은 가족을 위해서도 될 수 있다. 전북이라는 팀과 팬들을 위한다면 가장 멋진 일일 것이다. 선수들이 그런 내적 동기를 채울 수 있게 축구적인 내용에만 집중해 전북이라는 팀의 위치에 맞는 좋은 축구를 해 보자고 방향을 잡았다. 


- 전술적으로 가장 변화를 준 쪽은 어디였나?
빌드업 방식을 가장 먼저 신경 썼다. 중앙 미드필더 3명의 역량이 경기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선수 시절에 그걸 경험했고, 지도자로서 철학적인 부분의 중요한 근간이다. 허리에서 경기를 지배하고, 거길 통해서 풀어가야 한다. 백승호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1번이었다. 승호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공격형 미드필더에 맞다고 봤다. 활동량과 탈압박 능력을 앞쪽에서 이용하고 싶었다. 상황에 따라 승호를 중심으로 투볼란치, 혹은 역삼각형으로 변화를 줬다. 센터백에서 시작하는 빌드업도 신경 썼다. 홍정호가 부상 중이어서 정태욱, 구자룡을 중심으로 가야 했다. 태욱이, 자룡이는 쓰임이 중요한 선수들이다. 확실한 장점, 그리고 드러나는 단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드업 때는 두 선수에게 디테일한 방식을 계속 얘기했다. 위치, 패스 방향, 그리고 동료들도 움직임을 맞춰줘야 했다. 그게 되면 두 선수가 가진 장점도 확실히 쓸 수 있다. 



- 감독대행으로 치른 8경기 중 내용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경기는 무엇이었나? 
울산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준비한 경기 컨셉과 계획대로 흘러갔다. 상대 대응을 예상한 교체와 전술 변화로 결과를 잡았다. 3개의 계획을 갖고 나갔다. 일단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넣은 박진섭을 변칙적으로 이용해 센터백 사이로 내려 울산의 하프스페이스 공략을 막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조규성을 투입해 구스타보와 투 스트라이커로 압박해 울산의 전진을 막으며 앞에서 싸움을 붙였다. 마지막 승부처에 문선민을 투입해 상대가 라인을 올릴 때 속도 싸움으로 결과를 가져오려고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 지도자 김두현의 전술적 키워드가 궁금하다. 어떤 것을 가장 강조하나?
숫자 5와 6으로 설명하고 싶다. 5명의 선수가 빌드업을 함께 해 나가는 것, 그리고 공격은 6명 이상이 풀어 나가길 원한다. 지금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수비 전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페널티박스 부근에서는 공간을 여유롭게 이용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수적 우위 상황을 가져야 상대의 밀집된 수비를 흔들 수 있다. 상황에 따라 5명은 2-3 구조, 3-2 구조로 달리 가져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풀백을 중앙으로 좁힌 2-3 구조가 중원 숫자를 늘리면서 공격에 많은 숫자 싸움을 가져갈 수 있다. 3-2 형태는 상대가 카운터어택에 특화돼 있을 때 안정감을 갖기 위해 유용하다. 6명으로 공격을 펼치면 상대가 5백을 써도 1명의 프리맨을 가져갈 수 있다. 공격을 전개할 때 공을 가진 선수는 3가지 옵션을 가져야 한다. 공을 넣고 빼는 2대1 플레이로 수비를 끌어 나오게 하고, 배후 공간에 공을 투입해 측면 수비 뒤를 허물어야 하며, 3자 플레이로 지키는 수비를 깨야 한다. 그걸 기반으로 경기를 주도하며 속도감 있게 공격을 풀어가는 걸 목적으로 한다. 전방에서 후방으로, 후방에서 전방으로의 종적인 전환 속도도 중요하지만 좌우를 크게 쓰는 횡적인 전환 속도 역시 빠르게 가져가길 원한다. 


- 상대 수비와의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원하면 결국 라인이 앞으로 쏠린다. 밸런스가 앞으로 가면 후방의 넓은 공간이 문제가 된다. 그 공간에서의 빌드업에서 미스가 나거나, 상대 압박에 당하면 바로 위기다.
내가 바라는 축구를 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하프라인 아래 후방에서는 최소 숫자의 선수가 공을 소유해줘야 한다. 3명이 기본이고, 2명이 안정적으로 해 준다면 더 좋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축구는 대부분 포지션이 미드필더화(化) 될 거라 본다. 센터백은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 공 다루는 기술과 운영 능력이 좋은 미드필더다. 뒤에서 지키는 게 아니라 앞에서 싸워주는 선수가 될 거다. 지금 K리거 중에서는 박진섭이 그런 유형이다. 윙백이나 풀백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결국 11대11의 싸움에서 수적인 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모든 지역에서 공을 섬세하게 소유하고, 정확하게 전진시킬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러면 상대 압박보다 적은 숫자로도 후방 빌드업을 할 수 있다. 뒤에서 공을 가지며 풀어가는 목적은 소유를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공격을 찌를 수 있는 최적의 찰나를 찾기 위해서다. 상대가 그걸 노리고 앞쪽으로 압박하려고 나오면 우리에겐 상대 지역에 공간이 생긴다. 그걸 노리기 위해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한다.



-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길 원하는 거 같다.
이정효 광주FC 감독님만 봐도 그런 축구가 팬들을 불러 모은다. 선수들도 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궁극적으로는 과감한 3백 전술도 해 보고 싶다. 전형적인 센터백 1명에 좌우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나 사이드백 선수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1명의 선수를 공격에 더 동원하면 전방에서 숫자 싸움을 치열하게 할 수 있다.


- 축구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공개하는 거 아닐까? 나중에 정식 감독을 할 때 이 내용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웃으며) 전술적 틀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 분석하는 쪽에서도 어렵지 않다. 진짜 핵심은 저런 계획을 완성시키는 방법론들이다. 선수의 위치, 패스가 들어가는 루트, 빌드업을 위한 패턴을 나만의 것으로 온전히 갖춰야 한다. 특히 상황을 세세하게 준비해 있어야 할 위치에 선수가 잘 가 있도록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 성공하는 감독은 저마다 그 방법론이 다른데, 나도 감독대행을 하면서 선수 시절부터 고민해 왔던 것을 실제로 구현해 봤고 결과를 확인했다. 같은 지향점, 비슷한 틀의 전술이라도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아이디어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


- 쉬는 동안 해설을 비롯한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수석코치직이 다시 제안 오면 할 생각도 있나?
방송 일은 연락이 있긴 했다. 고민을 하다 정중히 사양했다. 수석코치는 쉽지 않을 거 같다. 정말 방향성이 명확하고, 같이 하면서 내가 지도자로서 스텝업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하겠지만… 전북에서 감독대행을 한 시간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감독이라는 일이 매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잘 하면 그걸 뛰어넘는 보상을 준다는 걸 체험했다. 다음은 감독을 하고 싶다. 그걸 준비하는 쪽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 마지막으로 축구 내용적인, 전술적인 것을 넘어선 감독 김두현의 상(像)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선수들이 의지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축구적인 만족을 주는 감독이 되길 원한다. 삶은 그렇다. 충족 다음에는 만족이 있어야 한다. 최근 김기동 감독님, 이정효 감독님이 그런 방식을 통해 선수들과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좋은 축구를 통해서 선수의 숨은 가치를 찾아준다면 그게 곧 감독의 리더십이 될 거라 본다. 선수들 머리 속에도 모두 각자가 그리는 축구가 있다. 그 축구가 대부분 옳다. 그걸 하나로 잘 엮어서 선수들이 같은 방향으로 시야를 모으게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 본다. 팀의 목표를 위해 선수단의 사고를 집중시키도록 축구적인 면에서 좋은 답을 제시하는 감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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