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게 빛나는 광활한 소금밭, 대단합니다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편집자말>
[이광표 기자]
슬로시티, 갯벌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람사르 습지, 국가습지보호구역,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신안의 증도(甑島)가 갖고 있는 타이틀은 이렇게 많다. 이 중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염전이 아닐까.
증도 지명의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증도의 옛 이름은 시루섬이었다. 시루를 엎어놓은 모습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증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 아니었다. 앞시루섬(전증도)과 뒷시루섬(후증도)이 서로 떨어져 있었는데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 그곳에 천일염전이 조성되었으니 그게 바로 지금의 태평염전이다. 그렇기에 증도에서 염전은 더더욱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국내의 천일염전은 대한제국기인 1907년 인천의 주안 지역에 처음 등장했다. 일제강점기엔 인천경기권에 천일염전이 집중되었으나 광복 이후 천일염의 수요가 급증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남의 신안과 영광 등지에 천일염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 인천 지역의 염전이 공업단지나 주거단지로 바뀌면서 전남 특히 신안의 염전이 국내 소금 생산의 주력으로 부상했다.
미네랄 풍부한 최고 품질의 토판천일염
신안은 자타공인 염전의 고장이다. 신안에는 모두 700여 곳의 염전이 있고 여기서 국내 천일염의 약 80%가 생산된다. 태평염전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피란민 정착을 위해 조성되었다.
▲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펼쳐진 광활한 태평염전. 소금밭 사이로 목조창고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다. |
ⓒ 신안군 |
태평염전의 면적은 462만8099㎡(약 140만 평). 국내 단일 염전 가운데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매년 1만6000~1만7000톤으로,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7~8%를 차지한다. 모두 67개로 나뉘어 있는 이곳 염전에서는 50~60명의 염부(鹽夫)들이 땀 흘려 소금을 생산한다. 1950년대에는 염전에 상주하던 사람들이 4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소금은 햇볕과 바다, 갯벌, 바람 같은 자연환경과 염부들의 고된 노동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소금꽃이 핀다' 도록에서 인용)." 신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햇볕이 강하며 바람이 적당해 천일염 생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증도의 천일염전은 저수지(貯水池),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로 이뤄져 있다. 저수지는 바닷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증발지는 햇볕으로 바닷물의 염도를 높이는 곳으로, 난치와 누테로 나뉜다. 난치에서는 저수지 물을 직접 받아들여 증발시키고 그 바닷물을 누테에서 다시 증발시킨다.
▲ 염전의 결정지에서 소금을 긁어모으는 염부의 작업 모습. |
ⓒ 문화재청 |
광활한 염전은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있다. 거기에 동서, 남북으로 반듯한 도로가 쭉 나 있다. 그 주변으로 소금밭이 펼쳐지고 도로를 따라 창고와 부속 시설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특히 각각의 염전에 딸린 목조 소금창고 67개가 동서, 남북으로 줄지어 선 모습은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다.
뽀얀 색인지, 푸른색인지 알 수 없다. 서로 뒤섞여 투명하게 빛나는 광활한 소금밭, 거기 점점이 늘어선 67개의 목조 창고들.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매력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 소금을 창고로 옮기는데 사용하는 수레(레일카). |
ⓒ 이광표 |
태평염전은 국내 유일의 석조 소금창고를 갖고 있다. 1953년 당시 염전을 운영했던 척방산업이 인부들의 힘으로 세운 소금 저장창고였다. 태평염전은 이곳을 2006년 태평소금전시장으로 활용하다 2007년 소금박물관으로 조성했다.
▲ 소금박물관 내부 전시 모습. |
ⓒ 이광표 |
▲ 소금박물관 내부 일부 공간은 석조 소금창고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 이광표 |
소금의 역사와 가치, 태평염전의 소금 생산과정을 보여주고 수차, 강고, 소파, 대파, 똘비, 다대기, 염바가지, 물고망치 등의 염전 도구를 전시해놓았다. 전시장 일부의 바닥은 소금을 펼쳐놓고 그 위를 강화유리로 덮었다. 관람객들은 뽀얀 소금더미를 밟고 지나가는 듯한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 태평염전의 인기 촬영 장소. 투명한 소금물에 비친 반사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
ⓒ 이광표 |
소금을 소금답게 만들어주는 70여 종의 염생식물
태평염전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입구 맞은편 언덕에 있는 소금밭 낙조 전망대다. 5분 정도 걸어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태평염전이 펼쳐진다. 드넓은 소금밭으로 짙게 드리우는 붉은 석양. 그 황홀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런데 낙조 전망대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염전 옆에 조성된 태평염생식물원. 염분이 많은 해안습지나 갯벌에서 자라는 식물의 군락지다. 태평염전은 염생식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9년 염전 하구의 삼각주 습지에 이 식물원을 조성했다.
지금 이곳에선 함초(퉁퉁마디), 칠면초, 나문재(갯솔나무), 해홍나물, 갯방풀, 갯질경, 왕잔디, 갓씀바귀, 벌노랑이, 갈대,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 갯완두, 모래지치, 삐비(띠) 등 70여 종의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곳 갯벌에선 짱뚱어, 방게, 고등도 살아간다.
이 염생식물 군락지는 생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태평염생식물원의 생태를 조사연구해 온 김하송 고구려대학 교수에게 그 의미를 들어보았다. "염전 주변에는 유휴지가 필요한데 그 유휴지의 하나가 이 염생식물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염전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염생식물들 덕분에 더욱 질 좋은 소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염생식물은 갯벌의 염분 농도에 따라 적절한 지역에 무리 지어 분포한다. 그러다 보니 식물별로 특유의 색깔 띠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소금밭 낙조전망대에서 염생식물원을 바라보면 더러는 무지개 같고 더러는 추상미술 같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 태평염전 옆 염생식물원에선 요즘 갈대와 칠면초가 늦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
ⓒ 신안군 |
늦가을의 염생식물원은 화사함 대신 차분한 색조였다. 목조 탐방로 주변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자줏빛 칠면초와 하얀 갈대. 그 무채색 톤이 또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중간중간 염전에 관한 시도 감상할 수 있다.
신안지역 윤인자 시인의 시 '천일염'의 한 구절. "유산으로 물려받은 염판에/바닷물은 변함없이 햇살을 끌어당긴다//햇볕에 졸여지고 바람에 말려져/세월의 창고에 하얀 꿈이 쌓여간다." 탐방로를 걸으며 갯벌에 잠깐씩만 눈길을 주어도 구멍 속으로 들락날락하는 새끼 짱뚱어들의 분주한 모습이 흥미롭기만 하다.
바닷속에 잠겨 있는 소금 운반선 스토리
태평염전 입구 바닷가엔 소금항 카페가 있다. 소금 운반선이 정박했던 선착장이 있던 곳이다. 커피 한 잔 주문하며 카페 직원에게 "혹시 운반선의 흔적이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물이 빠지면 선박의 잔해가 보인다"고 했다.
잔해가 보인다니. 무심히 던진 질문이었는데 놀랄 만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니 안내판에 소금 운반선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태평염전의 박종화 본부장으로부터 좀 더 정확한 내용을 들어봤다. 소금 운반선이었던 흥창호(증도~목포)와 질자호(증도~부산)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흥창호와 질자호는 1984년까지 소금을 육지로 실어 나르던 범선이었습니다. 흥창호는 50㎏짜리 600포대를, 질자호는 50㎏짜리 2000포대를 선적할 수 있는 규모였지요. 이후 소금 운반선은 철부선으로 바뀌었고 2010년 증도대교가 건설되면서 소금 수송은 모두 육로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근 화도에서도 금영호의 잔해를 볼 수 있어요."
▲ 소금항 카페에서 바라본 염전 하구의 바다 풍경. 물이 빠지면 이곳에서 소금 운반선의 잔해가 드러난다. |
ⓒ 이광표 |
소금항 카페의 야외에는 예쁜 벤치가 여럿 놓여 있다. 그곳에서 내다보는 바다는 평화롭고 아름답다. 멀리 주홍빛의 육중한 증도대교도 눈에 들어온다. 소금을 가득 실은 흥창호, 질자호, 금영호는 이곳을 출항해 목포와 부산을 수없이 오갔을 것이다.
올해는 태평염전 조성 70주년. 매년 약 30만 명이 태평염전을 방문한다. 볼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이제는 바닷속 소금 운반선에 대한 조사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운반선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발굴조사도 해야 하지 않을까. 흥창호, 질자호, 금영호에 수많은 소금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스토리는 증도의 소금 문화사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나아가 분명 매력적인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소금꽃이 핀다: 2011 전남 민속문화의 해 특별전》, 2011 김준, 〈소금과 국가 그리고 어민〉, 《도서문화》제20집,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2002 조효은, 〈근대산업경관으로서의 천일염전의 가치 측정과 포괄적 보전 방안〉, 경성대 대학원 석사논문, 2021 최성환, 〈섬사람들의 생활 혁명을 이끈 천일염전〉, 《섬과 인문학의 만남》, 민속원, 2015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3년차 편의점 알바의 토로 "긴급신고 버튼? 손님이 때려도 못 누른다"
- 공정성 사과 KBS, '대통령 장모 징역 1년' 17번째 보도
- 전두환 유해가 파주에? 죽어서도 세상 농락하게 둘 건가
- 검찰, 이재용 삼성 회장 징역 5년 구형... "공짜 승계"
- 나의 신디, 영화음악은 신지혜가 최고였습니다
-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34%, 서울·50대·보수층에서 하락
- 편의점 '알바'에게 말 거는 손님 때문에 생긴 일
- 윤 대통령 "친환경 해운 솔루션으로 녹색 항로 연결"
- "부모 죽고 나면 장애인 자녀는 노숙인 된다"... 오체투지 나선 이들
- [오마이포토2023] "한달 동안 1만 개 넘는 우주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