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난제' 유보통합…첫 여론수렴부터 '난관'
국회 앞 유치원 교사 등 155개 조화 쏟아져
'재정계획 미비' 놓고선 정부 질타 이어져
"'삼가 유아교육의 명복을 빈다"
17일 국회 앞에는 이같은 문구가 달린 조화가 줄지어 늘어섰다. 이날 국회 열린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유보통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공청회를 앞두고 각 지역 공립유치원 교사들이 보낸 것이다. 국회 정문 우측으로 120m 가량 155개에 달하는 조화가 줄을 지었다.
이번 공청회는 국회 교육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의 공동 주최로 열렸으며,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철민 교육위원장, 김교흥 행안위원장 등 의원들과 장상윤 교육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유보통합은 교육부(교육청)가 관리하는 유치원과 복지부(지자체)에서 담당하는 어린이집을 교육부 산하 통합체계로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국내에선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지난 대선 때 양당 후보들이 모두 유보통합 공약을 제시했을 정도로 여야 가릴 것 없이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 문제는 통합 방식이나 절차 등에 있어 관계 부처나 각계의 입장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예산과 인력, 교육과정 변화, 담당 교사 자격·처우 문제 등이 쟁점으로 꼽힌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우리나라는 저출생에 따른 인구감소 문제로 심각한 위기"라며 "아이 한 명을 미래사회 소중한 인재로 키워내는 일은 국가적 과제로, 정부는 올해를 교육개혁의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유보통합은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고 아이들에 출발선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기 위한 핵심 중의 핵심 과제"라며 "이태규·강병원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해주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신속히 통과되고 교육·보육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올해 7월 유보통합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3단계' 통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올해 담당 중앙기관을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통합하고, 2024년에는 지방기관을 시도교육청으로 옮긴 뒤 2025년 '통합모델'을 최종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업무 이관 절차에 필요한 첫 단추가 법 개정이다. 먼저 정부조직법에서 '영·유아 보육'을 복지부에서 교육부 관장 사무로 옮기고, 영유아보육법에서는 보육 주체를 복지부 장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은 특히 교육계의 반대 여론에 부딪히고 있다. 재정 소요계획이 수반되지 않은 채 부처 일원화부터 진행할 경우 시도교육청에 대한 재정 부담 전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과거 '누리과정 사태'와 같은 부작용으로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보통합 첫걸음…'재정 미비' 놓고 정부 질타
이날 공청회에서도 유보통합을 위한 정부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서 담당해온 영유아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연내 이관하겠다는 방침인데, 재정계획도 수립하지 않고 조직 통합부터 추진하는 것은 부작용이 예견된다는 지적이다.
토론은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 교사노동조합 위원장과 이혜연 전국장애영유아학부모회 고문,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권정윤 유아교육대표자연대 의장(성신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반대 : 재정계획부터 수립하라 =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 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코앞에 두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행하는 공청회에 유감을 표한다"며 교육위·행안위·복지위 위원들도 다 안 오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가 제시하는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장의 의견과 다르니 소통하라고 요구해도 항상 형식적 진행만 해왔다"며 "유보통합 시 어떻게 보육과 교육의 질을 향상할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된 계획이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이대로 가면) 유보통합은 오히려 지역별로 엄청난 교육 격차를 불러올 것"이라며 예산 대비 없이 조직 통합부터 밀어붙이는 법 개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재정계획 미비로 인한 재정 파탄 ▲재정 문제에 따른 유초중등 교육 및 새로운 보육 업무의 차질 ▲인력 및 인건비 계획 미비에 따른 업무 마비 ▲어린이집 및 사립교사에 대한 처우 개선 악영향 등 우려를 제시하면서 "유보통합 시 증액될 인건비 부담에 대한 계획도 없으면서 처우 개선이 가능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찬성 : 책임 떠밀기 그만, 중앙부처 우선 일원화부터 = 이혜연 전국장애영유아학부모회 고문은 초등학생 자녀의 장애 진단 경험을 소개하며 "2007년 특수교육법이 제정됐지만, 지금까진 16년 동안 장애 유아들은 복지부 소속 어린이집에 있다는 이유로 특수교사를 배치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유치원은 특수교육 지원으로 학급당 교구비 지원금이 수백만원씩 책정되고 교육에 필요한 각종 지원이 이뤄지는 반면, 어린이집은 지원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고문은 특히 정부에 대책을 촉구해온 과정에서 교육부-복지부 이원화에 따른 '책임 떠밀기'를 질타하며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차별의 장벽부터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혜택을 받도록 유치원으로 옮기면 되지 않냐고 묻지만, 수도권의 경우 집 앞에 있는 대부분의 기관이 이미 과밀 상태"라며 "지방 중소도시로 가면 장애 영유아가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은 찾기가 힘들고, 읍면으로 가면 아예 유치원이 없는 곳이 태반"이라고 장애 영유아 학부모의 입장을 대변했다.
▶대안 : 통합모델, 예산·인력 구체적 대안 찾고 시작해야 = 이날 토론회에선 이례적으로 국책연구기관 소속 전문가가 정부를 비판하면서 '대안' 격에 해당하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야가 유보통합 및 정부조직법 개정에 충분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며 '구체적인' 통합모델을 제시한 뒤 예상되는 문제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설기관으로, 국무조정실이 주무기관이다.
박 연구위원은 공청회에 참석한 의원들을 향해 "결국 어린이집 사무는 학교 교육에 포함을 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여야에서 각각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어린이집 사무가 유치원과 달리 여전히 영유아 보육에 한정돼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어린이집 사무는 (유보통합을 거쳐) 결국 학교로 이어질 것"이라며 "그런데도 학교 교육 (포함이) 아니라면 어린이집은 어떤 정체성으로 교육부·교육청 아래 존재하게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유보통합에 따른 정부의 추가 재정 투자 계획을 정확하게 밝혀 달라"며 "(예상되는) 추가 소요비용은 대부분 어린이집에 대한 것인데 시설 개선이나 처우 개선, 연수 교육 등에 대한 추정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에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수 감소로 지방교육재정이 굉장히 줄어든 상황에서 교육청에만 재정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유보통합을) 추진하면 초중등 교육은 물론, 각종 사업들이 중단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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