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에게 말 거는 손님 때문에 생긴 일

김선재 2023. 11. 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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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평 남짓한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하소연과 응원 통해 다른 삶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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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기자]

"5500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카드 앞쪽에 꽂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도 나는 초등학교 옆 편의점에서 한결같이 손님을 맞이한다. 벌써 1년 9개월 째. 스무살이 되자마자 '대학생이라면 용돈은 스스로 벌어 쓰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그 길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아르바이트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자주 오는 단골 손님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농담을 나눌 정도로 '편의점 알바생'의 삶에 능숙해졌다. 능숙해졌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편의점 고수'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미숙하다.

배송 온 물건을 어디에 진열해야 할 지 몰라 매번 헤매고, 무슨 봉투를 돈을 받나며 공짜로 달라는 술 취한 할아버지를 응대해야 할 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화가 올라오곤 한다. 꾹 참고 친절하게 응대하고 나면 에너지가 다 쓰여 그날 하루의 나머지는 정신줄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기에, 알바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 그 마음 짐작해보는 하루 
 
 내가 일하는 편의점. 아담하고 작은 매장이다.
ⓒ 김선재
 
아침에는 삼각김밥과 에너지드링크를 사가는 고등학생, 점심에는 곰돌이 젤리를 사가는 초등학생들이, 저녁에는 소주와 오징어를 사서 봉투에 주섬주섬 담아가는 할아버지까지. 계산대에 올려지는 다양한 물건들은 그들의 하루가 고된 하루일지, 즐거운 하루일지 짐작하게 해준다.

"우리 집사람이 치매를 앓아서 내가 5년 넘게 돌봤어. 그런데 몇년 전에 가버리고 혼자 사니까... 집사람 빈자리가 참 커.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나도 집사람 빨리 따라갔으면 좋겠네. 허허.."

매일 햇반 2개와 소주 한 병을 사 가시는 할아버지가 내 앞에 물건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지으며 오셨던 할아버지는, 오늘만큼은 너무 힘들어서 누구한테라도 말을 하고 싶었다며 내게 힘겹게 입을 여셨다.

나는 어떻게든 위로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뭐라도 긍정적인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내 그만두었다. 내가 어떻게 위로하더라도 할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다가 겨우 한 마디를 건넸다.

"많이 고생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자신의 젊은 시절로 시간을 되감아 가며 숱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다 계산대에 있는 소주와 햇반을 봉투에 담으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편의점을 떠나셨다. 매일 봐왔던 그의 발걸음인데 오늘만큼은 유독 무거워 보였다.

이날 밤,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혼자서 무거운 고민을 지금도 짊어지고 계실 할아버지가 걱정되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인생의 허무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 주고 받으며 겨우 잠에 들었다. 인생의 끝에 다다르는 과정을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하소연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짐을 덜으시는 손님이 있는 반면, 나와 같은 청년 세대를 위로해 주시고 가는 손님도 계셨다.

"아직 세상을 즐기기만 해도 부족할 나이인데, 요즘 젊은 친구들 알바에 공부에 이것저것 치여 사느라 쉬지 못하는 모습 보면 마음이 아파. 그래도 언젠간 노력의 결실이 맺어질 테니까... 조금만 더 힘내요."

그 분은 자기 딸이 대학생 때도 알바하랴 스펙 쌓으랴 정신없이 보내고, 취업준비생인 지금도 계속 고생하고 있는데 문득 나를 보니 갑자기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 순응하지 말고 내가 먼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라며 편의점을 나가셨다. 

'열심히' 보다는 '행복'을 먼저 생각해보라는 말   

그 덕에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 세상을 즐겨본 적이 있었던가? 등록금에 보태고 용돈을 벌어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학 때는 소위 '스펙쌓기'를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쉬려고 해도 그냥 쉬는 시간이 내심 아까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알바를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라는 말을 들으니, 세상을 꼭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즐겨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가 겪고 있는 인생의 허무함, 취업준비생 딸을 두고 있는 손님의 위로를 통해, 몇 평 남짓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이들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적어도 고된 하루일지라도, 앞으로의 하루는 조금이나마 나아질 거라 의심치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는 의미있었기에. 그렇기에 나도 더 큰 세상을 위해, 지금을 살자고 스스로에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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