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사람, 이창희

신아연 2023. 11. 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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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마음으로 순수히 돕는 사람입니다.

광산 노동자로 굶주리고 학대 당하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조부 등 시대적 굴곡에 치인 편편치 않은 가족사로 1인 주도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번 행사 후 든 생각이 함인숙 목사, 이창희 국장 등 씨알재단 사람들은 모두들 참 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요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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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11]

[신아연 기자]

(* 지난 기사 "그때의 대학살... 사과하는 일본인들이 여기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한국측 추모제의 넋전 작업을 도와주는 일본의 1인 평화주의자 타카시씨
ⓒ 신아연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그저 좋은 마음으로 순수히 돕는 사람입니다. 광산 노동자로 굶주리고 학대 당하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조부 등 시대적 굴곡에 치인 편편치 않은 가족사로 1인 주도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 같아요.

노래로 현실 참여를 하는 예술가이자 활동가란 명함을 갖고 있네요.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라면 보따리 싸들고 어디든 간다고 합니다. 키가 장대같이 크고 복장이 특이해서 처음부터 눈에 뜨였죠. 2일 일본인 추모제에서 처음 얼굴을 본 후 우리 추모제에도 함께 했고 뒤풀이 식사자리에까지 초대되었으니 인연이 보통이 아니죠. 지난주에는 부산을 다녀갔습니다. 

3일 아침 일찍부터 공원에 나타나 넋전을 달아줍니다. 키가 커서 높은 나무에 거는 넋전은 그가 도맡았지요. 그는 말만하면 무엇이든 도와줍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도우미입니다.

다시 2일 오후로 돌아가죠. 밤에 국회의사당으로 가야 하는데 그 전에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넋전을 공원으로 날라야 하는 거죠. 희생자 6661명을 모신 총 17개의 상자, 무게로만 200킬로그램, 일본까지는 배편으로 미리 보내왔고요.

희생자를 의미하는 종이인형 넋전은 천하무적 함인숙 목사의 주도 하에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일본으로 옮겨졌고, 고도 1000미터가 넘은 깊은 산에서 고이 화장까지 치러졌습니다.
 100년 전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6661명의 혼이 담긴 넋전들이 공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 김현민
 
"아라카와 강변에 설치하기 위해 이 낚싯줄을 다 꿰어 가야 하고, 그것을 희생자 한 분 한 분을 실제로 대하는 마음으로 한 긴 작업이었어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일곱 사람이 3박 4일 동안 작업했어요. 모두 그냥 정신없이 밥 먹는 시간 빼놓고는 그 일만 하면서 바깥 출입도 않고 계속했어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하는데 하나도 피곤하지도 않고. 힘들긴 했는데, 다음 날 일어날 때도 거뜬하게 일어나고, 그래서 다 마무리했을 때 우리는 이 넋전들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많이 줬다고 서로 얘기했습니다."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이 넉전을 밤새 제가 공원에서 지킬테니 여러분들은 이제 국회의사당으로 가세요."

이창희 씨알재단 사무국장의 말입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려면 공원에서 맨몸으로 밤샘을 할까 싶었던 거죠. 그런데 안 그러면 어쩔거냐는 겁니다. 이대로 뒀다가 무슨 돈 될 물건인 줄 알고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면 그 무슨 낭패냐는 거죠. 그러니 누구 한 사람은 넋전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추모제 전날 공원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넋전을 지킨 씨알재단 이창희 사무국장
ⓒ 신아연
 
그렇게 해서 모기에 뜯기고 이름 모를 밤짐승에, 7마리 들고양이 출연 등 아카라와 강 둔치 공원에서 그렇게 혼자 밤샘을 합니다. 저녁이라곤 밤 12시 넘어서 도시락 하나로 때우고. 공항에 내려 낮 12시 경 케이세이 우에노역에서 간단히 요기한 이후 12시간 만의 곡기였던 거죠.

왜 그렇게 저녁이 늦었냐고요? 국회의사당 앞 시위 후 일행이 저녁을 먹은 때가 밤 9시 무렵이었으니, 식사 마치고 도시락을 사서 가져다 주니 자정이 다 되었던 거죠.

제가 이번 행사 후 든 생각이 함인숙 목사, 이창희 국장 등 씨알재단 사람들은 모두들 참 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요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들. 일이 될 때까지 돌진하는 사람들. 저도 '한 집요' 합니다만, 이분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죠.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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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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