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만 얻으면 정말 살 만할까?
[김성호 기자]
출판인을 만나다보면 독서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쉽게 듣고는 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을 기점으로 인당 연간 도서구입이 채 1권에 미치지 못하고, 스스로 책을 읽는다고 답한 이가 인구 4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 1권과 25%, 출판시장의 밑바닥이라 이야기되며 그래도 '설마 무너지겠어' 하던 두 지표가 무너진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고, 종말이라고들 이야기 한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출판시장 또한 마찬가지여서, 한편에는 스타작가와 베스트셀러가 탄생하고 다른 편에선 신생 출판사가 영업을 시작한다. 반세기 넘게 살아남은 고전과 불과 몇 년 만에 생명력을 잃은, 아예 조명조차 받지 못한 채 묻힌 비운의 책들이 출판시장을 이룬다.
좁고 얕아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출판은 여전히 시대와 사람을 읽는 주요한 매체다. 수많은 작가가 저의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며 사람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얼마 되지 않는 독서인구라지만 따져보면 천만 명이 훌쩍 넘는 이들이 여전히 글을 통해 다른 목소리를 접한다. 그들이 읽는 것에도 경향이며 흐름이 있다면, 그것이 한국사회의 오늘을 읽어내는 하나의 단초가 되리란 걸 부인할 수는 없을 테다.
▲ 역행자 책 표지 |
ⓒ 웅진지식하우스 |
자기계발 또한 성공과 돈 버는 일을 향하는 책 일색이니 따지자면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법'이야말로 한국 독서판의 가장 굵직한 흐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부터 독서모임에서 많이 만난 책 중 하나가 바로 <역행자>다. 못해도 모임 서너 번을 가지면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책으로, 이 책이 누리는 놀라운 인기야말로 시대의 얼굴이구나 싶었을 정도다.
그래도 시대를 가른 대단한 베스트셀러라면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거듭 들었다. 읽고 나서 적어도 이 시대 사람들이 이 책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 또는 얻었을 무엇을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었다.
<역행자>는 자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이자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는 30대 청년의 저술이다. 자기계발서 분야의 유력 출판사로 꼽히는 웅진지식하우스가 2022년 펴낸 책으로, 출간 직후부터 현재까지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성공작이다. 광고며 마케팅 또한 어마어마해서 서점과 온라인에서 이 책 광고를 보지 않은 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누군가는 이 책을 놓고 스터디 모임을 꾸리고 다른 누구는 이런 책은 상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책은 자청이 설파하는 행복론이다. 책 표현을 빌어 사람들을 '돈 잘 버는 인생'으로 이끄는 인생공략집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결말에 이르러 저자가 설파하는 행복론으로의 정체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책 내내 거의 돈 이야기뿐이라고 지적한다면 그건 저자의 행복에 돈이 필수이기 때문이지, 책이 행복과 관련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말하자면 책은 행복에 이르는 수단, 돈을 벌어 성공하는 길을 이야기한다.
인생에도 공략집이 있다는 저자
책은 시작부터 도발적이다. 피라미드 하나를 그리고는 맨 위 꼭짓점에 상위 5%가 속하는 작은 삼각형을 오렌지색으로 칠해두고는 역행자라고 표시한다. 저자는 역행자란 정해진 운명을 거역하여 인생의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자라고 정의한다. 밑에 깔린 나머지 95%는 순리자로, 타고난 운명 그대로 평범하게 사는 이들이다. 이것이 책을 관통하는 세계관으로, 인간을 역행자와 순리자로 나누는 닫힌 세계관 아래 저자의 삶과 이 책을 놓아두고 있음을 선언하며 책은 시작한다.
다음은 고백이다. 저자는 과거 외모와 가난으로 인한 패배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던 저자의 모습을 고백한다. 과하다 싶을 만큼 자신의 옛 모습을 못나게 표현하며, 오늘은 정반대로 화려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엉망진창의 외모와 게임 도피, 아둔함 등 스스로 '인생 꼴찌'였다고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제 삶을 가둔 벽을 깨고 나왔다며 다른 이들에게 그 방법론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책은 스스로 '역행자 7단계 모델'이라 부르는 방법론을 설명한다. 자의식을 해체하고(1) 정체성을 만들며(2), 유전자의 오작동을 극복(3)하고, 뇌 자동화를 거쳐서(4), 역행자의 지식을 수련(5)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방법을 수행(6)하고, 그 쳇바퀴를 돌라(7)는 것이다. '배우고 수련하여 남보다 나아져 성공에 이르라'는 학습의 정도를 설파하는 것으로, 큰 틀로 보자면 흠잡을 데 없는 정도(正道)의 제시에 가깝다.
흥미로운 건 방법론이 등장할 때다. 배우고 수련하라는 방법이야 2000년도 더 전에 나온 유학 저술 <대학>보다 잘 써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이르는 이 책의 팔조목은 인간의 수양과 세상에의 쓰임이라는 유학의 요체를 간명히 설명한다. <역행자>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수련을 통해 나은 인간이 되기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역행자>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로 22전략이다. 2년 간 매일 2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라는 게 핵심을 이룬다. 저자는 삶을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 22전략에 있다고 말하며, 나머지는 이 전략을 잘 수행하고 거기서 얻어진 능력을 활용하는 부수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책엔 저자가 읽었다는 수많은 책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를테면 뇌과학과 자기계발서, 재테크와 심리학 서적 등으로, 이러한 책이 그대로 저자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이루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곳곳에서 인간이 선사시대에 최적화된 뇌를 갖고 있고,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느끼고 사고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뇌과학과 진화심리 서적의 가설을 그대로 차용하여 논리전개의 뼈대를 이루어나간다. 명백한 법칙이라기보단 가설 수준에 그치는 사실이 적잖아, 원출처나 논문 및 실험 등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아쉽다.
<대학>과 <역행자>의 차이
<역행자>가 22전략 등을 통해 독자를 이끌어 나가는 방향엔 결국 경제적 성공이 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대학>과 이 책의 근본적 차이가 발견된다.
<대학>에선 수신을 통하여 제가와 치국, 평천하에 이르는 영향력의 확장, 즉 대동사회의 구현이며 군자도의 전파를 공부의 목표로 제시한다. 반면 <역행자>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 이르는 곳이 결국은 성공이며, 그 성공의 정의란 노동 않고 충분한 벌이를 얻는 경제적 자유로 귀결된다.
책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를 꼽자면 아마도 '월 3000만원'이 아닐까 싶은데, 노동 않고 수천 만 원씩을 벌어들이는 경제적 자유의 성취야말로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향으로 강조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야근이 있는 회사보다는 100만원 덜 벌더라도 쉬운 직장으로 이직하라. 남은 시간에 운동을 하여 뇌를 최적화하고, 하루 1시간 책을 읽어라. 알바를 두 탕 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를 그만두고, 그 시간에 창의적인 일을 하라.' - 책 162, 163p
여러모로 <역행자>는 정도에 가까운 자기수련 방법론에 더해, 현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의식 없이 따라갈 것을 이야기한다. 방법론은 이천 오백년 전 쓰인 <대학>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는 다독, 다작, 다상량의 유익함이다. 그 외는 경제적 성공을 자극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가.
18세기 말 쓰여 자기계발과 성공지침서의 효시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이래, 자수성가한 이들의 성공담이며 출세담이 서점가의 큰 흐름을 장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능력을 갈고 닦아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 이면에는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를 돌보지 않고 성패를 오로지 개인의 노력이며 재능 여하에 두는 인식이 자리하지는 않는가.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례 없는 인구수 급감으로 국방과 경제, 연금을 비롯한 복지제도의 붕괴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면에 사회 속 느끼는 불안감, 공동체와 가치의 상실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동체와 가치에 대한 논의 없이 개별적 성공, 예외적 자유를 부르짖는 태도는 위기를 가속화할 뿐이다.
<역행자>가 2022년과 2023년 한국 출판계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공작이란 점은 오늘의 한국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방증한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흐름에 실망을 넘어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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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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