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국내 최초 '자궁이식' 성공했다

이명환 2023. 11. 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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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KH 증후군 환자에 뇌사자 자궁 이식
선천적으로 자궁 없이 태어나는 질환
거부반응 없이 10달째 정상기능 유지
인공수정으로 '최종 목표' 임신 준비 중

삼성서울병원이 국내 최초로 자궁이식 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박재범 교수(왼쪽 두 번째)가 이식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은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MRKH(Mayer-Rokitansky-K?ster-Hauser)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지난 1월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해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현재 환자는 월경 주기가 규칙적인 만큼 이식된 자궁이 정상 기능 중이고, 최종 목표인 임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이 같은 내용으로 이식학회추계 국제학술대회(Asian Transplantation Week 2023)에서 자궁이식 성공 소식을 정리해 17일 발표했다.

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을 말한다. 학계에서는 여성 5000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병은 대개 청소년기에 월경을 시작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난소 기능은 정상이기에 호르몬 등의 영향이 없고, 배란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 역시 가능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자궁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역시 MRKH 증후군 환자로 결혼 후 임신을 결심하고 2021년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당시는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정식으로 팀을 꾸리고 관련 임상 연구를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이었다.

후원자 기부로 재원 마련…'슬의생' 제작진도 힘 보태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자궁이식팀 역시 속도를 냈다. 이식팀은 자궁 이식이 국내 첫 사례인 만큼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를 진행한 뒤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까지 모두 마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뒤 신중하게 접근했다. 전문 분야별로 해외에서 발표된 논문과 사례를 조사하며 이론적 배경은 물론 실제 이식 수술, 이식 장기의 생존전략,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에 계획을 세웠다.

다만 수술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국내 의료보험 체계에서 새로운 수술 시도는 '임상연구'의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이식팀의 설명이다. 이때 자궁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품으려는 환자의 모성과 의료진의 열정에 공감한 후원자들이 기부로 힘을 보탰다.

이미 여러 차례 의료연구에 기부했던 개인과 재단 기부자를 비롯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 등 후원자들이 연구비 기부에 참여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의 기부는 극 중 채송화 교수의 롤모델이자 제작자문을 맡았던 자궁이식팀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고 이식팀은 설명했다.

실패로 돌아간 첫 시도…6개월만 재시도에 성공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어렵게 시작한 자궁 이식 연구는 첫 시도에서 벽에 부딪혔다. 2022년 7월 최초 이식 당시 생체 기증자의 자궁을 환자에게 이식했지만,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수술 2주 만에 자궁을 다시 제거해야 했다.

자궁이식팀은 재차 뇌사기증자 자궁 이식을 기다렸다. 다행히 첫 이식 실패 6개월여 만인 지난 1월, 조건을 충족하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이식수술을 시도하게 됐다. 자궁이식팀은 모든 과정을 다시 살피는 한편, 공여자의 장기 적출 과정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기증자 자궁과 연결된 작고 긴 혈관 하나까지 다치지 않도록 정교한 수술을 하는 것이 자궁이식 초기 성공의 중요 지점이라고 병원은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이식 후 29일 만에 생애 최초로 월경을 경험했다. 이는 자궁이 환자 몸에 안착했다는 신호다. 첫 월경 이후 환자는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 중이다. 이식 후 2, 4, 6주, 4개월, 6개월째 조직검사에서 거부반응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이식한 자궁이 환자 몸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신호라는 게 이식팀의 평가다.

남은 과제로 환자와 자궁이식팀 모두 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궁이식팀의 이동윤, 김성은 산부인과 교수는 이식 수술에 앞서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용, 이식한 자궁에서 착상을 유도하고 있다. 동시에 임신 이후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자궁이식은 국내 첫 사례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서 "첫 실패의 과정은 참담했지만, 환자와 함께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무사히 자궁이 안착돼 환자가 그토록 바라는 아기를 맞이할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자궁이식, 2014년 스웨덴서 첫 성공…재이식 시도는 삼성서울이 '세계 최초'

자궁이식 연표. [이미지제공=삼성서울병원]

한편, 자궁이식은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세계 최초로 시도된 바 있다. 당시 환자는 이식 100일 만에 거부반응으로 이식한 자궁을 떼어내 안착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됐다. 최초 성공 사례는 2014년에 스웨덴에서 나왔는데, 자궁이식과 함께 출산까지 성공하면서 의학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관련 근거가 쌓이면서 이식 성공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 자궁이식학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자궁이식 성공사례는 109건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재이식 시도는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또 다른 환자의 자궁이식을 준비 중이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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