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문가영

방호광 2023. 11.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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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 놓인 내 또 다른 모습들. 심장이 긴장해서 뛰는 건지, 마냥 좋아서 뛰는 건지 모를 기분을 느끼고 싶어요.” 문가영은 기꺼이 자신을 낯선 길에 내버려둔다. 새롭게 마주할 자신을 기다리며.
에스닉한 패턴의 벌키한 케이프와 캐시미어 니트 톱, 롱스커트는 모두 Max Mara.

Q : 어느덧 12월이에요. 겨울마다 꼭 하는 일이 있다면

A : 추운 날 촬영 있을 때 직접 뱅쇼를 끓여 스태프들과 현장에서 나눠 마시곤 해요. 특히 밤 신을 찍을 때 한 모금 마시면 정말 따뜻하고 맛있어요.

태슬 장식을 더한 테디베어 코트는 Max Mara.

Q : 화보에서도 그 따스함이 느껴지더군요. 스톡홀름의 날씨는 어땠나요

A : 조각상이 많고 넓은 정원이 있는 아틀리에에서 촬영했는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기온이었어요. 촬영 중간에 아틀리에 곳곳을 구경하고, 엽서도 샀죠.

오버사이즈 카디건과 타이 디테일의 롱 셔츠, 밴딩 쇼츠, 플랫폼 니 하이 부츠는 모두 Max Mara.

Q : 관광객처럼 일을 즐겼군요

A :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대여한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볐어요.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며 무작정 걷기도 했죠. 호텔 앞에 분수대가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놀고 있더라고요. 근처 공원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체스 놀이도 하고…. 그런 삶의 방식에서 안정감과 평화를 느꼈어요.

시어한 플로럴 실크 오간자 셔츠와 쇼츠, 레이스업 부츠, 화관은 모두 Max Mara.

Q : 낯선 곳을 즐기는 편인가요

A : 익숙한 것이 주는 안정감도 좋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도 좋아요. 몰랐던 것에 자극받는 일도요.

Q : 오래된 석상 틈에 서 있는 모습이 꽤 어울려요. 책이든 음악이든 평소 고전을 사랑하는 문가영에게도 꽤 클래식한 면이 있죠

A : 오래되거나 낡은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그게 왜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전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낸다는 의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책을 볼 때, 클래식을 들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해도 좋지만 대부분 혼자예요.

벌키한 프린지 케이프와 롱스커트, 플랫폼 슈즈는 모두 Max Mara.

Q : 문가영의 클래식은 무엇인가요

A : 저는 사람 문가영보다는 일하는 문가영에 더 익숙해요. 요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지만,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그런지 연기가 변하지 않는 클래식 같아요. 순서가 바뀌었지만(웃음), 현장이 더 익숙하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뒤늦게 알아가는 중이에요.

Q : 올해 초 〈엘르〉와 드라마 〈사랑의 이해〉 화보로 만났죠. 이 작품이 당신에게 안겨준 건 무엇인가요

A : 작품이 끝나면 OST를 찾아 듣곤 하는데, 이상하게 〈사랑의 이해〉 OST는 못 듣겠더라고요. 안수영에게는 꽤 어두운 면도 있고, 그간 연기해 온 캐릭터들보다 더 아픈 결이 느껴져서…. 쉽게 꺼내 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어서 비 오거나 가끔 생각날 때 들어요. 꼭 예전 연애사를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해요.

더블 브레스티드 쇼트 재킷과 울 캐시미어 셔츠, 와이드 팬츠, 화관은 모두 Max Mara.

Q : 가지지 못할 것 같으면 단칼에 돌아서는 안수영을 통해 ‘포기하는 용기’를 배웠다고 말했어요

A : 시간이 흐를수록 저와 많이 닮은 친구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어쩌면 마음속에 쌓아두거나 참았던 모습을 안수영으로 풀어냈던 것 같아요.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탈출구로 활용한 건지도 몰라요.

Q : 지난 7월 〈이로운 사기〉에서 특별 출연한 장면의 임팩트가 대단했습니다. 천우희를 도와주는 여성으로 변신했죠

A : 〈그 남자의 기억법〉을 함께한 이수현 감독님과 어떻게 재밌는 장면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다가 감독님과 작가님이 저를 위해 그 배역을 만들어주셨어요 ‘민강윤’의 초성도 제 이름에서 땄고, 독일 출생인 것도, 독일어를 쓰는 것도요. 타투도 제가 하고 싶은 걸로 고를 수 있었어요. 반응이 그렇게 뜨거울 줄 몰랐는데, 너무 재밌게 찍었습니다.

시어한 오간자 셔츠와 화관은 모두 Max Mara.

Q : 올해는 작품보다 화보나 패션 행사에서 자주 얼굴을 봤어요. 오늘 촬영은 막스마라와 함께했고요. 패션은 연기와 또 다른 표현법을 지닌 매개체인데 어떤 즐거움을 주나요

A : 연기는 준비 시간도 길고, 마음속에서 기승전결을 천천히 꾸려가야 한다면, 패션은 한 번에 ‘팡’ 터뜨리는 에너지가 필요해요. 모든 요소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완성되죠. 좀 더 화려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해 볼 수도 있어요.

Q : 쉬는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게 관대해졌나요.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들을 궁리 중”이던 시기였잖아요

A : 다행히 밀도 있게 작품을 촬영하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됐어요.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을 허용하기도 하고, 1주일에 4~5일씩 운동하다가 몸살이 나는 등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 말이죠. 건강검진도 태어나서 처음 해봤어요. 오트밀이랑 아몬드 알레르기가 있다는 거예요. 커피 마실 때마다 늘 500원을 더 주고 우유를 바꿔 마셨는데!

Q : ‘디바’로서 문가영의 얼굴도 좋지만, 무심하게 안경 쓰고, 대충 머리 묶어 올리고,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SNS 속 사진이 좋더라고요. 평소 모습과 가깝나요

A : 아무거나 입고 안경 쓰고 나갈 때도 있고, 또 친구와 집 앞 5분 거리의 카페에 갈 때도 차려입고 싶으면 힘을 줍니다. 그런 게 재미있어요. 제 방식대로 꾸미고 나왔을 때 전환되는 기분 말이죠.

맥시한 테디베어 코트와 슬리브리스 톱, 밴딩 쇼츠, 화이트 부츠는 모두 Max Mara.

Q : SNS 피드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2015년 10월 11일 세계 여자아이의 날에 올린 글이 인상적이더군요. ‘여자아이들이 소외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바라며,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도 존중받아야 할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길’이라는 글귀였죠

A : 세계 여자아이의 날이 되면 아빠가 단체 메시지방에 꼭 저와 언니에게 글을 써주세요. 꽃을 선물해 주시기도 하고, 꽃을 전하지 못하면 꽃 사진이라도 보내며 하루를 잘 보내라고 축하해 주시죠. 제게도 특별한 날이라 기념하고 싶었나 봐요.

Q : 그때보다 어른으로 성장한 당신이 여자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그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말. 요즘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다양한 기회들이 있잖아요. 어른들은 늘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니.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데 어릴 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었죠. 그런데 이제 내 일은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자주 하는 말이 돼버렸어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전할 기회로 작용한다면 100% 실패하더라도 하는 게 맞아요.

Q : 가끔 당신은 완벽한 사람처럼 보여요. 재능 있고, 똑 부러지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멋진 여성 말이죠. 그런 문가영도 낙담하거나 속앓이를 할 때가 있는지

A : 누군가와 함께일 때 내색을 잘 하지 않는 편이긴 해요. 저만의 자존심이랄지, 노력하는 모습을 아무도 안 봤으면 싶고, 그냥 원래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엄청 연습하고 현장에 가는데, 그곳에서는 여유 있게 보이고 싶나 봐요(웃음). 관대해지고 싶다고 얘기한 것도 스스로 가혹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슬픈 일은 혼자 해결하고, 좋은 일만 나누고 싶어요.

볼드한 태슬 장식의 베스트는 Max Mara.

Q : 최근 블랙핑크의 서울 콘서트를 찾기도 했죠. 어떤 인연인가요

A : 팬들이 앉은 좌석을 보고 추측하시던데, 정답입니다(웃음). 제일 끝에 앉은 신현지라는 친구가 제니랑 친하고, 그 옆에는 현지의 친구 이호정이 앉았고, 그 옆에는 혜지와 제가, 그 옆에 제 친구 민아가 순서대로 앉아 있었죠. 호정이랑 현지는 파리에서도 만났어요.

Q : 놀랍게도 데뷔 17주년이에요. 몇몇 장면을 다이어리로 엮는다면 꼭 포함시키고 싶은 순간들이 있나요

A : 2007년쯤 막 데뷔했을 때 소속 회사가 없으니 엄마와 촬영을 다녔어요. 초등학생이라 한 손에는 중간고사 문제집을, 한 손에는 좋아하던 스도쿠 책을 쥐고요. 지방 촬영이 있으면 엄마가 운전하며 저를 돌봤죠. 대사를 외우다가도 시험 치러 가고 또 촬영을 다녔던 그 차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이 떠올라요. 첫 촬영, 첫 주연이 됐던 날, 첫 커버…. 그런 시작점들도 떠오르네요.

풍성한 볼륨의 퍼프 소매 셔츠와 블랙 쇼츠, 빅 사이즈의 버킷 백, 스트랩 장식의 플랫폼 슈즈는 모두 Max Mara.

Q : 출연 작품의 대본도 차곡차곡 쌓아두는 편인가요

A : 다 모아놓는데요. 가끔 성별 상관없이 배역을 바꿔 읽어요. 〈질투의 화신〉이나 〈마녀보감〉의 남자 배우 파트를 읽어보았는데, 제 배역의 대사를 다시 읽는 것보다 재미가 더 쏠쏠해요.

Q : 요즘 새롭게 반기고 싶은 문가영의 모습은

A : 올해 해외 팀과 낯선 환경에서 작업할 기회가 유독 많았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에 놓이니까 그간 쌓아둔 것을 빠르게 녹여내야 하는 경우도, 가진 정보력으로 가늠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도 많았어요. 그때 놀랐어요. 압박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옥죄면서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낯선 곳에 놓인 또 다른 모습들, 새로운 작업을 했을 때 느끼는 것들, 심장이 긴장해서 뛰는 건지, 좋아서 뛰는 건지 모르겠는 그 기분을 다시 만끽하고 싶어요.

Q :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 건가요

A : 일단 뱅쇼를 끓이고요(웃음). 하반기까지 얼굴을 보여드릴 기회가 꽤 있어서 그 작업도 잘 마치고 싶어요. 2023년은 쉼과 일을 잘 조절했던 시기였어요. 몇 년간 잘 달릴 수 있는 채비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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