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펜타닐' 마약이 특히 위험한 이유

서믿음 2023. 11.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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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마약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다크웹과 SNS 등 마약 거래가 늘어나면서 마약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늘었고, 접근 연령은 낮아지고 있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어린 나이에 마약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8395명을 기록했다. 해외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선 2021년에만 7만601명이 펜타닐 등 합성 마약 남용으로 사망했다. 국립 약학대 교수인 저자는 거대 제약회사의 탐욕과 제도적 허점 등 현재 미국에서 펜타닐 사태가 발생한 맥락을 상세히 짚어낸다. 펜타닐을 발명한 폴 얀센의 이야기에서부터 이 약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모르핀 등 아편유사제의 역사를 통해 마약과 대결해온 인류의 기나긴 싸움을 조명한다.

펜타닐로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는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약으로 인해 죽는데, 대부분 펜타닐 때문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이유는 여러 종류의 마약을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 당국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 펜타닐이 항상 들어간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일 100명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한 달이면 3,000명이다. 참고로 2001년 9·11 테러로 사망한 사람이 2,977명이다. 즉 지금 미국은 매달 9·11 테러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물론 9·11 테러는 사망자 규모 못지않게 건물에 비행기가 부딪치는 끔찍한 장면이 공개되면서 시각적인 충격도 엄청났던 사건이다. 전국 각지에서 조용히 호흡곤란으로 죽는 마약중독자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수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100명은 지난 6년여간의 평균치일 뿐이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매일 220명이 마약으로 죽는다. 한 달에 한 번이던 9·11 테러급 사태가 한 달에 두 번으로 늘었다. - p.8-9, 「들어가며」 중에서

이 사태의 중심에는 결국 제약회사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제도를 악용하고 허점을 공략해 모니크와 같은 사람을 포함해 북미 대륙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던 유럽에서는 옥시콘틴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있다. 유럽인은 여전히 헤로인으로 만족하고 있다. 물론 헤로인도 답이 없는 마약이라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자신들이 행한 일로 생긴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 p.51, 「1장 마약을 드립니다 「마약을 드립니다. 1995」 중에서

이 사망자가 억지로 복용한 펜타닐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당시 그가 처방받은 펜타닐 패치에는 주성분인 펜타닐 8.4밀리그램이 함유되어 있었다. 이 양이 서서히 피부를 통해 흡수되어 낮은 농도로 사흘간 작용하게끔 설계한 진통제인데 굳이 억지로 한 번에 복용해서 사달이 난 것이다. 8.4밀리그램이 많은 양일까? 미국 마약단속국 자료에 의하면 펜타닐은 2밀리그램만 먹어도 죽을 수 있다. 그렇다면 2밀리그램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어린아이 눈꼽만 한 양이다. 연필심 위에 올라가는 양이기도 하다. 독극물의 대명사인 청산가리의 치사량은 복용자의 몸무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200밀리그램 내외다. 단순히 질량만 따져도 100배가량 위험한 물질이 펜타닐이다. - p.74,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파스’를 씹어 먹는 사람들」 중에서

펜타닐이 마냥 나쁜 물질도 아니다. 약에 무슨 좋은 약, 나쁜 약이 있겠는가. 효과적으로 쓰는 약과 그렇지 않은 약이 있을 텐데 펜타닐은 제대로 쓰기만 하면 이보다 더 좋은 진통제도 찾기 어렵다. 모르핀의 100배 정도 되는 진통 효과를 내는 데다 패치 형태여서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화학적으로 생산하기도 쉽다. 낮은 농도로 유지했을 때 수술로 인한 통증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의 삶의 질이 극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마법에 가깝다. 지금도 출산 시 무통 분만이나 제왕절개 수술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 약을 금지한다면 그 나름대로 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양날의 검이다. 극도로 위험한, 그래서 제대로 알고 써야 하는 기적의 진통제가 바로 펜타닐이다. - p.75,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파스’를 씹어 먹는 사람들」 중에서

펜타닐이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핀 등의 아편 유래진통제가 항상 그러하듯이 호흡근 마비가 나타났다. 펜타닐은 그 정도가 특히 심해서 일반적인 골격근의 경직도 초래했다. 중독의 우려도 여전했다. 진통 효과가 강력한 만큼 진정 효과나 행복감도 그만큼 컸고, 중독성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다분했다. 그래도 의료전문가들 위주로 알려진 이 약을 남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공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알약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기껏해야 피부에붙이는 패치 정도였다. 차라리 헤로인을 구하는 게 더 편했다. 그만큼 펜타닐로 인한 문제 또한 심하게 불거지지 않았다. 펜타닐 패치를 씹어 먹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p.84,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궁극의 진통제」 중에서

조금 큰 틀에서 보려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가고 시장이 형성된다. 그 전까지 펜타닐을 찾던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패치제를 처방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펜타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펜타닐을 알약 형태로, 그것도 불법으로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펜타닐 중독자 입장에서도 패치보다 알약이 먹기에 더 편했을 것이다. 중독자들도 건강에 신경 쓴다. 패치 먹으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안다.

모르핀이나 헤로인은 아편에서 추출하거나 추가적인 한 단계의 화학 공정만으로 만들 수 있다. 아편은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의 무질서 속에 자라는 양귀비에서 뽑으면 됐다. 반면에 펜타닐은 여러 단계를 거쳐 순수하게 화학적으로 합성해야 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간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화학 기술이 있어야만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단계라고 했지만 일단 세팅을 마치면 넓은 벌판에 양귀비를 재배하고 아편을 제조하는 방식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때로는 공장이 농장보다 낫다. - p.92, 「2장 펜타닐과 21세기 아편전쟁 「마약을 파는 자들」 중에서

마약류 중독자들이 병원을 꺼리는 이유도 있다.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마약류 사용을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 사용 그 자체가 불법이다. 따라서 병원에 가는 것보다 전과자로 낙인찍힐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다. 이미 관련법을 정비해서 비밀이 보장된 상태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244,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중독은 질병이다」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예방 교육이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펜타닐이 문제아로 돌변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옥시콘틴으로 대표되는 마약류 진통제의 남용 때문에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후 시장이 커지니 수요가 생기고 그 틈을 타서 펜타닐이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즉 처음부터 마약류 시장이 작다면 펜타닐이 발붙일 여지가 없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펜타닐 사태의 처음 원인이었던 공급을 억제하면 더 좋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류 중독자를 줄여야 하고, 그래서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 - p.255, 「.5장 마약 청정국으로 되돌아가는 길 「물질 사용 장애」 중에서

대마약시대 | 백승만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96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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