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이코노미]전기차 업계, 아름다운 소음 만들기 경쟁

우수연 2023. 11.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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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기차 가상 사운드 디자인의 세계
제네시스, 소리 분해 조합하는 그래뉼라 방식 사용
현대차, 아이오닉5 N 전기차 사운드 보강
BMW, 세계적인 할리우드 작곡가와 협업
아우디, 일상 소음에서 전기차 사운드 재료 찾아

강렬한 엔진 사운드와 배기음이 슈퍼카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와 팝콘이 터지는 듯한 배기음은 고성능차의 상징이었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요란스러운 엔진 소리는 사라졌다. 전기차 모터는 엔진에 비하면 소음이 거의 없다. 실내가 조용해지자 외부 소음이 오히려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체들은 엔진 소리가 빠진 자리를 어떤 소리로 메울지 고민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 번 들으면 누구나 브랜드 이름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작곡가와 협업을 하기도 하고 자연·일상의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모방한 자동차 소리를 만들기도 한다. 전기차 사운드 기술의 포인트는 브랜드 이미지와 차량에 어울리는 독창적인 소리를 얼마나 잘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드라이브 모드나 속도, 가속 페달 움직임과 사운드를 이질감 없이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이다.

배기음 없는 전기차, 가상 사운드로 운전 즐거움 더한다

2021년 제네시스는 브랜드 최초 전기차 GV60에 '전기차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SD)' 기술을 적용했다. 다양한 사운드를 도입하기 위해 소리를 매우 작은 단위로 분해해 다시 조합해 창조하는 '그래뉼라 합성 방식'을 썼다. GV60 운전자는 ▲내연기관 엔진의 소리를 그대로 구현한 'E-엔진' ▲전기차 모터소리를 다듬어 새롭게 만든 'E-모터' ▲거대한 우주선을 타는 느낌을 주는 '퓨처리스틱' 세 가지 사운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현대차는 올해 7월 출시된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 N에 사운드 효과를 극대화했다. 내연기관 엔진음을 따온 '이그니션' 사운드를 선택하면 배기구에서 나오는 팝콘 소리(팝앤뱅)를 들을 수 있게 했다. 고성능 전기차 모터 소리를 구현한 '에볼루션' 사운드는 현대차의 고성능 수소전기차 콘셉트카 N 비전 그란투리스모 모터 소리에서 따왔다. 여기에 초음속 전투기 소리인 '수퍼소닉' 사운드까지 더해 3가지 사운드를 갖췄다.

아이오닉5 N은 이그니션, 에볼루션, 수퍼소닉 등 3가지 액티브 사운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사진=우수연 기자]

BMW는 내연기관차 시대부터 사운드에 진심인 브랜드다. 2021년 BMW는 작곡가 한스 짐머에게 전기차 사운드 제작을 맡겼다. 신시사이저 뮤지션 출신인 그는 글래디에이터,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할리우드 영화음악계를 평정한 거장이다. 자동차 사운드를 일종의 음악으로 바라보는 BMW의 접근은 '운전의 감성'을 중시하는 브랜드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BMW는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을 지난해 완성해 브랜드 최초의 전기 세단 i4에 처음 넣었다. 이후 XM, i5, i7 등 BMW 전동화 라인업에 순차적으로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을 적용중이다.

작곡가 한스 짐머(사진 왼쪽)와 BMW 사운드 디자이너 렌조 비탈레가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 작곡을 위해 협업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BMW]

아우디는 전기차 사운드의 재료를 일상에서 찾았다. 아우디 준대형 전기 세단 e-트론 GT에 탑재된 사운드는 플라스틱 파이프 끝에서 나왔다. 아우디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영화에서 들어볼 법한 우주선 소리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대신 바이올린부터 일렉트릭 기타, 호주 원주민 전통악기인 디제리두까지 모든 악기에서 영감을 얻으려 애썼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소리는 찾지 못했다.

여러 시도 끝에 길이 3m의 좁고 긴 플라스틱 파이프 끝에 선풍기를 달아 소리를 들어봤다. 거대한 비행기가 저공비행하는 듯한 이 소리는 e-트론 GT 사운드의 기초 재료가 됐다. 여기에 신시사이저나 전동드릴 소리, 모형 헬리콥터 소리까지 포함해 사운드 32개의 샘플을 만들었다. 100여명의 고객을 초청해 사운드 블라인드 테스트도 진행했다. 이같은 소비자 피드백을 적극 반영해 친숙하면서도 스포티한 전기차 사운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우디 사운드 엔지니어 스테판 지셀과 루돌프 할브마이어가 플라스틱 관에 선풍기를 대고 E-트론 GT의 기초 사운드를 수집하고 있는 모습[사진=아우디]

소음 없이 조용한 전기차…보행자 안전까지 고려

엔진 소음이 없는 전기차는 보행자 안전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를 보면 디젤차는 10m 거리에서 보행자가 자동차의 접근을 인지하는 반면 전기차 인지 거리는 불과 2m였다. 조용한 전기차가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2019년부터 모든 신차에 외부에서 차량 소음을 내는 장치인 AVAS(Acoustic Vehicle Alert Sound) 설치를 의무화했다. 미국도 2020년 AVAS 의무 장착 기준을 세운데 이어 우리나라도 같은 해 7월부터 저소음 자동차 배기음 발생장치 의무화 법규를 만들었다. 국내 판매 차량은 시속 20km 이하의 주행 상태에선 75㏈ 이하의 인공 소음(경고음)을 내야한다. 75㏈은 지하철 소음과 비슷한 크기 소리다. 또 속도 변화를 보행자가 알 수 있도록 주파수에도 변화를 줘야한다. 우리가 음악에 사용하는 음계처럼 주파수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 고주파수로 갈수록 소리가 높고 날카로워진다.

현대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AVAS)[사진=현대모비스]

이같은 규정을 지키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은 보통 엔진룸이나 범퍼, 앞바퀴 덮개(펜더) 부분에 외부 스피커를 단다. 하지만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그릴을 아예 스피커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렇게 되면 기존 제품 대비 부피·무게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낮아진다. 외부에 스피커가 노출된 셈이기에 바깥으로 소리의 전달력도 좋아진다.

내연기관차와는 달리 전기차는 연료를 태우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차량 내부의 열을 식히기 위한 그릴이 필요 없다. 따라서 전기차 그릴은 막혀있고 대신 배터리에 별도의 열관리 장치가 붙어있다. 현대모비스는 전기차의 막혀있는 그릴을 스피커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2020년 개발된 이 기술이 아직까지 양산차에 적용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보통 신차 개발 주기를 5년으로 보면, 2025년 무렵 출시 예정인 현대차·기아 신차에 탑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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