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미·중, 군사는 소통…무역·대만은 불통
중국 외교부는 16일 X(옛 트위터)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웃으며 대화하는 사진과 함께 두 정상의 대화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화춘잉 대변인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의 사유지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의 저택에서 만난 시 주석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이 청년을 아느냐”고 물었고, 시 주석은 “오~ 맞다, 38년 전”이라고 답했다. 30대 초반의 허베이성 정딩현 당서기 자격으로 아이오와주 농촌 마을을 방문했던 시 주석이 금문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같은 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저택 인근 정원을 산책하던 중 시 주석에서 “부인의 생일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시 주석은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아내 생일이 다음 주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일깨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펑리위안 여사는 생일이 11월 20일로 같다. 바이든 대통령은 1942년생, 펑 여사는 1962년생이다.
확대 회담→업무 오찬→주변 산책 순으로 총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회담은 이처럼 표면적으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화 중 하나”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의 압박을 풀고 경제 성과를 내야 하는 시 주석의 이번 만남 직후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발리 회담 이후 1년 만에 만난 양국 정상은 이날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회담 후 홀로 기자회견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일부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며 구체적인 회담 성과로 군사 대화 재개,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협력, 인공지능(AI)에 대한 전문가 대화 추진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둘 중 누구든 우려가 있으면 수화기를 들어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면 받기로 했다”며 핫라인 개설 합의 소식을 알렸다. 최악의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했지만 양국은 그간 대치 전선을 그어온 대만 이슈와 수출 및 투자 규제 등 핵심 갈등 이슈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바이든, 시진핑 앞에선 “부인생일 축하” 헤어진 뒤엔 “그는 공산국 이끄는 독재자”
양국 당국과 주요 언론이 전한 회담 내용을 종합하면, 대만 이슈와 관련해 시 주석은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한다”며 “대만 무장(지원)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중국이 2027년이나 2035년에 군사행동을 계획 중이라는 보도를 들었지만 그런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 대목을 얘기할 때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고 전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중국이 대만해협 인근에서 군사활동을 자제하고 대만의 선거 절차를 존중할 것을 요청했다. 내년 1월 열리는 대만 총통선거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정당이 집권하도록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출 및 투자 규제 등과 관련해 시 주석은 “미국이 경제·무역과 과학·기술 영역에서 대중국 억제와 탄압을 하는 것은 ‘위험 제거(de-risking)’가 아니라 ‘위험 제조’”라며 “이로 인해 만들어진 중·미 관계의 불확실성은 이미 최대의 위험이 됐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우려를 받아들여 일방적인 제재를 취소하고 중국 기업에 공평·공정·비차별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에 맞서는 데 사용될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역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시장경제에 반하는 경제 관행, 미국 기업 지식재산권 강탈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은 회담 후에도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옛말에 나오는 것처럼 ‘믿되 검증해야(trust but verify)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라고 답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공산당 독재국가인 소련과의 핵 군축 협상 당시 자주 사용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급기야 그는 회견장을 빠져나가려다 “이번 회담 이후로도 시 주석을 ‘독재자’로 부를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독재자”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공산국가를 이끄는 남자”라며 “1980년대 이래로 독재자였다”고 덧붙였다. 금문교 앞의 ‘30대 청년’ 시진핑이 한순간 금문교 앞의 ‘독재자’로 둔갑한 것이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즉각 16일 브리핑에서 “이런 표현은 매우 잘못되고 무책임한 정치적 농간”이라고 반발했다.
시 주석도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후 우호단체 환영 리셉션에서 “중국은 미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않았고, 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면서 “미국 역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말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며, 평화롭고 안정되며 번영하는 중국을 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APEC 정상회의 공식 환영행사에서 재즈 레전드인 고 토니 베넷의 노래(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인용해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남긴 곳”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의 시 주석은 그의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남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이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백악관이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힌 게 전부였다.
워싱턴·샌프란시스코·베이징=김형구·김필규·신경진 특파원, 강태화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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