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차이나 화이트

태원준 2023. 11. 17.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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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하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대표적 '흑역사'는 1990년대 후반 아편 계열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옥시콘틴을 승인해준 것이 단연 꼽힌다.

제약사 퍼듀파마의 임상시험 조작과 뇌물 매수에 '저(低)중독성' 진통제란 판정을 내렸는데, 이는 지난 15일 미·중 정상회담에 펜타닐이 의제로 오르는 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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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깐깐하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대표적 ‘흑역사’는 1990년대 후반 아편 계열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옥시콘틴을 승인해준 것이 단연 꼽힌다. 제약사 퍼듀파마의 임상시험 조작과 뇌물 매수에 ‘저(低)중독성’ 진통제란 판정을 내렸는데, 이는 지난 15일 미·중 정상회담에 펜타닐이 의제로 오르는 시발점이 됐다. 퍼듀파마는 FDA 승인에 힘입어 옥시콘틴을 비타민 팔듯 팔아재꼈고, 비아그라에 버금가는 대박을 치는 동안 허위 자료에 감춰졌던 높은 중독성과 치명성이 고개를 들었다. 2000년대 들어 코카인을 능가하는 옥시콘틴 중독·사망 사태가 벌어지자 깜짝 놀란 미국 정부는 퍼듀파마 수사에 나서며 허겁지겁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미 마약업계가 거대한 중독 집단을 창출하는 오피오이드의 ‘상품성’에 눈을 뜬 뒤였다. 당국의 규제로 옥시콘틴을 구하기 어려워진 중독자들이 비슷한 효과를 내는 헤로인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걸 보면서, 마약업자들이 옥시콘틴 대체제로 고안해낸 게 펜타닐이었다. 1959년 제약사 얀센이 개발한 펜타닐은 약효가 모르핀의 100배에 달하는 진통제다. 옥시콘틴과 유사한 오피오이드지만 양귀비에서 성분을 추출하는 과정이 필요 없어 만들기 쉽고 값도 쌌는데, 그 원료가 주로 중국에서 생산됐다. 2010년대 들어 중국 제약업계, 삼합회,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연결된 공급망이 갖춰지면서 펜타닐은 ‘차이나 화이트’란 이름으로 미국 마약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펜타닐 중독은 불과 10여년 만에 18~49세 미국인의 1위 사망 원인이 됐다. 중추신경계를 손상시켜 허리를 잘 못 펴게 만드는 부작용 탓에 대도시마다 중독자들이 구부정하게 걸어 다니는 ‘좀비 스트리트’가 생겨났다.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샌프란시스코도 그런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한 기업의 탐욕이 부른 진통제 마약의 늪은 20여년 만에 세계 1·2위 대국의 정상이 만나 “펜타닐 단속”을 상의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됐다. 마약과의 전쟁, 지금 머뭇거리면 우리도 그리될 수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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