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떠내려온 생애

2023. 11. 1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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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신당창작아케이드 기획 전시를 보러 갔다가 나는 한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작가는 물 위를 떠도는 유목(流木)이나 수령이 오래되어 베어낸 과실나무 파편을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들었다.

나뭇결을 세심히 읽어가며 조각해 내려간 무수한 흔적이 물비늘처럼 여울졌다.

전시장에서 보았던 작품과 비슷한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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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지난 9월 신당창작아케이드 기획 전시를 보러 갔다가 나는 한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수빈 작가의 ‘떠내려온 손’이었다. 작가는 물 위를 떠도는 유목(流木)이나 수령이 오래되어 베어낸 과실나무 파편을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들었다. 나뭇결을 세심히 읽어가며 조각해 내려간 무수한 흔적이 물비늘처럼 여울졌다. 유목은 손으로 조각되었고 손바닥이 안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내 손을 잡아”라고 말하듯이. 집으로 가는 동안 기다란 손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며칠 뒤 홍제천을 산책하다가 물 위에 떠 있는 ‘유목’을 보았다. 전시장에서 보았던 작품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 유목은 한낱 나무토막으로 보이지 않았다. 불타고 남은 나뭇가지였거나 누군가의 집 기둥이었을지도 모를 파편. 떠내려온 한 생애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도 놀라운 감응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더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때마침 윈도우갤러리의 전시 소식을 접하고 찾아갔다.

갤러리에 도착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품은 윈도 안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재로 씻은 얼굴’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유순한 동물처럼 보이는 작품이었다. 손과 발이 절구처럼 뭉툭했고 한쪽 발이 짧았다. 코는 납작하게 닳았고 온화하게 눈을 감고 있어서 명상하는 듯 보였다. 얼굴을 가로질러 깊은 틈이 파였는데 상처를 꿰맨 실밥처럼 보였다. 작가는 그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 얼굴에서 고통을 몸으로 겪어낸 이들을 떠올렸다. 힘든 수술을 이겨낸 친구와, 올여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코가 시큰했다. 슬픔을 위무하는 이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곰곰 살펴보다가 나는 그의 작품이 곡선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았다. 사랑은 직선의 뾰족함이 아니라 기꺼이 마모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끌어안을 때 동그랗게 몸을 마는가.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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