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그녀가 내 어깨너머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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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체험은 내밀함 속에서 집단적 성격 띠기에자전적 작품은 사회적 산물이 된다"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어린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는 바람에 그 화답의 방식으로 글을 쓴 작가가 있다.
라그라브는 자신이 쓴 "그녀가 내 어깨너머로 보고 있다"라는 문장을 되돌려주며 사적인 글쓰기와 독자는 이런 행복한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사적인 체험은 그 내밀함 속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갖는 집단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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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작품은 사회적 산물이 된다
“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어린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는 바람에 그 화답의 방식으로 글을 쓴 작가가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 작가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프린스턴대학교, 지금은 바너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능숙한 영어 구사에도 사람들은 묻곤 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일 거라는 지레짐작이 작가에게 끊임없이 정체성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가족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나요?”라는 빈번한 질문에 답하면서 이슬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미를 발견한다. 작가에게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동생 등의 일반명사가 아니다. 고유명사를 가진 개별 존재이고 호명하는 순간 자신과 관계에서 멀어져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그 특별한 존재를 쓰고 또 쓰면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가족을 점점 멀리서 볼 수 있다. 멀어져서 웃겨질 때까지, 그래서 그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쓰는 것이다. 솔직하다는 건 글쓰기의 미덕이 아니다. 솔직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탁월함이 글쓰기에서는 더 중요하다. 가장 귀한 글을 독자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은 솔직함으로 드러난다. 화자를 포장하기보다는 독자가 화자를 놀리도록 노골적으로 먼저 약해지고 우스워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사적인 노출이 문학이 될 수 있나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들은 질문이다. 에르노가 프랑스 사회학자 로즈마리 라그라브와 나눈 대화에서 답한다. “내밀한 것을 글로 쓰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을 나와 분리된 존재, 다른 사람으로 느끼거든요.” 에르노가 쓴 작품은 사적인 체험에 머물지 않는다. 라그라브는 에르노의 내밀한 글쓰기가 그물이 돼 다른 여성들을 끌고 왔고 자신도 그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고백한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이라도 작가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고, 자신의 세대에 묶인 사회적 제약들과 결정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보편적인 힘이 사적인 글쓰기의 세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라그라브는 자신이 쓴 “그녀가 내 어깨너머로 보고 있다”라는 문장을 되돌려주며 사적인 글쓰기와 독자는 이런 행복한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내어 쓴다. 세상의 질문을 관통하며 체험을 자산으로 삼는다. 밋밋한 질문이랄지 난폭한 질문도 답하면서 세 작가의 글쓰기는 깊어지는 듯하다.
지금 에르노의 책을 만들며 갖게 된 믿음은 이것이다. 사적인 체험은 그 내밀함 속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갖는 집단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내 어깨너머를 보고 있던 것인가. 작가의 섬세한 촉수가 나를 어루만진다. 공감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작품은 사회적 산물이 된다.
‘문학이 현실에, 사회적인 세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을 복합적인 두께로 이해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사건들과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글쓰기 안에서 이해하는 데는 오래 시간이 걸렸다. 내가 하는 건 ‘자서전, 사회학, 전기’라고 답할 수 있다. 여든이 넘은 에르노는 ‘사회학’이란 용어를 꺼냈다. 생각해보니 에르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던 한림원이 “개인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보여줬다”고 말한 맥락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전적 작품은 노출증의 발로가 아니다. 좋은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니, 타인의 인생에도 개입하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여한다. 편집 중인 에르노의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노년을 이야기한다. 노년을 위해서 무언가 준비했다고 해도 갑자기 닥쳤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는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갈 방도밖에 없지 않느냐며 또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에르노의 체험은 노년과 죽음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그 이야기는 무수한 사람의 어깨너머로 본 것들과 어떻게 엮일지 궁금해졌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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