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시린 이 치료 신물질 세계 최초 개발…K-바이오 신화 도전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9〉 박주철 하이센스바이오 창업자
미국 하버드대 피바디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마야인의 유골. 치아 부분에 조개껍데기 세 조각이 붙어 있다. 전문가들은 상실된 치아를 복원하기 위해 조개껍데기를 갈아 넣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2000년 이집트에선 상아를 깎거나 동물의 이를 활용해 빠진 이를 복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대 들어 이런 조개껍데기나 상아를 대신하는 것이 치아 임플란트다. 정형외과 의사이던 퍼 잉바르 브레네막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1952년 토끼 다리뼈에 티타늄 원통을 넣는 연구를 통해 ‘골융합 반응’을 발견한 게 시초였다. 이 원리로 1965년 시작된 게 치아 임플란트 시술이다. 그러나 임플란트가 치아 기능 복원엔 큰 기여를 했지만, “자연 치아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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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핀7 단백질’ 역할 규명 통해
손상된 상아질 치료 물질 개발
신경치료·발치 없이 치아 재생
치료제·치약 등도 출시할 예정
」
상아 모세포 재생하는 ‘코핀7’ 첫 규명
박주철 서울대 치대 교수는 자연 치아 보전에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상아 모세포를 활성화하는 핵심 인자 ‘코핀7(CPNE7) 단백질’의 역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규명해 손상된 치아에 ‘재생의 길’을 열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2016년 직접 하이센스바이오를 창업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하이센스바이오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처음부터 창업하려던 생각은 아니었다. 제가 잘한 게 있다면 뚝심으로 치아 재생 한 가지만 밀고 나간 것”이라며 웃었다. 이 회사는 현재 기술성 특례 트랙으로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치아는 바깥쪽을 덮고 있는 단단한 부분인 ‘법랑질’→치아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상아질’→신경·혈관이 있는 ‘치수’ 등으로 구성된다. 법랑질이 마모되면 상아질이 손상되고 미세 구멍을 통해 신경이 노출돼 ‘시린 이’ 증상을 겪게 된다. 마모된 법랑질은 금·세라믹 등 인공 틀로 덧씌울 수 있지만, 그간 상아질은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다.
“상아질은 감각을 느낄 수 있지만, 바깥쪽에 있는 법랑질은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단단한 조직입니다. 상아질까지 단단한 조직이었다면 치아가 손상돼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법랑질이 조금만 손상돼도 이가 시린 느낌이 들기 때문에 치아가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받게 되는 거예요.”
신경 치료, 치아 삭제 없이 상아질 재생
하이센스바이오가 세계 처음 개발한 치료물질 ‘코핀7 단백질 유래 펩타이드’(KH001)는 상아질·치주인대 등을 재생해 손상된 치아를 되돌려준다. 박 대표는 “치아 속 신경을 다 빼내 버리는 신경치료나 치아 삭제 없이도 손상된 상아질 부분을 재생할 수 있다”며 “손상된 치주인대 치료나 충치 차단에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와 함께 ‘코핀7 단백질 유래 펩타이드’를 연구한 손원준 서울대치과병원 교수는 “실제 치료를 하다 보면 시린 이 환자가 많은데, 그동안 치료는 사실상 임시방편에 그쳤다”며 “펩타이드를 바르기만 해도 치아우식증 진행을 막아 충치 예방이 가능하고, 치주 조직 재생에서도 효과가 있다. 연구를 지속할수록 기전(機轉·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이 더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가 발견한 코핀7 단백질과 내가 연구한 펩타이드를 결합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치아 뼈·연골을 주로 연구해왔던 박 대표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건 2001년 미국 뉴욕주립대에 교환교수로 가서다. 그는 “우연히 옆방 교수가 ‘생쥐 어금니에 뿌리가 없다’며 분석해달라고 가져왔다. 그래서 치아 뿌리가 없는 원인을 찾아내면 뿌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불가능에 도전했던 것이고,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치아 재생 연구를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돌이켰다.
박 대표는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상아질을 재생할 수 있으면 쓸모가 많겠다’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첫걸음은 상아질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를 찾는 것이었다”며 “3년의 연구 끝에 찾은 단서가 ‘코핀7 단백질’이었다. 이 단백질이 상아질을 만들어 내는 걸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치아뿌리 생성 도전…“실패가 원동력 돼”
코핀7 단백질은 63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는데, 박 대표는 여기서 상아질 재생에 도움을 주면서도 화학적으로 합성이 가능한 ‘코어 펩타이드(아미노산의 결합)’ 10개를 찾아냈다. 박 대표는 “계통 발생학적으로 짚신벌레부터 사람까지 모두 코핀 단백질이 있다. 중요한 기능을 하니까 하등 동물부터 있을 테지만, 그전까진 기능을 몰랐다”며 “사람에겐 코핀1~9가 있다. 최근 코핀7은 상아질 외에 뇌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규명됐다”고 말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엔 창업이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어요. 그 연구를 한창 하고 있던 2006년 무렵 한 학회에 가서 ‘상아질이 없어진 자리에 상아질을 원래대로 재생하는 게 제 꿈’이라고 발표했더니 ‘상아질을 재생해서 뭐할 겁니까’라는 질문이 돌아왔어요. 그 자리에서 답을 못했습니다. ‘학문적으로 중요하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죠. 나중에 이것이 시린 이 치료제로 이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거죠.”
창업의 단서 얻은 곳은 치료 현장
창업의 단서를 얻은 건 치료 현장이었다. 박 대표가 임상교수들을 찾아가 “코핀7 단백질을 손상된 치아에 사용하니 상아질이 재생된다”고 말했더니, “치과에서 제일 치료가 어려운 게 지각과민증이다. 차라리 창업해서 시린 이 치료제를 개발해보라”는 제안이 돌아온 것이다.
“제가 치대 졸업 후 ‘개원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했을 때도 제 편을 들어줬던 아내는 창업을 어느 정도 하다가 그만둘 거라 생각했대요. 처음에 창업 자금을 마련하려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며 약속했지요. ‘마이너스 통장만큼만 투자금으로 쓰고 잘 안되면 깨끗하게 정리하겠다’라고요.”
박 대표는 박사과정을 마친 ‘1호 제자’와 함께 회사를 차렸다. 다행히 창업 이후엔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부터 연구과제를 수주했고, 그곳에서 하이센스바이오를 눈여겨본 투자자가 투자를 하고 싶다고 나선 것이다. 이 투자자는 “회사의 지분 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술 개발은 박 대표가,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라” 등의 조언을 하면서 회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오리온 손잡고 ‘시린 이’ 치약 준비
시장조사업체 FMI에 따르면 글로벌 치주질환 시장 규모는 지난해 91억 달러(약 11조8300억원)에서 2032년 244억 달러(약 31조37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하이센스바이오에 투자한 한국투자파트너스의 정순욱 투자이사는 “현재 치아 질환 관련해선 의외약품이나 건강기능 관련 약품이 대부분인데 하이센스바이오의 제품은 처방약으로 응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바이오 신약 투자사들은 대부분 동일한 병세에 대한 중복 투자를 하게 되는 걸 고민해왔다. 특히 치아 질환 치료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분야라 유망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이센스바이오는 ‘코핀7 단백질 유래 펩타이드’를 상업화하기 위해 지난해 오리온과 합작사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시린 이 치약’ 상업화를 준비 중인데, 이르면 내년 말 출시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치아 상아질 바깥 법랑질이 없는 ‘법랑질 형성부전증’ 같은 희귀병에 대한 치료제 등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강아지 치아 치료제 등 동물의약품 시장 진출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국내 선천적 법랑질 형성부전증 환자는 5000여 명, 미국은 20만 명가량이다.
“창업 성공하려면 ‘교수 티’ 벗어나야”
박 대표는 최근 바이오 벤처업계의 부진이 ‘부(不)정직’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실적 과장, 부실 회계 등이 반복되며 투자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구자도 기업가도 ‘정직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와 경영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며 “교수도 새로운 지식과 연구를 계속하지만, 결과에 책임을 지지는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결과가 꼭 따라와야 하는 경영은 다르다”고 말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어려웠던 건 구인난이었다. 박 대표는 “바이오 벤처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없다 보니까 유능한 인력을 뽑는 게 쉽지 않다”며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국가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대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신호를 준다면 우수 인력을 뽑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창업 몇달 뒤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기업설명회(IR)를 한 적이 있어요. 평생 처음 IR을 해본 거죠. 투자자 중 한 분이 ‘교수님, 회사 하지 마시고 그냥 교수나 하세요’ 그래요. 나중에 들어보니 ‘창업해서 성공하겠다는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 조언은 굉장히 쓴 약이 됐어요. 교수가 갑(甲)은 아니지만, 어디서 부탁하는 경우도 잘 없잖아요. 그때 ‘교수의 틀’에서 벗어나려 했던 게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과천=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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