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미국에서도 의심받고 있는 사법부 권위
네오 르네상스풍 흰색 대리석 건물인 미국 연방대법원 1층 안으로 들어가면 정중앙에 눈길을 사로잡는 커다란 동상이 있다. 제4대 연방대법원장 존 마샬 좌상이다. 미 건국 초기인 1801년부터 1835년까지 연방대법원장으로 있으면서 연방대법원의 기틀과 전통을 확립한 법조인이다.
대법정으로 들어가는 중앙홀 옆에는 역대 연방대법원장의 흉상이 있다. 아울러 역대 연방대법관들의 대형 초상화가 건물 벽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정의의 보루라는 의미에서 ‘저스티스’(Justice)로 칭하는 연방대법관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과 예우를 읽을 수 있다. ‘선한 행동을 하는 동안’(During Good Behavior) 종신직 임기를 보장한 것은 교황에 비유될 만한 특별한 권위로 여겨져 왔다.
존 로버츠 현 연방대법원장(제17대)만 해도 보수 성향이지만 이념에 구속되지 않고 법 논리에 충실해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온건 보수 기조를 견지하면서도 ‘오바마 케어’ 합헌 등 몇몇 주요 사건에서 진보 성향 의견을 내 미국의 최고 사법기관을 균형감 있게 이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 연방대법원이 요즘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일부 연방대법관들의 향응 스캔들이 폭로되면서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큰손 후원가로부터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한 공짜 호화 여행을 제공받았고,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억만장자와 알래스카 낚시 여행을 떠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3일 자체 윤리강령을 발표해 명예 회복을 시도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뒤여서일까. 여론은 냉담하다. 위반시 처벌과 명확한 집행 절차가 담겨 있지 않은 윤리강령을 두고 “이빨이 빠져 있다”(뉴욕타임스)는 혹평이 나온다. 60% 안팎을 유지하던 연방대법원 업무수행 지지율이 40%로 떨어져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번 추락한 사법부 권위의 복원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미국 사례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데 이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후임자 없이 퇴임하면서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재 수장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됐다. 새로 지명된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와 이종석 헌재소장 후보자는 국회 동의 절차를 마치지 못했다.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사법부 독립과 법치의 복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추락한 사법부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대법원장, 헌재소장이 나오기를 바란다.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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