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1등주의’ 버렸나? ...안착에 시선집중 [BUSINESS]
장면 1. 역성장. 신한금융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분기 대비 3.7% 감소한 1조1921억원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3%가 감소한 3조8183억원이다. 업계 1위를 놓고 치열할 경쟁을 벌이고 있는 KB금융(4조3704억원)과의 3분기 누적 순익 격차는 5521억원까지 벌어졌다.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올해 되찾아올 공산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장면 2. 국내 금융사 최초 인공지능(AI) 전문 자회사로 주목받았던 신한AI가 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신한금융지주는 사업 효율화 명목으로 신한AI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자본을 투입해야 하지만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는 상황은 아니다. 사업 효율화를 위해 사업 영역으로 AI를 가져와서 그룹 자체적으로 AI 사업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9년 9월 출범한 신한AI는 약 50명의 인력으로 주식 시장 관련 답변 제공 GPT 서비스인 ‘모물’ 출시 준비를 하는 등 AI를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 모델을 짜고 있었다. 다만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 한편에서는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빼앗기고 직원 사기도 떨어지자 수익성 낮은 사업을 재검토하는 것 아니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천공항 은행사업권 놓쳐
3분기 누적 약 4조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는 신한금융그룹.
사실 순익 기준만 놓고 보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영업은 나쁘지 않게 했으나 대내외 리스크를 감안해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손실 우려가 있는 자산을 심사,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두는 돈)을 대대적으로 쌓아두다 보니 순익이 더 줄어들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사안은 적잖다.
지난 10월 말 인천공항에 입점할 은행사업권 입찰에서 4대 은행 중 신한은행만 유일하게 탈락했다. 신한은행은 2001년 인천공항 개항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 인천공항공사는 제1·2여객터미널(T1·T2)과 탑승동에 은행·환전소를 운영할 수 있는 3개 사업권을 대상으로 입찰을 진행했다. 사실상 10년짜리 사업권이었는데 눈앞에서 놓친 셈.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한 경영진 탓”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최근 또 다른 핵심 자회사 신한카드가 2년간 해오던 서울시의 ‘서울사랑상품권’ 사업을 종전 사업자 비즈플레이 컨소시엄에 빼앗긴 것을 두고도 내부에서는 말이 많다. 사용자 175만명, 가맹점만 27만개에 달하는 ‘서울사랑상품권 판매대행점’ 사업은 지난 2년간 신한카드 컨소시엄이 안정적으로 해왔다. 보이지 않은 부가가치 창출 기회도 있었다. 사업 과정에서 서울사랑상품권 계좌, 카드를 신한 계열 중심으로 쓸 수 있게 설계했어서다. 그만큼 신규 고객 유치를 직간접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런 장점도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됐다. 수익 면에서도 상품권 판매 금액의 0.77% 이하 발행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 사업권만 따냈으면 순익에 도움 됐을 터. 참고로 서울시의 내년 상품권 발행 규모는 45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굵직한 경쟁 입찰을 여러 계열사가 돌아가면서 놓치자 대내외에서는 신한금융그룹을 우려하는 시선이 하나둘 나타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진옥동 회장’ 체제가 된 후 1위와 격차가 벌어지면서 일부에서는 ‘리더십 안정화의 역설’ 현상이 나타난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제기된다. 근거는 이렇다. 이전까지만 해도 신한금융그룹은 확고한 2인자를 두지 않고 차기 수장을 놓고 은행장, 카드사 사장, 지주사 임원 등이 건전한 경쟁 관계를 구축해왔다. 그런데 진옥동 회장 취임 이후 이제 새로운 2인자 그룹의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숙제다. 리더십 단일화 구도라면 강력한 지주사 리더십 아래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 통합 효과가 나야 한다. 그러나 지금 신한금융그룹에서는 이런 그림이 잘 보이지 않고 계열사 대표는 ‘몸 사리기’에 연연한다는 말이 돈다. 그러다 보니 사세가 위축되고 있다는 논리다. 왜 이런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
진옥동의 반론 무엇?
한 단계 높은 내부통제…고객이 인정
신한금융그룹은 세간 우려에 대해 “잘 안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진옥동 회장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7월 회사 내부 행사에서 “재무적 1등보다 고객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일류, 한 단계 높은 내부통제를 기반으로 고객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류 신한을 지향점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통상 ‘리딩금융그룹’ 기준이 되는 순이익 경쟁에 힘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올해 9월 신한금융지주회사 창립 22주년을 기념해 직원들과 함께한 ‘참신한 토크 콘서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 한 직원이 “진옥동식 정도 경영의 실체가 무엇인가” 묻자 “정도 경영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실적을 내기 위해 초조해하지 않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면 비록 속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정도를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행장 시절인 2020년 기존 성과평가제도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전면 개편한 바 있다. 고객 중심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내걸고 ‘고객 수익률’을 직원의 최우수 과제로 삼은 ‘같이 성장 성과평가제도’가 그것이다. 이후 여타 경쟁사가 따라 하면서 하나의 롤모델이 됐다.
또 신한은행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만기가 40년 넘는 주담대 대상에 ‘만 34세 이하’ 연령 제한을 두게 했다. 올해 여타 시중은행이 50년 주담대를 별 기준 없이 팔다 금융당국에 제동이 걸린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진옥동 회장은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에 연령 제한을 둔 금융 공기업 사례를 참조해 정도 경영으로 의사 결정을 내렸던 것이 빛을 발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올해 초 보험사 회계기준 변경(IFRS17)에 따라 보험사 순익이 급증한 사례를 우려했다. 그래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순익을 잡도록 했다. 그리고 여타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 순익을 추적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3분기 실적에서 감독당국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면서 ‘착시’ 현상이 줄어들었다. 신한금융 역시 현행 가이드라인에 맞게 계속 보험 사업 구조를 강화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생명보험 계열사인 신한라이프는 3분기 누적 순이익 4276억원을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신한 퓨처스랩 일본 출범…펀드 조성도
진 회장은 “재무적 1등을 포기한다고 해서 차세대 먹거리 대비까지 느슨하게 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한다. 이런 철학 아래 육성하는 사업이 바로 해외 벤처 투자다.
이미 국내에서는 금융권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신한 퓨처스랩’,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인 ‘신한 스퀘어브릿지’ 등을 잘 안착시킨 바 있다. 참고로 신한 퓨처스랩 육성 기업 중 정부 공인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된 기업은 누적 기준 총 18개 업체로, 금융권 최다 배출 기록을 세웠다.
여세를 몰아 신한금융그룹은 2016년 베트남 호찌민에 ‘신한 퓨처스랩 베트남’을,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신한 퓨처스랩 인도네시아’를 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본에 세 번째 해외 스타트업 육성 거점인 ‘신한 퓨처스랩 일본’을 출범시켰다. 일본 스타트업 발굴·육성을 위해서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회사명 글로벌브레인)이 최초로 손잡고 만든 50억엔 규모 ‘신한-GB FutureFlow 펀드’로 직접 벤처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일류 금융그룹이 되기 위해 금융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인내와 변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진 회장. 그의 철학이 어떤 모습으로 안착할지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4호 (2023.11.15~2023.1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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