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리셋해야”… LG가 상속분쟁 ‘격화’

양민철 2023. 11. 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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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대화 녹취록 법정 공개
가족 간 상속 협의 및 갈등 담겨
재판부, 양측에 조정 제안하기도


16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410호 민사법정. 고(故) 구본무 LG 선대회장 상속 재산을 둘러싼 유족 간의 2차 공방전을 지켜보려 몰려든 취재진과 그룹 관계자들로 법정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증인석에는 2018년 구 선대회장 별세 당시 상속 실무를 맡았던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이 앉았다.

하 사장은 LG그룹 재무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오너 일가의 재산 관리와 상속 업무를 총괄한 인물이다. LG가(家)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른 상속 과정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소환된 것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모친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씨 측은 구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를 법정 상속 비율(유류분)에 따라 다시 나누자며 지난 2월 구 회장에게 상속회복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법정에선 세 모녀 측이 지난해 6월 전후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분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구 회장 측 변호인은 하 사장을 상대로 “당시 구연경 대표가 ‘아빠(구 선대회장)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하 사장은 “그런 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녹취록에는 김영식 여사가 구 회장에게 “내가 주식을 확실히 준다고 했다”고 발언한 내용도 담겼다. 또 김 여사가 대화 과정에서 “연경이가 ‘잘 할 수 있으니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다시 받고 싶다’고 말했다”고 언급한 내용도 제시됐다. 녹취록엔 대화 현장에 구 대표 배우자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도 동석한 것으로 기록됐다.

세 모녀 측은 구 선대회장이 생전에 사용했던 ‘금고’를 도마에 올렸다. 세 모녀 측 변호인은 “구 선대회장 별세 직후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하 사장이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고인의 사무실과 별장에 있던 금고 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구본능 회장은 구 선대회장의 동생이자 구광모 회장의 친부(親父)다. 구광모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2004년 구 선대회장 양자(養子)로 입적됐다.

세 모녀 측 변호인은 “직계 가족(세 모녀)에게도 알리지 않고 금고를 연 이유가 무엇이냐”며 “상속 당시의 이런 정황이 분란의 씨앗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재산’이 뭐길래

LG그룹 일가의 상속 분쟁이 법정까지 이른 건 1947년 창업 이래 처음이다. LG는 그동안 오너 일가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재계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2001년 지주사 전환에 착수해 특별한 분쟁 없이 경영권 승계 및 GS·LS·LX그룹 등의 계열분리를 완료했다.

그러나 유족 간의 법정 다툼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둘러싼 갈등과 LG그룹 경영권 유지의 근간인 ‘경영 재산’이 실체를 드러냈다. 하 사장은 지난달 6일 첫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구 선대회장의 지시를 받아 총수 일가의 LG 지분과 개인 재산을 관리했다”고 증언했다. 총수 일가의 개인 계좌는 물론 인감도장까지 그룹 재무관리팀이 보관했고, 구 선대회장 지시를 받아 재산 관리를 회사가 전담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영권과 관련된 총수 일가 지분은 모두 그룹 회장에게 위임돼 경영 재산으로 통칭했다는 것이 하 사장의 법정 증언이다. 그는 “LG그룹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회장에게 위임된 주식과 재산은 모두 경영 재산”이라며 “헤지펀드 공격 등을 막기 위해 회장에게 단일 지분이 가야한다는 가이드라인이 그룹에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구인회 창업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을 거치며 ‘총수 일가는 LG 지분을 보유하지만, 그룹 경영권은 모두 회장에게 간다’는 원칙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구 회장은 2018년 구 선대회장의 ㈜LG지분 중 8.76%를 상속받아 총 지분 15.95%로 총수에 취임했다. 여기에 범LG 일가인 구본식 LT그룹 회장(4.48%)과 김영식 여사(4.20%), 구본능 회장(3.05%) 등이 우호 지분을 형성해 경영권 안정을 이루고 있다. 하 사장은 법정에서 “구 선대회장이 별세하기 전 ‘(구)광모가 지분이 부족한데 가족 간 결속을 고려해 더 많은 지분을 갖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보이지 않는 손’ 있나

세 모녀 측은 경영 재산의 취지와 별개로 상속 과정에서 기망 행위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구 회장이 ㈜LG 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구 선대회장의 유언이 있었다고 기망을 당한 상태에서 상속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서 상속 합의와 번복 정황이 담긴 만큼 기망 여부에 대한 법적 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재계와 법조계에선 LG그룹의 갑작스러운 상속 분쟁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2018년 상속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졌고, 상속 직후가 아닌 4년여가 흐른 시점에서 반발이 제기된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소송 당사자인 세 모녀 배후에 숨어있는 친인척이 소송을 이끌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세 모녀 측이 LG 주력 계열사를 요구하는 선에서 소송을 접는 조정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 이후 양측에 조정을 권고했다. 소송 승패를 가르기보다 가족 간 합의로 풀라는 취지다. 세 모녀(원고) 측 변호인은 “원고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답했다. 반면 구 회장 측 변호인은 “이미 1년 넘게 협의를 거치는 중에 원고 측이 일방적으로 소송을 낸 것”이라며 “법원 판결을 통해 상속 경영권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다. 피고(구 회장)에게 의사는 물어보겠다”고 했다.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9일 열릴 예정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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