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담은 백성의 이야기… 서구 뛰어넘는 파격 있어”
황석영(80) 작가가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을 선보였다. 1차로 5권을 출간했고, 내년 상반기까지 총 50권을 펴낸다는 계획이다. 수많은 민담 속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골라내 자신의 문장으로 다듬어냈다.
시대의 이야기꾼,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작가, 황석영이 선택한 만년의 주제가 민담이라는 건 좀 놀랍다. 민중적인 소설을 써온 그와 어울린다 싶기도 하지만, 그의 이름 뒤에 붙은 ‘어린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낯설다.
황석영은 지난 14일 열린 출간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평생 어린이 책을 내본 적이 없다”면서 “처음에는 ‘뭐뭐 했어요’ 이런 식으로 문장에 존칭을 쓰는 게 어색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까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옛날 이야기가 전해지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더 기운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나라 전래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으면 부모가 아이들 잠들기 전에 읽어줄 수도 있고, 아이들이 자기네 공동체의 스토리를 간직한 채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민담은 황석영에겐 익숙한 장르다. 그는 “근년에 들어서 ‘바리데기’ ‘손님’ ‘심청’ 등 우리 서사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형식적 실험들을 한 20년 동안 해왔다. 그 이전에는 우리 민속과 연희를 많이 적용한 ‘장길산’을 썼다”며 “그래서 내 소설은 리얼리즘인데,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민담 리얼리즘’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규정한 바 있다”고 했다.
황석영은 “오랫동안 우리 민담을 굉장히 중요한 콘텐츠로 여기고 공부해 왔다”고도 했다. 몇 년 전 서재를 정리하다가 민담을 정리해놓은 노트 20여권을 발견하면서 민담집 출간으로 이어졌다.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건국 신화를 담은 ‘우리 신화의 시작’을 1권으로 삼았다. 그 뒤로 ‘연오랑과 세오녀’ ‘해님 달님’ ‘우렁각시’ ‘지하 마왕과 한량’이 이어진다. ‘지하 마왕과 한량’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황석영은 “이게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양주 지방의 전설인데 레바논 동화와 구조가 거의 똑같다. ‘나무꾼과 선녀’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백조와 사냥꾼’ 이야기와 유사하다. 우렁각시와 비슷한 이야기는 일본에도 있다”면서 “동서양의 동화는 분명히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형성됐다고 본다. 우리 민담이 번역돼서 외국으로 나가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황석영이 국제적으로 한국 문학을 대표해온 작가라는 점에서 우리 민담이 그의 이름을 달고 세계로 퍼져나갈 가능성에도 주목하게 된다. 민담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힘은 강력하다. 지금도 계속 출간되며 읽히는 ‘그림 동화’는 독일의 그림 형제가 19세기에 수집한 민담집이다. 안데르센 동화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현대적 콘텐츠로 끊임없이 재생된다. 황석영은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보다 우리 민담에 훨씬 더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다”고 얘기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800가지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콩쥐팥쥐도 비슷한 이야기다. 그런데 콩쥐팥쥐가 신데렐라보다 더 비극적이고 참혹하다.”
신데렐라와 콩쥐팥쥐가 비슷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신데렐라는 디즈니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콩쥐팥쥐는 한국을 벗어나면 아는 이가 없는 게 현실이다. 황석영은 한국 민담에 대해서 “얘기가 거침 없고 활달하다. 상상력의 비약도 굉장하다. 천국과 지옥을 들락나락하고 야생 짐승들과도 쉽게 소통한다”며 “서구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파격이 있다”고 평가했다. “서구 유럽의 동화나 민담을 보면 대부분이 왕후장상의 이야기”지만 “우리 민담은 그야말로 백성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강조했다.
휴먼큐브 출판사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출간을 계기로 다양한 민담 콘텐츠 제작에 나선다. 민담을 무빙툰(움직임을 보여주는 웹툰)과 풀더빙툰(더빙을 입힌 웹툰)으로 가공해 다양한 언어로 제공할 예정이다. 민담을 어린이 뮤지컬로 제작하거나 민담 테마파크 조성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작가와 함께 ‘푸리미디어’라는 콘텐츠 회사를 설립했다. 윤혜승 푸리미디어 이사는 “전 세계에 우리 민담을 알리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마침 K 열풍을 타고 한국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담에 대한 황석영의 관심은 새로 쓰는 소설로도 이어질 모양이다. 그는 “수백 년 된 나무가 화자가 되어 내레이션을 하는 ‘나무’라는 제목의 새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명상적인 작품인데, 내가 민담에 손을 안 댔으면 거기로 안 갔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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