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이 최고의 순간에 '잠시 멈춤'을 선택한 까닭
[이준목 기자]
"배우 임수정은 알 것 같은데, 인간 임수정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잠시 멈추고 쉬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30대 때는 일과 개인생활의 밸런스를 맞추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제가 단단해졌더라. 다시금 지금은, 뭔가 재밌는 일 새로운 일을, 한국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거쳐 더욱 단단하고 깊이있는 배우로 돌아온 임수정의 고백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냈다.
1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아래 <유퀴즈>)에서는 교사 구철수, 야구선수 김하성, 배우 임수정이 출연하여 자신들의 열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인생이야기를 전했다.
'뛰어난 지식이나 인생의 노하우를 겸비하여 존경하고 따를 만한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스승'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할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만한 참스승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27년차 교사로 서울목동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구철수 선생님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제자 주희원씨와 12년 만의 감동적인 재회로 화제를 모았다.
희원씨는 2009년 학창 시절 당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외로운 삶을 보내고 있었지만 구 교사가 매일 방과 후에 보드게임을 같이 해주며 빈 자리를 채워줬다고. 희원씨는 "선생님이 하나뿐인 친구였다"고 감사를 전하며 구 교사와 재회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현재 희원씨는 구 교사의 영향을 받고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또한 방송이 나간 이후 구 교사와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제자들이 또다른 미담들을 전하기도 했다.
구 교사는 겸손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힘들었을 때 제 도움을 잘 받았고 그걸 본인이 극복한 것이지 않나. 다행히 잘 이겨내고 자신의 추억이 될 만큼 성장했다는 것에서 잘 자라줘 고맙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 교사는 2001년 초등학교 학급 문집을 만들면서 학생들이 오래도록 간직하라는 의미에서 '10년 후에 만나요' 쿠폰을 넣었던 일화를 언급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2011년, 어느덧 근무하는 학교도 바뀌었지만 구 교사는 그때의 약속을 지켜갔고, 놀랍게도 많은 제자들이 잊지 않고 약속장소를 찾아왔단다.
한때는 '군사부일체'라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스승의 역할과 가치를 존중받던 시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구 교사는 "요즘이 가장 힘들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여러가지 변수가 계속 더해지는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구 교사는 "내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욕구와 우리 반 전체가 잘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욕구는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학부모들이 '나의 아이'에게만 잘해주길 바라신다. 예전엔 부탁이었는데 점점 강한 요구이자 선생님의 의무라고 생각하니 그게 악성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구 교사는 "학부모들이 요구하시는 것 중 하나가 '우리 애가 피해받지 않게 해주세요'다. 학교는 다른 아이들을 다 제쳐놓고 혼자만 키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런 아이도 있고 저런 아이도 있으니 함께 지낼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니 조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MC 유재석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이럴 때일수록 선생님을 믿고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구 교사의 옛 제자들이 졸업 후 22년 만에 현장을 깜짝 방문하여 사제간의 감동적인 재회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어느덧 성인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은 "학교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데 가장 큰 부분이 되어주신 분", "2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구 교사는 "원래 교사가 힘든 직업인데 저는 즐거웠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교사가 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얻은 게 더 많다"고 말하며 "2034년 8월 31일이 내 정년퇴임식이다. 그때 보면 되겠다"고 제자들과의 재회를 기약했다.
'꿈의 무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최초의 골드글러브(유틸리티 부문)를 수상한 한국인이 된 김하성(샌디에이고)이 다음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미국에서 '어썸 킴(Awesome KIM)'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는 김하성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어엿한 스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현지 중계에서는 "토미 애드먼은 대단하다. 무키 베츠도 훌륭하다. 하지만 김하성은 다른 세계에서 온 선수"라며 그의 플레이를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상자 소감 발표 당시에는 뻣뻣하고 감정없는 듯한 표정이 인공지능을 연상시킨다며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하성봇'이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김하성은 "카메라 앞에 글이 나오는 걸 최대한 또박또박 읽으려다보니 로봇같다고 하더라"며 민망해했다. 다만 트로피는 받아도 상금은 없다며 못내 아쉬운 기색을 내비쳐 웃음을 자아냈다.
김하성은 명품수비의 비결로 "모든 공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수비한다. 공격은 10번중 3번만 잘해도 최고의 타자가 되지만 수비는 10번을 다 잘해야 최고의 선수가 되니까, 잡기만 하면 무조건 아웃시킨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김하성은 세계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메이저리그만의 비화를 전했다.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진출시 처음 계약금이 입금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어우, 이게 내 돈인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 스포츠 선수의 가치는 연봉으로 평가되기에 기분이 좋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하성은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 메이저리그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고 밝혔다. 같은 아시아 출신이자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인 일본인 선수 오타니와는 경기 중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김하성은 "서로 언어가 안 되다 보니 그냥 '하이, 하와유, 아임 굿' 인사만 한다. 미국에서 길가다가 모르는 사람 끼리도 하이 하고 인사하는 정도"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 친분이 두터운 선수로는 같은 소속팀 동료인 매니 마차도, 타티스 주니어, 블레이크 스넬 등을 꼽았다. 김하성은 미국도 동료들이 함께 식사를 하러가면 "연봉 높은 사람이 다 계산한다"며 "저는 마차도 쪽에 좀더 가깝게 붙어있는다. 그쪽 테이블이 와인 하나도 좀 더 좋은 것이 나오더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한편으로 마차도는 형이지만 자신보다 어린 타티스가 장난을 치면 농담으로 "너 몇 살이냐"라고 응수한다며 메이저리그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식 장유유서 마인드를 드러내기도 했다.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적응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하성은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에서 "한국에서 상대한 투수들 평균 구속이 140킬로대였는데, 미국에 가니 말도 안 되는 스피드의 공들이 나오더라. 그때 이거 큰일났다 싶었다. 야구하면서 가장 많이 힘들었고 가장 많이 울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초반 적응에 실패하며 부진이 길어지자 김하성을 향한 혹평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체중이 10kg이나 감소하고 원형탈모 증상을 앓기도 했다고.
하지만 김하성은 부단한 노력을 했다. 김하성을 지도했던 타격코치는 '손에 물집이 잡혀서 타격을 못하게 되면 물집을 터뜨리고 나서 다시 방망이를 잡는 독종'이었다고 김하성의 노력을 회상했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 시작한 김하성은 화려하게 비상했다. 2023년에는 개인 커리어하이 시즌을 달성했고 한 경기에서 샌디에이고 사상 55년 만에 만루홈런, 2루타, 도루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록도 세웠다. 김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으로는 당대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클레이튼 커쇼에게 뽑아낸 홈런을 꼽았다.
김하성은 2024 시즌의 목표로 "한 해마다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선배들은 모두 저를 위하여 길을 만들어주신 분들이다. 제 역할도 (후배들을 위해) 그 길을 비포장도로가 아니라 더 좋은 도로로 빚어줘서 더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후배들도 더 많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우 임수정이 이날의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임수정은 2001년 데뷔 이래 박찬욱, 최동훈, 김지운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뮤즈로 활약하며 대한민국을 빛낸 여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데뷔 22년 만에 첫 예능 출연이라는 임수정은 "섭외 연락을 받고서 칸 영화제에 초청된 것 만큼 너무 놀랐다. 무슨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드려야하나 에피소드를 찾으려니 너무 멀어서 속상하더라"고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임수정이 유퀴즈 출연을 결심한 데는 의외로 동료 배우 조승우의 응원이 있었다고. 본인도 출연 제의를 받았다는 조승우는 임수정에게 "꼭 나가라.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출연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임수정은 이동욱과 함께 연기한 영화 <싱글 인 서울>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김지운 감독-송강호와 함께한 <거미집>으로는 칸 영화제에도 초청받아 다녀왔다. 현재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다는 임수정은 "혼자 일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개인적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까 올해 큰 이벤트들을 하게 됐다"며 칸 영화제를 혼자 다녀오는가 하면, 유퀴즈 작가들의 출연 섭외 전화도 직접 받았고, 직접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선배 송강호에 대해서는 "후배들이 더 좋은 연기를 뽑아낼 수 있게 엄청난 배려를 해주신다. 앞에서 눈을 마주치고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 연기가 쭉쭉 느는 느낌이었다. 이미 강호 선배와 한 신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저는 좋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게 너무 행복했다"고 밝혔다.
잡지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임수정은 드라마 <학교4>로 본격적인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유재석은 과거 의류 브랜드 광고에서 신인이던 임수정을 처음 만나 웬지모를 강렬한 인상을 느꼈던 기억을 회상했다.
임수정을 주목받는 배우의 반열에 올린 작품은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첫 작품이었던 2003년작 <장화, 홍련>이다. 지금까지도 이 작품은 한국 공포영화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오디션장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찬욱 감독이 <학교4>를 보고 임수정을 김지운 감독에게 추천했다는 일화가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임수정을 주연급 배우이자 멜로퀸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히트작이다. 청순함과 애절함을 오가는 임수정의 연기력과 역시 떠오르는 청춘스타였던 소지섭과의 케미는 '미사 폐인'을 낳을 만큼 뜨거운 화제가 됐다. 극 중 임수정이 착용한 어그부츠는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르는 등, 수많은 명장면과 이야깃거리들을 남긴 작품이다.
임수정은 20대, 30대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20대 때는 일밖에 몰랐고, 연기에만 몰입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30대가 되면서 최고 영광의 순간에 반대되는 마음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임수정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목표를 상실한 기분이 들더라. 저를 돌보기 보다는, 계속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직진을 했던 것 같다. 연기생활을 하면서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결국 임수정이 선택한 길은 잠시 멈춤이었다. 임수정은 5년의 공백기를 거치며 일과 생활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고 자아찾기에 집중했다. 채식주의가 되면 달라진 식습관으로 건강을 관리했고, 일에 대한 열정도 회복했다.
임수정은 "혼자서 잘 지내다보니 '여행 가방 하나 들고 촬영하러 오세요'라고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저의 40대, 50대, 그 이후의 시간까지도 기대가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유재석은 "내 마음을 읽고 나 스스로를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나를 잘 알기 위해서는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바라고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이나 다른 이유 때문에 나를 챙기지 못하면 언젠가는 탈이 난다"고 말했다.
임수정은 웃으며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저와 대화할 때가 가장 재밌다"라고 화답했다. 이어 임수정은 "배우로서 열망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로서는 보통의 삶에 가까운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며 앞으로도 배우인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변함없는 소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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