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만나 양보 없이 헤어진 美·中…복잡해진 尹 대중 전략
‘소통은 강화하지만 양보는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결론이다. 양 정상은 서로를 향한 오해와 오판을 막기 위해 소통 채널을 정상화하고, 정상 간 직통 전화인 ‘핫라인’까지 개설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중 경쟁이 갈등 구도로 비화한 진원지인 공급망 문제와 대만해협 갈등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선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예기치 않은 충돌을 막기 위한 가드레일은 선명해졌지만, 이같은 소통 기조가 미·중 관계의 해빙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게 됐다. 가능성만을 남긴 채 끝난 미·중 정상회담은 한·중 관계 복원을 꾀하는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대중(對中) 접근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소통'에 청신호 켜졌지만…한·중 관계 여파는
다만 원론적인 수준에서라도 미·중이 충돌 방지에 뜻을 모은 건 대중(對中) 전략을 재설계하는 한국에도 청신호가 될 수 있다. 미·중이 소통 채널을 정상화한 건 한·중 관계 정상화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만 한·미동맹 강화 및 한·일 관계 복원→한·미·일 공조 강화→한·중 관계 개선의 순서를 택한 게 아니라, 중국 역시 미국과의 관계 관리를 먼저 한 뒤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특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미·중 간 소통 강화 방침과 결을 같이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 주석 간에도 전향적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 사이에 관계 복원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오는 26일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와 이어지는 3국 정상회의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형식적이나마 미·중이 대화와 소통을 강조한 만큼 한·중 간에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다”며 “다만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한·중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화약고 ‘대만’, 커지는 불씨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며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단 뜻을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수년 내에 대만을 침공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대만 통일 등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국이 대만 통일 의지를 노골화하고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재확인함에 따라 미국은 향후 동맹·우방을 규합해 대만을 보호하는 행보를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역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원칙론에서 한 발 나아가 보다 선명한 입장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대만해협에서 유사 상황 발생시 주한미군이 투입된다면 한국의 안보 공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칼자루 쥔 中, 침묵 속 웃음
이날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지역의 갈등을 막기 위해 중국이 이란을 설득해 줄 것을 촉구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노력을 지원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손발을 묶는 국제사회의 동시다발적 안보 위협이 지속되는 것이 미·중 경쟁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2개의 전쟁과 북핵 문제가 해소될 경우 미국이 대중 견제에 집중할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을 의식한 듯 시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각 전쟁과 북한 문제를 관망하는 듯한 기존 입장만을 반복했다.
이같은 미·중 간 비대칭적 역학 구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핵 문제 역시 뚜렷한 진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북핵 문제는 이미 미·중 간 갈등 이슈가 된 만큼 실제 비핵화 노력을 기울이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어느 쪽도 주도권 자체를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미국으로선 도발 위험을 지속하는 북한보다 이미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현안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혼란이 해소되면 미국은 모든 화력을 중국에 집중할 것이 자명하고, 이는 전쟁 상황이 이어질수록 중국이 사용할 대미(對美) 전략적 옵션이 다양해진다는 의미”라며 “중국 역시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인 만큼 미국이 요구하는 역할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역내 이슈인 북핵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이 원하는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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