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반란'에 배당 늘리고 자사주 소각...주주환원 풍토 바뀔까
‘개미의 반란’에 주요 상장사가 주주 챙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배당을 주고 매입한 주식을 태우는(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내놓고 있다. 강해진 소액주주의 목소리와 거세지는 행동주의 펀드 공세, 정부 정책까지 뒷받침되면서다.
그동안 국내 상장사의 부족한 주주환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자사주 소각이 1년 전보다 1.5배가량 늘어나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장기적인 추세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잇따른 주주환원책, 자사주 소각 작년보다 1.5배
대대적인 주주환원책을 발표한 곳은 KT&G다. 지난 13일 KT&G는 창사 이래 첫 ‘밸류데이’ 향후 3년간 1조8000억원의 현금 배당과 1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소각 등 3조원 규모의 주주환원책을 발표했다.
LG도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과 상표권 및 임대수익에서 창출한 이익을 배당 재원으로 활용하고,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을 주주 환원에 사용하겠다고 지난 9일 밝혔다. KT 역시 배당금을 최소 2022년 수준으로 보장하고, 분기배당을 도입한다.
HL홀딩스는3년간 발행 주식의 6%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을 약속했고, 한섬도 발행주식의 5%에 해당하는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아세아시멘트 역시 중간배당을 주당 30원으로 확대하고 12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밝혔다.
늘어나는 주주환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자사주 소각은 최근 5년 새 늘어나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기준 올해 이뤄진 자사주 건수는 93건으로, 지난해(64건)보다 1.5배가량 늘었다. 2019년(25건)과 비교해 약 4배 증가한 것이다.
금액으로 봐도 올해 자사주 소각 규모는 5조27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3조1300억원)의 약 1.7배, 2019년(1조200억원)의 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힘세진 소액주주, 많아진 행동주의
상장사의 주주환원이 늘어나는 건 커진 소액주주의 목소리와 이에 힘입어 늘어난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증시에서 주주행동주의가 이뤄진 상장사 수는 50곳으로 지난 2021년(34곳)과 2022년(37곳)에 이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내놓은 KT&G는 올해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등 여러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아세아시멘트도 VIP자산운용이 2년간 일반투자목적 공시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주주환원책을 요구해 온 회사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최근 개인주주들은 비상대책위 등의 이름으로 모임을 결성해 상장사에 직접 주주환원을 위한 면담을 요청하는 등 행동력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주주환원을 뒷받침하는 정책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법무부는 올해 초 기업이 배당기준일을 주주총회 이후로 정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배당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의 배당성향을 모른 책 투자하는 ‘깜깜이 투자’를 막기 위해서다. 이후 상장사들이 배당 성향 등을 미리 알리는 풍토가 자리 잡는 모습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본격적인 배당 제도 개선을 앞두고 발 빠른 일부 기업이 선제적으로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는 모습”이라며 “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에도 ‘배당 예측 가능성을 제공했느냐’를 까다롭게 따지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상장기업이 배당과 관련한 사안을 미리 밝힐 유인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도 금융당국이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부분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공정 거래 기반 강화를 위해 자사주 제도 개선 등 추가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재차 언급했다.
미국도 행동주의→자발적 주주환원으로 발전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도 시장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 3월 기존 ‘ACE 차세대가치주액티브’의 종목명을 ‘한국투자ACE차세대가치주 액티브’로 바꾸며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 전략을 바꿔 선보였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제도적 움직임도 있는 만큼 주주환원과 거버넌스 개선에 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판단해 해당 상품을 새롭게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김기백 매니저는 “이른바 자본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1980년도에 행동주의 펀드와 일반주주의 각종 제안이 시작됐고, 이후 1990년부터 기업의 자발적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의 주주환원이 본격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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