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약은 잊어라…K-제약 ‘퍼스트 인 클래스’ 전략으로 대박
종근당이 지난 6일 글로벌 빅파마인 노바티스에 최대 13억500만 달러(약 1조7302억원) 규모의 초대형 기술 수출을 하는 ‘잭팟’을 터뜨렸다. 각종 퇴행성 질환에 작용하는 HDAC(히스톤탈아세텔화효소) 억제제 계열의 신약 후보물질인 ‘CKD-510’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넘기는 내용이다.
같은 날 국내 바이오벤처 오름테라퓨틱은 미국계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쿼브(BMS)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 ‘ORM-6151’을 기술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총계약 규모는 1억8000만 달러(약 2300억원)였다.
시장의 눈길을 끈 건 계약금 규모였다. 계약금은 권리를 반환받더라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 종근당은 8000만 달러(약 1000억원)를, 오름테라퓨틱은 1억 달러(약 1300억원)를 각각 받았다. 16일 제약 업계 관계자는 “통상 계약금은 총 계약의 5% 내외로, 그 이상이면 좋은 조건으로 평가하며 후보물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며 “종근당은 총계약 규모의 6.1%를, 오름테라퓨틱은 55.6%를 각각 계약금으로 선수령했다.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 모두 계열 내 최초의 혁신 신약인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후보물질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서다.
“카피약만 만든다”는 옛날얘기
‘카피약만 만든다’는 비아냥 섞인 평가를 받아왔던 국내 제약 업계가 ‘세계 최초의 신약’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약은 타깃에 대한 최초의 약물인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와 계열 내 최고의 약물을 의미하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로 나뉜다. 그간 국산 신약 중에선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베스트 인 클래스’가 왕왕 있었지만, ‘퍼스트 인 클래스’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퍼스트 인 클래스’는 개발 난도가 매우 높지만, 블록버스터로 진입하면 막대한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연매출 10억 달러 수준이었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위궤양 치료제 ‘잔탁’을 개발하면서 다국적 제약사로 도약한 바 있다. 전인미답의 약을 개발할 경우 그만큼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크단 의미다.
FDA 신약 중 59%는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지난해 승인한 37개 신약 중 22개(약 59%)가 난치성 암 및 심혈관 질환, 유전 희귀 질환에 대한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이었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일제히 퍼스트 인 클래스 혁신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자체 구축한 데이터 사이언스 플랫폼을 통해 항암·면역질환·재생의학 분야의 신약후보물질을 지속해서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표적 탈모치료제(‘JW0061’)와 표적 항암제(‘JW2286’)를 개발, 내년 임상 개시를 앞두고 있다.
대웅제약 역시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를 목표로 ‘베르시포로신(DWN12088)’을 연구 중이다. 섬유증의 원인인 콜라겐의 과도한 생성을 억제하는 신규 기전의 후보물질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중화권 기업과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동아에스티도 타깃 면역항암제 후보물질(‘DA-4511’)에 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면역세포의 면역 기능을 높이고 암 세포에 대한 공격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익명을 원한 제약 업계 관계자는 “결국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제약사만이 실제로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가고 있다”며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지만, 반대로 자체 파이프라인을 토대로 한 새 물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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