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2023]'딴짓'을 허하라…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핀오프 정신'
영역·경계 허무니 성과 차곡차곡
예측 불가능의 시대
반드시 필요한 생존 전략
스타워즈와 마블 영화에서는 조연급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파생된 작품들이 많은데, 이러한 형태를 스핀오프라고 한다. 스핀오프는 콘텐츠 영역에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그 개념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브랜드를 넘어 개인에게도 스핀오프의 문법이 적용되고 있다.
우선 브랜드 스핀오프를 살펴보자. 브랜드 스핀오프는 모브랜드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서브브랜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서브브랜드를 론칭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들이 올드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스핀오프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19년 LF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던스트’가 대표적이다. 던스트는 젊은 감성에 초점을 맞춘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로 2030 소비자를 겨냥했다. 미니멀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온라인몰 위주의 입점 전략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2021년 4월에는 씨티닷츠라는 독립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까지 공략하면서 독립 분사 2년 만에 연간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코오롱FnC의 ‘24/7’ ‘아카이브앱크’도 사내벤처를 통한 브랜드 스핀오프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유아 혹은 아동이 주 소비층이던 브랜드들은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스핀오프에 보다 적극적이다. 저출산으로 1인당 우유 소비량이 감소하면서 유업계는 일찍이 성인용 단백질 시장을 공략해왔다. 일동후디스 하이뮨과 매일유업 셀렉스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매일유업, 남양유업, 서울우유 등 기업들도 각종 단백질 파우더, 음료 등을 통해 관련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특히 하이뮨은 출시 첫해부터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순조로운 시작을 보였고, 이듬해에는 누적 매출액 1300억원을 달성했다. 교육회사 대교그룹은 기존의 교육콘텐츠 심화를 모색하면서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데이케어, 방문요양, 전문강사 육성 및 파견, 인지케어 콘텐츠 개발 등 시니어 토털케어 서비스 브랜드인 ‘대교뉴이프’를 론칭했다.
미디어 산업의 스핀오프도 활발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주요 언론사들은 기존의 형식과 스타일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다양한 스핀오프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MBC는 14층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유튜브 채널 14F(일사에프)를 론칭했는데, 2023년 8월 기준으로 ‘14F’의 구독자는 181만명이다. KBS는 크랩(KLAB), 중앙일보는 유튜브 채널 ‘듣똑라’로 금융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췄다.
중요한 점은 스핀오프가 브랜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본업 이외에 자신의 경력을 스핀오프하는, 일명 ‘사이드 프로젝트’에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테크 분야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지칭했는데,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단순한 부업과는 다르다. 개인적인 시간을 따로 내서 직장에서 하는 관련 업무나 별도의 관심 영역에서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거나 자기 계발을 실천하기도 하고 창업이나 이직의 기회로 연결되기도 한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 기업 코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사이드 프로젝트’ 관련 언급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 추세다. 특히 매년 1월 언급량이 많다고 한다. 또한 ‘경험’ ‘공부’ ‘개발’ 등의 연관어가 돋보이는데, 회사 내에서 하는 업무 외에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나 경험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 연관어로는 ‘좋다’ ‘추천’ ‘성장’ 등의 감성어가 함께 언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사이드 프로젝트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기업들도 변하고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단순히 ‘딴짓’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사례가 관찰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공식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적극 장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MS는 개라지(garage)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 건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본업과 연관이 없어도 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돕고 MS 본사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받는다.
‘대학내일’도 구성원들에게 회사 안과 밖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자신의 장점을 잘 계발해야 개인과 더불어 조직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내일은 회사 내규 중 ‘사원은 회사의 허락 없이 겸직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또한 전사 참여제를 통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독려하고 있다. 전사 참여제는 직원들이 팀의 경계 없이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제도다. 멘토링·재능기부·트렌드조사 등 다양한 주제가 진행된다.
스핀오프는 변화가 빠르고 위기가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다. 최근 마켓컬리와 당근마켓은 ‘마켓’을 떼고 각각 ‘컬리’와 ‘당근’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면에는 여러 가지 계산이 있겠지만 자신의 업을 ‘마켓’에 가두지 않고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을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기보다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스핀오프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2023년 세계경제포럼(WEF)에 모인 전문가들은 최근의 상황을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다중 위기) 시대로 정의했다. 다양한 위기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닥치면서 불안정한 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상황 자체가 일상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콘텐츠 확장전략으로 시작되었지만 어쩌면 스핀오프는 다중위기의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의 정신이자 삶의 철학이 아닐까.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트렌드코리아' 시리즈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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