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왜 갔는지 말고, 왜 못 돌아왔는지 기억하기
[배여진]
▲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 창비 |
2022년 10월 29일. 애들을 재우다 같이 잠이 들었다. 새벽 2시가 넘어 깨어 양치를 하러 가기 전 습관처럼 SNS와 인터넷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소식들에 너무나 놀라 잠이 깼다. 이게 꿈은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차라리 꿈이어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실이었고, 내가 잠이 들었던 사이 이태원에서는 숱한 목숨들이 아스라지고 있었다.
상상이나 했을까. 서울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압사로 죽을 줄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들과 사진들이 거짓 아니면 할로윈 단체 코스프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은 비현실적이었다. 믿고 싶지 않아 현실과 비현실을 혼자 왔다 갔다 할 때 즈음 사진을 보고 말았다.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서서 몸과 몸이 꽉 끼어버린 채 멈춰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만으로도 생과 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더는 SNS에 돌아다니는 이태원 소식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아직 이 슬픔이 마음 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소식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듣고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둘째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이었고, 큰 아이는 아주 어릴 때였다.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 대형참사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8년 전과 후가 변한 것이 없다니. 이 또한 절망적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아기였던 아이들이 커서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데, 질문을 받는 나야말로 "왜?" 하고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또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기록은 기억을 위한 첫 단계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펼치게 된 것은 이 "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이태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주민 등 14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정리한 구술기록이다.
기록은 '기억'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쓰인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지에 따라 한 사건을 대하는 시선이 먼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러 사실관계에 근거한 역사마저 왜곡하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쓰는 현재의 행태들을 살펴본다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참사들마저도 위정자들의 손아귀에서 머지 않은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에 담긴 열네편의 글은 재난으로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이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치열하게 버텨온 시간에 대한 증언이며,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입니다." (p. 9, 여는 글 중에서)
이 책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은 꽤나 힘들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공기의 끝자락에서라도 그리운 사람을 스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수 있는 힘을 이 책 속에서 얻는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유가족협의회'의 활동을 함께 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투쟁을 해나가며 위로를 주고 받는다.
남은 이들이 다시 건네주는 용기
▲ 10.29이태원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10월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부근 참사 현장에서 ’10.29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기자회견’이 권은비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미술가와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권우성 |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이 구술기록을 통해 오가는 느낌이다. '이태원' 세 글자만 봐도 가슴 한 켠이 일렁이고 뻐근해져 오는데 글자를 통해 구술자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경험을 하고 나니, 나 또한 이태원 참사를 좀 더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생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1년 뒤, 어느 덧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수 있을만큼 커버린 아이들의 운동학원 차량을 함께 기다리는데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할로윈인데 오늘은 할로윈 파티를 하기보다는 추모를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순간 내 마음이 얼마나 일렁였는지 모른다. 사실 아이들 앞에서는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워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다른 주제로 돌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과 이태원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청년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날 큰 아이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게 됐다. 지레 겁을 먹지 말고, 피하지만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되 홀로 감당이 어려울 때에는 희생자의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힘을 얻어보자고.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머리를 모아보자고 말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그냥 다른 거 없어요. 슬퍼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이제 끝나지 않았느냐, 괜찮지 않느냐, 이제 됐지 않느냐 이런 얘기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했다면 잘못했다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잘못했으면 일단 사과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처벌은 나중에 하더라도요.
그래야 우리도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우리 주변에도 누군가 분명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우리는 이제 누가 지켜줘?'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누군가 꼭 너를 지켜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p. 268, 양희준씨의 누나 양진아씨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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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배여진씨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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