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은 왜 법사위 문턱 못넘었나…창작자 보호법 쟁점 [팩플]
‘검정고무신 방지법’은 창작자를 보호하고 산업도 육성할 수 있을까.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발의된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 얘기다. 창작자에 대한 플랫폼·출판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막자는 법안 취지와 달리, 지나친 규제로 콘텐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정고무신 방지법이 뭔데
15일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 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문산법은 일명 ‘검정고무신 방지법’이라 불린다.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소송 중이던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창작자에 불공정한 계약관행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여야 의원들이 추진했다.
법안에선 총 10가지 행위를 출판사나 유통 플랫폼 사업자가 하지 말아야할 금지 행위로 규정한다. 창작자가 출판사나 플랫폼에 지식재산권을 양도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비롯해 합의하지 않은 콘텐트 가격 할인에 따른 비용 부담을 창작자에 떠넘기는 행위, 특정 결제방식을 강요하는 행위, 통상 수준보다 지나치게 낮게 대가를 책정하는 행위 등이다.
법안은 지난 3월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체위로 돌아왔다. 다른 부처 소관 법률들과 내용이 중복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뭐가 문제야
① 이미 법은 있는데: 이번 법안엔 정부 내 다른 부처가 이미 규제하고 있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문체부가 다시 규제할 경우 중복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규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법안의 불공정행위 대다수는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안에서 사업자 금지행위로 규정한 ‘창작자 제작 활동 방해’는 이미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고,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② 신인 진입로 좁아지나: 법안이 신인 창작자들의 시장 진입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통상보다 현저히 낮은 대가’를 법으로 금지한 게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상품은 공산품과 달리 유통업자와 저작권자의 수익 분배 비율이 유동적”이라며 “특히 성과가 낮은 저작권자는 초기엔 낮은 분배 비율을 감수하고서라도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비율을 규제하면) 유통업자는 검증된 창작자들과 주로 계약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③ 계약서 없이 규제만?: 근본적으로 구두 계약 관행이 뿌리깊은 출판업계 문화부터 개선돼야 하는데,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간과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승민 교수는 “해당 법안에는 서면 계약을 반드시 체결해야 된다는 규정도 없다”며 “실태조사를 보면 사전 계약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율이 높은데 정작 가장 필요한 규제가 법안에선 빠진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 vs 창작자
법안에 대해 플랫폼 업계와 창작자 단체들은 상반된 입장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웹툰 플랫폼 기업들이 속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김영규 실장은 “유통 사업자가 무조건 ‘갑’의 입장에 있는 것처럼 돼 있어, 사업자들에게 상당히 부담이 되는 법안”이라며 “유통사업자가 새로운 창작자, 제작자와 신뢰 관계를 맺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창작자 단체들은 창작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한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광철 작가는 “고 이우영 작가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작가들이 많다”며 “신인들의 창작 환경을 제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앞으로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 14일 ‘영상 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면서 문산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중복 규제라는 지적을 반영해 수정한 안이 문체위 전체회의에 이달 말 다시 회부될 예정이다.
김남영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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