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려 하지 말고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2023. 11. 1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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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션 카운슬러] <21>
Q : 믿음을 고백한 크리스천이지만 회의감이 자꾸 밀려드는데 괜찮은가요?
미국 후드신학교의 안드레 레스너(설교학) 교수는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믿음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이 곧 믿음이다”고 말했다. 회의(의심)가 믿음을 다지는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도마가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확인하는 장면. 국민일보DB


A : 현대 사회는 세속화를 넘어 반기독교적인 문화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C.S.루이스의 말처럼 크리스천들은 마치 적대국 안에 사는 사람들과도 같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내면에서 제기되는 회의(의심)에 직면할 때다. 크리스천이 된 뒤에도 이어지는 회의감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질문과 의심을 구분하자

무엇보다도 질문과 의심을 구분해야 한다. 이른바 ‘가나안 신자’들은 신앙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보다는 “그냥 믿으라”고 강요하기에 교회를 떠났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가진 질문은 신의 존재, 성경의 신뢰성, 신앙과 과학의 갈등, 교회사의 어두운 사건, 실망을 준 사람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복음주의 변증가이자 ‘소명’이라는 책의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부끄러운 것은 회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회의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회의를 부끄럽게 여겨 숨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당황한다. 성경은 기도에 응답이 있다고 말한다(렘33:3, 요14:13). 하지만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때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가’라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내가 원하는 때와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C.S.루이스는 저서 ‘헤아려본 슬픔’에서 자신의 아내가 죽어갈 때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다. 그는 하나님의 침묵을 ‘꽝하고 닫히는 문 소리’로 표현했다. 그러나 돌이켜 헤아려보니 하나님의 침묵은 신의 부재도, 기도의 거절도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응답과 섭리임을 깨닫게 됐다.

우리의 소원이 감각으로 알 수 있게끔 응답되는 것은 은혜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가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린 채 시편 22편 1절로 기도를 드렸다. 그 때 하나님은 침묵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믿음, 명사가 아닌 동사

믿음을 감정 그 자체로 여기는 사람들은 의심을 불신의 특징으로 단정할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을 가졌다’라는 말이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감정의 기복은 믿음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의심 자체가 믿음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는 한번도 의심하지 않거나 언제나 일관된 감정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한 때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99세가 된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행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실행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믿음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믿음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의지를 통해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의를 다룰 것인가. 회의의 역기능은 억제하고 순기능은 강화시켜야 한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회의의 역기능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마귀들은 ‘그리스도인을 무신론자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을 연구한다. 사탄의 전략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는 대신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느낌과 감정’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심, 신앙 성장의 밑거름

회의가 감정 자체에만 매몰될 때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 도마를 향해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있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하셨다.

반대로 회의는 믿음을 성장시키는 순기능도 있다. 의심한다는 것은 이성의 기능 중에서 확실성을 추구하는 생각의 방식이다. 나무가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고자 뿌리를 깊게 내리듯이 회의는 건강한 믿음을 가진 헌신적인 크리스천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생기는 질문은 답을 찾아야 한다. 베드로는 제대로 된 질문과 답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직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이 가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십시오.”(벧전 3:15). 파스칼의 말처럼 의심해야 할 때는 의심하고, 확신해야 할 때는 확신하며, 순종해야 할 때는 순종하자.

김기호 한동대 교수·기독교변증가

믿음을 키우는 팁
회의에서 확신으로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IVP)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신앙에 대한 회의(의심)는 계속 찾아온다. 저자는 회의의 유형을 분석한 뒤 회의가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회의를 잘 다루는 것은 신앙에 유익이 될 수 있다. 회의에 빠져 절망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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