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회 십자가만 옮겨와 예배… 대지진 이후 성도 늘어”
튀르키예 안디옥 개신교회를 가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행 15:16~17)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공인하는 동시에 바울과 바나바를 수리아 안디옥(현재 지명 안타키아)으로 파송하면서 야고보가 전한 말씀이다. 지난 2월 튀르키예 남동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안디옥 개신교회 무너진 장막 앞에서 이 말씀을 떠올렸다.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려는 한국교회 성도들, 이를 통해 세계의 이웃들에게 주를 찾도록 도우려는 선한 의지들이 폐허 속 예배당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광림교회(김정석 목사) 월드비전(회장 조명환) 국민일보(사장 변재운) 대표단은 13일(현지시간) 안디옥 개신교회 현장을 찾았다. 인천공항에서 튀르키예 중심지 이스탄불까지 12시간 비행하고 또다시 국내선 항공기를 갈아타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타르수스) 옆 아다나 공항에 내렸다. 이후 육로로 2시간여를 달려 대지진 피해 현장인 하타이주에 들어섰다.
튀르키예 무장 경찰이 경광등을 켜고 대표단 차량을 에스코트하는 가운데 대지진 피해가 집중된 안타키아 구도심에 들어서자 온통 잿빛이었다. 회색 콘크리트의 무덤, 형체가 남아있는 건물도 계속되는 여진과 붕괴 위험으로 비어있는 곳이 많았다. 곳곳에서 포크레인 등 중장비가 동원돼 건물을 철거하고 대지를 평탄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강진 이후 벌써 9개월째다.
지중해 연안 오론테스강 수로를 따라 사도 바울이 ‘땅 끝까지’ 선교 여행을 떠났던 이 아름다운 도시는 이제 석면과 시멘트 가루가 햇빛을 가리고 있고 이재민은 천막과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구호 사업장이 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감독을 지낸 김정석 광림교회 목사가 무너진 예배당 앞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했다.
“예루살렘이 복음서의 중심이라면 안디옥은 사도 바울이 지중해 전역 선교를 시작한 서신서의 중심입니다. 2000년 전 이곳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 무너진 안디옥 개신교회를 바라보며 황망한 마음뿐이지만 다시금 일어서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가 이곳 안디옥에서 시작한 선교의 역사가 이어지게 하소서. 안디옥 개신교회를 지키는 튀르키예 공동체와 시리아 난민 공동체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축복을 내려 주소서.”
이날 안디옥 개신교회 방문엔 소아시아 7개 교회 단기 성지순례를 떠난 광림교회 교역자 60여명이 동행했다. 김 목사의 인도로 이들은 폐허 현장에서 눈물의 통성 기도를 드리며 교회의 복원을 간구했다. 안디옥 개신교회는 1993년 튀르키예 성지를 순례하던 김선도 감독이 정교회와 가톨릭만 있던 이곳에 개신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을 품으며 시작됐다. 선교사 파송 등 7년의 준비 끝에 2000년 6월 100년 넘은 문화재 건물을 매입해 십자가를 세웠다.
무슬림 비중이 98%인 튀르키예 땅에서 무수한 난관을 넘으며 소수인 크리스천 개종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던 교회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난민 평신도 사역자를 세울 정도로 성장했다. 현지 파송 중인 장성호 선교사는 “핸드폰 연락처 속 지인의 절반이 지진으로 사라졌다. 무너진 예배당에서 십자가만 옮겨 임시 거처에서 예배 중이지만 대지진 이후 성도는 오히려 더 늘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총연합을 비롯해 교단을 초월한 사역자들이 대지진 이후 안디옥 개신교회를 찾아 위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림교회·월드비전·국민일보 대표단은 하타이주 선출직 광역 시장인 닥터 뤼투프 사바쉬의 집무실도 방문했다. 시청 청사 역시 무너져 2021년 하타이 엑스포 건물을 임시로 사용 중이었다. 이곳 시장의 집무실에선 안타키아 곳곳의 복구 현장이 내려다 보였다.
사바쉬 시장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면서 “한국전쟁 당시의 튀르키예 참전 용사들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대지진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일에는 인종 젠더 등의 문제를 넘어서야 마땅하다”고 답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시와 협력해 더 많은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고, 변재운 국민일보 사장과 이명희 종교국장은 “대지진 피해구호 현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겠다”고 화답했다.
안디옥 개신교회 건물은 튀르키예의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문화유산이어서 복원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건축물의 30% 이상은 기존 자재를 사용해야 하는 문화재이기에 지진피해 잔해를 치우지 못하는 등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현지인 공동체와 함께 다시 교회를 복원해야 하는데 도심 기반 시설이 무너져 이 역시 쉽지 않다. 장 선교사는 “5~10년 정도를 내다보며 장기적 복원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안타키아(튀르키예)=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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