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서이초 사건이 남긴 것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수사가 4개월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결론은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였다.
서이초 1학년 담임교사였던 A씨(24)는 지난 7월 18일 오전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그은 이른바 ‘연필 사건’ 이후 학부모들이 괴롭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주일 뒤인 22일 교사 5000여 명이 시위에 나서는 등 교직 사회가 들끓었다. 한국 사회는 사실상 A씨 사망을 ‘학부모 갑질에 의한 간접살인’으로 빠르게 결론 내렸다.
그러나 정작 경찰이 확보한 증거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A씨의 메신저와 일기장, 학부모 휴대전화, 동료 교사의 증언 등을 종합해봐도 가해자로 특정할 만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다. 수사가 진전되지 않는 사이, 경찰은 대신 20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로 68명을 조사하고, 변사사건 심의위도 열었다.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알리바이”라는 자조적 해석이 경찰 안팎에서 나왔다. 경찰 브리핑은 ‘이렇게까지 수사했는데 단서가 없었다’고 변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비슷한 일은 2021년 4월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 때도 벌어졌다. 중앙대 의대생 고(故) 손정민씨 사망 당시 친구 B씨가 개입했을 거란 타살설이 확산하며 논란이 됐다.
경찰은 당시에도 ‘혐의없음’ 결론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서초경찰서 강력 7개팀을 전부 투입해 폐쇄회로(CC)TV 126대를 분석하고, 주요 목격자 16명 조사, 관련자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사건 종결 이후에도 강력팀 1개가 동원돼 손씨의 마지막 행적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손씨의 죽음을 여전히 타살이라 믿는 이들은 적지 않다. 한강시민공원에는 여전히 손씨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서이초 사건 역시 벌써 “전면 재수사하라”(서울교사노조·전교조)는 요구가 나왔다. 자신의 원래 생각과 신념을 재확인하려는 확증편향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 탓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장면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양극화로 시민들의 확증편향은 더 깊어지는 가운데, OECD의 2022년 공공부문 신뢰도 조사에서 21개국 중 19위를 한 경찰 신뢰도는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광주지검은 사건 브로커에게 사건무마·인사 청탁을 받은 고위급 경찰관들을 수사 중이다. 수사선상에 올라있던 전직 치안감 김모(61)씨는 15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이초 사건 같은 풍경이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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